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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07. 2021

길냥이 전성시대, 길냥이와 거리두기

시작은 앨리스였다.

아파트를 산책하다 보면 자주 길냥이들을 만난다. 길 한복판에 마치 단지 전체가 자신들의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긋하게 앉아서 졸고 있는 냥이를 보면 노곤함이 밀려와서 같이 누워서 햇볕을 쬐고 싶다.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서 말 한마니 없이 서로를 응시할 때도 많다. 마치 대화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앉아 있다가 동시에 일어나서 같은 방향으로 사라진다.

 

단지에 길냥이들이 많은 만큼 캣맘들도 많은 것 같다. 자주 캣맘을 만나기도 하고, 작은 참치캔에 담김 사료가 화단 작은 나무 아래 놓여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캣맘들 덕분인지 단지 안의 길냥이들은 털이 윤이 나고, 토실한것 같다. 마치 집에서 잘 자고 산책 나온 것 같은 깔끔한 모습이다. 동네 아이들은 길냥이를 보면 귀여워서 등을 쓰다듬는다.


아파트에 길냥이들이 너무 많다 보니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긁어놓거나 자동차에 발자국을 남기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차를 계단처럼 오르는 길냥이의 힘찬 걸음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관리실에서는 길냥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방송을 할 때가 많다. 지하주차장 차를 더럽히거나 발톱으로 긁어서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내차에도 냥이들의 앙증맞은 발자국이 남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생각 없이 냥이의 발자국이 귀엽기만 했다. 마치 눈 위에 남은 냥이의 발자국처럼 반갑다니 더 매운맛을 봐야 할 것 같다.


발자국이 이렇게 예쁜 생명체, 길냥이는 겨울이 괜찮을까 걱정해 본다.

한창 이런 방송이 나올 때 캣맘들은 길냥이들에게 몰래 먹이를 챙겨준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지나가면 아닌 척 시치미를 떼는 것이다. 나도 그런 캣맘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또미(12살 나의 아들)도 길냥이를 보면 만지고 싶어 한다. 또미에게 접촉성 알레르기가 있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키울 수가 없다. 어쩌다 개나 고양이 털이 스치면 피부가 빨갛게 올라온다. 다행히 또미는 개나 고양이에게 무관심했다. 앨리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시작은 앨리스였다. 또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겨울이었다. 북스테이 '산책하는 고래'에서 1박 2일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책을 출판하고 판매하는 카페 겸 펜션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앨리스가 있었다. 카페에 자주 찾아오는 길냥이였는데 어느새 카페에 주인이 되었고, 이제는 책 보다 유명해진 고양이가 되었다고 한다. 또미도 앨리스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것 같았다. 차마 만지지는 못하고 옆을 지키고 있었다.



'산책하는 고래' 를 냥이집으로 선택한 길냥이,  앨리스의 북스테이

솔직히 앨리스는 나를 비롯한 남편까지 완전히 녹였다. 사랑스러운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앨리스의 도도한 태도가 문제였다. 우리가 책을 읽고 있으면 앨리스는 책상 위에 앉아서 무심하게 우리를 쳐다본다. 우리가 아무도 만져주지 않으니까 우리 다리 사이를 지나가기도 한다. 야 나 앨리스야. 나 안 예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뻤다. 솔직히 집에 오는 길에 가방에 넣어 오고 싶을 정도로 예뻤다. 하지만 또미는 만져 보지도 못하고 눈으로만 탐닉하고 있는 앨리스에게 내가 사랑을 줄 수는 없었다. 또미가 얼마나 앨리스를 좋아하는지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앨리스를 만나고 나서는 또미가 길냥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지거나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몇 번의 두드러기와 피부과에서 맞은 주사의 기억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에 고양이가 정말 많다. 그리고 정말 다들 예쁘다. 그리고 다들 우리에게 무심하게 햇볕을 즐기고 있다. 우리가 지나가도 피하거나 놀라지도 않는다. 나도 등을 쓰다듬거나 무릎에 올려놓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세 가족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길냥이 한 마리가 화단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아들이 냥이에게 다가갔다. 나는 긴장했다. 혹시 냥이를 만지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말리지 않고 지켜봤다. 또미는 냥이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냥이는 신경도 쓰지 않고 눈만 졸린 듯 깜빡였다. 또미는 조금씩 냥이에게 다가갔다. 살짝살짝. 둘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차마 만지지 못하는 냥이와 또미는 그렇게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다. 한참 후에 냥이는 무심하게 일어나서 느릿한 걸음으로 나무 뒤로 사라졌다.  


좋아한다고 덥석 잡을 수 없는 것들이 다. 그렇다고 좋아하지 않는 척하기도 어렵다. 마음이 자꾸 가는데 아닌 척할 필요까지 없다. 마음이 갈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가면 된다. 그리고 잠깐 마음을 나누는 그 시간을 기억하면 된다. 잠시 같은 곳을 바라보면 된다. 또미는 아마 그 시간을 저장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만지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고, 함께 하는 그 순간이 사랑이라고 또미는 냥이에게 속삭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여기까지야. 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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