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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27. 2021

길냥이와 함께 한 화요일

아이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에코백에 책이랑 물, 앉을 수 있는 작은 방석도 준비했다. 공동현관을 나서는데 이사를 하는지 소란스럽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소리 때문에 안 나오면 어떡하지? 어제 미리 약속이라도 하고 헤어질걸 그랬다. 아들에게 말했더니 '엄마 고양이하고 무슨 약속을 해요?'라며 시크하게 한마디 하신다. 농담을 다큐로 받아들일 줄 아는 아들!


약속, 아니 몽땅(우리가 자주 만나는 길냥이 이름이다. 풀네임은 짜리 몽땅, 꼬리가 짧아서 지은 이름이다. 결코 몽땅이의 외모를 비하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동네 고양이중 이 아이를 특히 좋아할 줄 모르고 특징에 따라 지은 이름이다. 노란 고양이는 인절미, 삼색 고양이는 콩떡이 뭐 이런 식이 었다.)이가 요즘 낮잠을 즐기시는 단지안 정자에 도착했다. 계단만 오르면 몽땅이를 만날 수 있다. 만일 오늘도 몽땅이가 있어준다면.


옛날 시골 느티나무 아래 낮잠 자던 어르신이 생각나는 몽땅이의 뒷모습


산 앞에 위치한 이 정자는 원래 몽땅이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2주 전부터 몽땅이가 보이지 않았다. 검정고양이 가족이 대신 정자를 지켰다. 몽땅이는 정자와 떨어진 놀이터 근처에서 2주를 위태롭게 지냈다. 그러더니 다시 이곳을 몽땅이가 지키고 있다. 일요일에는 몽땅이가 이곳에서 낮잠을 즐기고 계셨다. 어제도 몽땅이는 정자에서 느긋하게 여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이틀 동안 우리는 몽땅이가 자는 동안 나뭇잎 마시지를 해주면서 보냈다. 다리가 저렸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깔고 앉을 것과 책을 가지고 가서 냥멍을 하기로 했다.


잘 안 보이지만 입을 헤 벌리고 주무신다. 이 자세로만 40분을 주무셨다. 

오늘도 몽땅이가 그곳에 있었다. 우리가 나타나자 야옹 하면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 다리를 한번 지나가더니 자리에 눕는다. 일단 우리는 몽땅이가 마실 물과 나뭇잎 마사지를 제공했다. 몽땅이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감더니 곧 잠이 들었다. 우리도 자리에 앉아서 책을, 아니 몽땅이를 봤다. 몽땅이는 가끔 자리를 옮기거나 물을 마시면서 자그마치 두 시간 반을 내리 잤다. 나중에는 입을 헤 벌리고 자기도 했다. 


세상에 우리를 뭘로 보고. 우리가 해코지하거나 납치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 녀석 우리를 정말 완전 좋아하거나 완전 믿는 것 같았다. 아무리 냥멍을 하고 있어도 깨지 않고 몽땅이는 잠만 잤다. 평소에는 애교도 부리고 우리 다리를 오가며 살랑거리던 녀석도 더워서 그럴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자다가 내 바로 옆에 누울 때는 이렇게 나뭇잎으로 등을 쓰다듬어 주면 바로 잠이 든다.


목이 마른 지 물 리필 두 번 하시더니 코 잔다.

우리는 덥고 배 고파서 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냥멍을 했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몽땅이의 집사, 아니 하인이 된 기분이었지만 행복했다. 이제 몽땅이가 놀이터나 지하 주차장을 아슬하게 다니지 않고 예전처럼 정자에서 쉬고 있어서 좋았다. 나와 아들이 있어도 도무지 불안해하지 않고 꿈까지 꾸는지 뒤척거리거나 입을 오물거리면서 자 줘서 좋았다.

 

이 자세 정말로 사랑스럽다. 마치 죽부인 안고 자는 듯~~


몽땅이는 사실 우리 동네 길냥이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길양이다. 이름도 우리 가족이 지어준 몽땅이와 캣맘이 지어준 송이,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지어준 꼬북이 등등 얼마나 더 많은 이름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먹이를 주는지 몽땅이는 사료를 줘도 조금밖에 안 먹는다고 캣맘에게 들었다. 캣맘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 어떤 주민이 데려가 키우려고 중성화 수술도 개인적으로 해줬는데 도망쳤다고 했다. 그 후로 이 아이는 만인의 연인으로 주민들을 착각의 늪에 빠뜨리고 있다. 다들 몽땅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가족도 그렇지만 어떤 할머니는 얘는 나만 지나가면 반갑다고 야옹 하고 달려온다고 했다. 어떤 아이는 이 동네에서 자기가 몽땅이에 대해 제일 많이 알고 있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이런 몽땅이 옆에서 몽땅이의 여름 낮잠을 두 시간 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고 영광이다.


사실 몽땅이는 요즘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매일 아침 아들과 산책을 하면서 몽땅이를 만나면 행복했다. 몽땅이를 만나지 못하면 불안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길냥이를 싫어하는 주민들에게 잡혀간 것은 아닌지 불안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늦은 밤에 밖에서 고양이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몽땅이가 다른 고양이에게 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사람에게는 한없이 애교 있는 몽땅이가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공포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앉으나서나 몽땅이 걱정이었다.


날씨가 지독하게 더운 여름을 몽땅이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걱정했는데 세상 느긋하게 정자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니 다행한 일이다. 어제는 길을 가다가 길양이들이 다양하게 여름을 보내는 모습을 봤다. 길냥이들의 모습을 보니까 한결 마음이 놓였다. 길냥이중 뛰어난 싸움냥이인 몽땅이는 더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자식을 밖에서 재우는 부모 마음은 늘 노심초사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이의 여름방학, 몽땅이와 함께 정자에서 보낸 화요일의 여름이 뜨겁다.

아파트 화단 풀숲에서 낮잠 자는 고양이, 얼핏 보면 찾기도 힘들다. 그 옆에 콩떡이와 엄마가 그늘에서 쉬고 있다.
처음 보는 고양이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느긋하게 쉬다가 내가 사진을 찍는 바람에 자리를 옮기셨다. 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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