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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ug 01. 2021

길냥이에게 안전한 길은 없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나도 아이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일주일 내내 현관밖에 나가는 일이 없을 때도 많았다. 나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을 위해서 매일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산책을 하면서 길양이를 만나는 일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길양이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보였다. 산책로의 끝쪽에 위치한 화단에 크림색 고양이가 새끼 4마리를 낳았다. 화단의 길보다 조금 높고 아파트 건물 옆으로 작은 공터가 있어서 새끼 고양이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그곳에서 장난을 치며 놀았다. 옆에 높은 나무들도 있어서 운이 좋은 날에는 새끼 고양이들이 나무 타기 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아들이 콩떡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새끼 고양이가 한 달 전부터 눈병을 심하게 앓았다. 처음에는 눈 주위가 빨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심해져서 눈을 잘 못 뜨는 것 같았다. 아들과 나는 걱정이 돼서 자주 그곳을 살피러 갔다. 눈병은 갈수록 심해졌다. 하루는 캣맘이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던 다른 아주머니가 캣맘에게 새끼 한 마리가 눈병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고양이에게 사료를 줄 때는 경계가 심해지는 캣맘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캣맘이 떠나고 그 아주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고양이가 눈병이 난 것 같다고. 아들은 눈병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고 걱정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아들에게 병원에서 눈병 고쳐서 집에 데려가 키우라고 했다. 아들은 우리가 데리고 가면 엄마 고양이가 슬퍼할 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엄마는 다른 고양이 세 마리가 더 있으니까 괜찮다고 말하고 유유히 갈길을 갔다.

 

눈병이 심했던 콩떡이는 표정까지 많이 슬퍼 보였다. 


아주머니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아주머니가 고양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지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길고양이를 함부로 집에 데려가면 안 된다고. 그건 어미 고양이에게도 새끼 고양이에게도 죄를 짓는 거라고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라고 아들에게 말해줬다. 그 아주머니처럼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방법을 몰라서 고양이를 슬프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그 상대의 상황과 마음까지 헤아리는 것이라는 것을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며칠 전 눈병이 나은 콩떡이는 원래의 호기심 많은 아기 고양이로 돌아왔다.

며칠 전에 보니 콩떡이의 눈병은 깨끗하게 나아 있었다. 이제 눈이 빨갛지도 않고 눈도 뜰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어미 고양이의 지극한 보살핌 덕분일 것이다. 사람도 동물도 엄마만 한 보호자는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오늘은 아들과 산책을 하다가 몽땅이를 만났다. 우리 동네 많은 길양이 중에 우리를 반기는 유일한 길양이가 몽땅이다. 사실 몽땅이가 우리만 반기는 것은 아니다. 다른 고양이와는 거리두기를 유지하지만 사람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고양이가 몽땅이다. 오늘도 몽땅이는 산책로 가운데 느긋하게 앉아서 식빵을 굽고 있었다. 우리는 몽땅이를 발견하고 반가워서 다가가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걸어오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몽땅이에게 워! 워! 하면서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몽땅이는 놀라서 얼른 화단으로 피했다. 그 아주머니는 만족한 듯 느긋하게 반려견과 산책을 즐겼다. 그 모습을 보고 아들도 나도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이 동네 길양이들은 평화롭고 느긋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뒤로 산이 있어서 산을 오가면서 길양이들은 캣맘들의 보호 아래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산책로에는 이사나 택배차가 가끔 지나가기도 하지만 거의 차가 없어서 안전한 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길양이들은 자신들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 많은 위험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 만난 캣맘은 사료를 놓아주면 관리실에서 가져가서 버리는 일이 많다고 했다. 우리 아파트 관리소장님이 길양이를 유독 싫어한다고. 다른 동에는 길양이를 학대하는 할아버지가 있다고 했다. 아주 어린 고양이의 꼬리를 자르고는 도망친 그 고양이를 당당하게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몽땅이는 다양한 풀로 사냥 놀이하기를 좋아해서 자연친화적인 놀잇감을 찾아 놀아준다. 얼마 전 단지의 풀을 다 제초하는 바람에 몽땅이의 장난감 찾기가 힘들어졌다. 


나 역시 길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길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일에 관심도 없었고 캣맘에 대해 별 생각도 없었다. 옳다 그르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길양이가 죽기를 바라거나 학대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길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길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길양이에게는 위협이 된다는 것을 알고 나니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였다. 길양이와 놀아주려고 장난감을 만들어서 가져가 놀았다. 일부러 박스를 챙겨간 적도 있었다. 고양이가 박스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몽땅이는 박스에 들어가서 얼굴만 쏙 내밀어서 우리를 웃게 했다. 나의 이런 행동들이 길양이에게 사람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서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매일 몽땅이가 보고 싶어서 찾아가는 것이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이제는 몽땅이를 만나지 않으면 하루가 슬퍼지는 나의 마음을 몽땅이를 위해서라도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못 만날지도 모르는 몽땅이를 위해 박스를 들고 다녔다.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 박스를 들고 집으로 가는 우리의 뒷모습을 몽땅이는 아쉽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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