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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31. 2021

아이와 외식할 때 지갑보다 먼저 챙기는 것이 책이다.

아이가 두 돌쯤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외식은 생각하지 않았던 우리는 내 생일을 핑계로 외식을 하기로 했다. 그것도 내가 정말 먹고 싶었지만 아이에게 연기가 안 좋을 것 같아서 꿈도 못 꾸던 돼지갈비였다. 모처럼의 외식에 설레면서도 괜찮을까 걱정이 앞섰다. 아이와 외출하는 것은 언제나 긴장되기 마련이었다. 아이는 소위 오감이 다 예민했다. 소리나 빛, 몸에 닿는 촉감에도 예민해서 낯선 자극을 거부했다. 아이가 울면 다시 돌아올 각오를 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우리가 아이와 외출할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책이다. 공원에 산책을 갈 때도, 문화센터에 갈 때도 명절에 양가 어른을 찾아뵐 때도 우리는 항상 책을 챙긴다. 졸리거나 지루할때 우는 이유가 아이들은 그 상황을 고통으로 느끼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기운이 없거나 노곤할 때처럼 아이들은 심심하면 그 기분이 기운이 없는 것하고 비슷해서 운다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다른 놀이가 될만한 것을 챙긴다.


그날도 외식을 위해 집을 나서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지갑이 아니라 책이었다. 책과 함께 색종이, 색연필과 작은 종합장도 챙겼다. 그리고 아이가 먹을 도시락도 챙기면 외출 준비 끝이다. 꿈에 그리던 외식이지만 카시트를 거부하는 아들 때문에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엄마의 생일이라 오랜만에 외식하러 왔어. 또미 도시락도 챙겨 왔으니까 우리 맛있게 먹자."

아이는 테이블 위에 있는 숟가락을 만지기도 하고, 숟가락으로 테이블을 치면서 놀고 있다. 숟가락이 테이블을 치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식당에서 그러면 안된다고 말해주지만 단번에 멈추면 아이가 아니다. 그러면 나는 책을 꺼내서 아이에게 읽어준다. 아이는 책을 읽어주면 조용해진다. 책을 두세권 돌려가면서 읽어주다 보면 음식이 나온다.


"요새 휴대폰 안 보는 애 드문데 기특하네. 식당에서 아이한테 책 읽어주는 엄마 처음 봐요."

식당 이모님이 음식을 테이블에 세팅하면서 말한다. 으쓱! 기분이 좋다. 나는 식당에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것을 싫어한다. 아니 밥 먹을 때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보는 것은 집에서도 어디에서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외출할 때 책이나 놀잇감을 챙겨간다.


음식이 나오면 책을 읽어주던 것도 멈춘다. 밥을 먹을 때는 오직 밥 먹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식당에 가면 아이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을 보면서 먹는다. 옆에서 어른들은 여유 있게 식사를 즐긴다. 어른들은 편하겠지만 아이들이 식사예절 배울 기회를 빼앗는 것이 아닐까?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책을 읽는 것도 아이가 큰 지금은 거의 없는 일이다. 식탁에서는 가족끼리 대화를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니까 주변에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책을 잘 읽게 할 수 있냐고? 우리 애 보낼 테니까 책 좋아하게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방법은 간단하다. 항상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다. 항상 책을 옆에 두고, 엄마가 항상 책을 읽는 것이다. 어떤 책이어도 상관없다. 스마트폰을 놓고 책을 들어야 한다. 엄마가 책을 안 읽고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저절로 독서왕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만 게임을 시작하면서 독서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다. 나도 아이가 어느 정도 컸고 이제 책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서 방심했던 적이 있었다. 드라마도 보고 스마트폰을 아이 앞에서 오래 보기도 했다. 내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면 아이가 내 뒤에서 같이 보고 있다. 아차 싶어서 며칠 열심히 책만 팠다. 그러면 아이도 다시 책을 든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스마트폰은 책 보다 달콤하다.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재미있어서 손을 못 떼지만 책을 읽는 것은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실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쉽게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에 무너질 수 있다. 부모가 항상 옆에서 스마트폰을 자제하려고 애쓰는 모습,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답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 부부는 몇 개의 독서회에서 책을 읽고 있다. 독서회를 하면서 읽어야 할 책을 정하면 저절로 책은 읽게 된다. 그리고 가능하면 아이에게도 독서모임을 만들어주면 좋다. 어른들과 얘기할 때와 아이들끼리 얘기할 때 아이들은 정말 다른 모습이다. 책을 읽고 얘기할 때 아이들의 속마음을 저절로 알 수 있다.


지금도 우리는 외출할 때 항상 책을 챙긴다. 책이 아니면 색연필이나 색종이도 좋다. 아이가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놀이를 즐길 수 있게 조금만 신경 쓰면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아이들은 매너 있게 함께 즐길 수 있다. 실수로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고 해서 덥석 스마트폰을 줄 필요는 없다. 카페나 식당에 있는 냅킨이나 빨대, 그것도 어려우면 쿠키 조각으로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다. 아이에게 심심할 때 스마트폰을 주는 편안함이 식사예절과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한 배움뿐만 아니라 지루해도 조금 참아보는 소중한 기회까지 빼앗는 것이다.


외출할 때는 아이가 평소 아주 좋아하는 책을 챙기는 것이 좋다. 아이가 특히 좋아해서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마르도 닳도록 읽은 책들이 있다. 유아기에는 '꽁꽁 이모 (톰 숀노케)'나 '축구하는 오로라(마이클 아바르루크 쿠수가크)'를 좋아해서 자주 챙기고 다녔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즈음에는 한참 '마법천자문(아울북 출판사에서 펴냄)'에 빠져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야밤의 공대생 만화'라는 책을 어디나 들고 다녔다. 이 책은 2학년 때 북스테이에서 읽어보고 좋아해서 산 책이었다. 아마 수십 번은 읽었을 텐데 가지고 다니다가 잃어버렸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기억도 안 나고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자꾸 이 책을 읽고 싶어 해서 도서관에서 몇 번 빌려주다가 결국 다시 샀다. 다시 사고도 아마 수십 번은 더 읽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한번 읽은 책 다시 읽지 않지만 아이들은 읽어보고 재미있는 책은 끝도 없이 반복해서 읽는다. 그래서 아이가 사는 책은 이미 읽은 책일 때가 많다. 그래도 되도록 아이가 원하는 책은 사주는 것이 좋다. 이미 읽어서 다시 안 읽을 것 같지만 앞으로도 수십 번은 읽을 테니 본전은 뽑고도 남는다. 외출할 때 너무 진지하거나 교육적인 책보다는 아이가 아주 좋아하는 책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사람들로 붐비는 공간에서 너무 어려운 책은 아이를 오히려 더 지루하고 괴롭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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