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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09. 2021

자꾸 선을 넘는 녀석

코로나를 넘어 위드 코로나의 시대, 외출과 만남이 허용된 백신 접종 완료자인데도 이상하게 일이 주일 마음이 힘들었다. 한동안 나아졌던 불면증도 돌아왔다. 모두가 잠이 든 시간, 혼자 깨어 어둠을 응시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 시간에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 아니라 슬프고 화나고 힘든 일만 생각나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하려고 해도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들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고 다닌다. 나는 잠이 안 오면 항상 숫자 1을 센다. 1. 1. 1.... 양을 세면 어디까지 셌는지 생각하느라 오히려 잠이 안 오기 때문이다. 매일 숫자 1을 세다가 그래도 잠이 안 와서 힘든 기억에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내 우울함은 코로나 때문이 아니다. 길고양이 때문이다. 날씨가 따뜻할 때부터 추워지면 길고양이가 어디서 자는지 걱정이었다. 내가 냉큼 데리고 와서 따신 방에서 재워주고 싶었다. 추운 겨울에 밖에서 자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나는 길고양이보다 잘 알고 있다. 몸을 녹일 수만 있다면 부끄러움이나 염치 따위 생각하지 않고 어디든 들어가서 눕고 싶어지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동네 길고양이들이 지하주차장에서 사람들 눈치 보면서 겨울을 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만은 허락해주기를 바랐다. 아파트 카페에 추워지면서 지하주차장에서 자는 고양이, 그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캣맘에 대한 모진 글들이 올라왔다. 마음이 아팠다. 나를 따르는 길고양이 몽땅이도 지하주차장에 자주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아니 고양이를 따뜻하게 해 줄 방법을 생각하느라 매일 생각하고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길고양이 겨울 집을 알아봤지만 겨울 집이 오히려 길고양이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에 겁이 났다. 추운 길에 혼자 두고 올 때 나를 따라오는 길고양이가 안쓰러워서 만나러 가지 않았다. 그러고는 보고 싶어서 하루 종일 고양이 생각만 했다. 결국 다시 길로 나갔다. 길고양이 몽땅이를 만나서 간식도 주고 옆에 앉아서 한참을 궁디팡팡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몽땅이가 내 무릎에 살짝 한 발을 올리더니 나를 올려다봤다. 마치 올라가도 되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무릎에 올라와도 돼. 너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내 무릎에 올라와서 자리를 잡더니 잠이 들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나는 기분이 좋아서 잠든 몽땅이를 내려다봤다.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파도 고양이가 깰까 봐 참았다. 한 사십 분쯤 지나자 몽땅이는 일어나서 내 무릎에서 내려갔다.

두 번째로 내 무릎에 올라온 날 아들이 찍어준 사진이다. 요녀석 자는 줄 알았더니 실눈 뜨고 있었다. 귀욤^^


오늘은 푹신한 방석과 담요를 가지고 나갔다. 내가 몽땅이에게 집을 줄 수는 없지만 잠시라도 마음 편히 따뜻하게 자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몽땅이는 푹신한 방석에 잠깐 앉긴 했지만 다시 내 무릎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허락을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올려봤다. 나는 허락의 의미로 몽땅이의 궁둥이를 토닥토닥해줬다. 오늘은 두 시간이나 잤다.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파서 자세를 바꾸면 잠시 일어나더니 다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잠을 청했다. 잠든 고양이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게 혹시 집사가 되어주겠냐는 프러포즈가 아닐까? 나도 그러고 싶지만 몽땅아 제발 선을 지켜줘.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사이야. 너는 길고양이고 나는 집사가 되기는 힘든 평범한 인간이야. 왜 하필 나를 택했니?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영화도 찍었다가 노래 가사도 생각했다가 마음이 뒤죽박죽이었다.


두 시간을 길고양이와 밖에서 보냈더니 손도 시리고 너무 추웠다. 일요일에는 포근했던 날씨가 비가 내리고 나서 갑자기 한겨울처럼 추워졌다. 낮에도 이렇게 추운데 밤에는 얼마나 추울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몽땅이뿐만 아니라 다른 길고양이들은 어디서 추위를 피해 잠을 자는 것인지 짠한 마음에 잠든 몽땅이가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않았다. 한참 뒤에 잠에서 깬 고양이는 천천히 화단으로 걸어갔다. 내가 방석과 담요를 챙겨서 집으로 가려는데 고양이가 다시 나를 따라왔다. 벌써 가냐고? 잠깐 소피보러 간 거라고 갈 거면 담요는 내놓고 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몽땅아 우리 아들 줌 수업 끝날 시간이야. 울 아들 밥도 챙겨줘야지. 나는 아쉬움에 자꾸 돌아보며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도 나는 자꾸 마음이 쓰였다. 이렇게 잠깐이라도 길고양이에게 따뜻한 시간을 주는 것이 잘하는 일일까? 오히려 길고양이에게 헛된 희망을 주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차피 이 아이를 키울 수가 없는데 몽땅이가 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아니 내가 선을 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추운데 잠깐이라도 따뜻한 온기에 몸을 녹이게 해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이래저래 생각하다가 나는 결론을 내렸다. 누가 뭐라고 하건, 심지어 누가 철거하거나 망가뜨리더라도 길고양이 몽땅이의 겨울 집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잘 때는 어디서 자는지 모르지만 사람이 그리워서 산책로를 떠나지 못하는 몽땅이를 위해 따뜻한 고양이 방석도 깔아줘야겠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누군가 없애버리면 나는 다시 만들어주면 된다. 겨울이 갈 때까지만 나도 선을 넘어야겠다. 용기를 내서 내 무릎으로 올라온 길고양이 몽땅이의 용기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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