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으로 중단됐던 <1박 2일>이 다시 방송되었다. 아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아들과 함께 챙겨보다가 나도 매주 보는 프로였다. 여름이라 시골집에서 점심과 저녁, 실내 취침을 걸고 6명의 멤버들이 경쟁을 하는 콘셉트였다. 저녁밥 삼겹살을 위해 개울에서 축구하는 장면을 보고 나는 멤버들 모두 너무 고생했으니까 다 같이 삼겹살 파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1박 2일>에서 내가 가장 힘든 것이 멤버들 중 반은 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날처럼 멤버들이 지친 모습이 방송으로도 느껴질 때 식사권을 갖지 못한 멤버들이 안쓰럽고 걱정이 된다. 차라리 방송에서만 먹을 것 안 주고 뒤에서 따로 챙겨주는 방송용 콘셉트이면 좋겠다.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이날 진 팀에게 주어진 저녁은 다슬기였다.
어린 시절, 여름밤이면 손전등을 들고 도랑으로 다슬기(시골에서는 다슬기를 고디라고 불렀지만 읽기 편하게 다슬기라고 쓰기로 했다.)를 잡으러 갈 때가 많았다. 다슬기를 잡는 것도 좋지만 언니들이랑 물장구치듯 밤에 도랑에서 노는 것이 좋았다. 다슬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매번 한 바가지가 금방이었다. 다슬기가 많아서였는지 도랑 근처에 반딧불이 정말 많아서 돌아오는 길도 행복했다. 밤에 잡은 다슬기는 밤새 해감하고 다음날 된장 조금 넣고 삶아서 이쑤시개로 하나씩 쏙쏙 살을 꺼낸다. 하나씩 꺼낸 다슬기 살로 된장국을 끓이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한 알씩 먹기도 했다. 엄마가 쌉싸름한 다슬기를 넣고 된장국을 끓여주면 참 맛있었다.
2년 전에 아들이랑 농장체험 갔다가 개울에서 다슬기를 잡은 적이 있었다. 종이컵으로 두 컵 정도 잡은 다슬기가 씨알이 굵어서 나는 아들에게 다슬기 된장국을 끓여준 적이 있었다. 쌉싸름하고 초록빛이 나는 다슬기를 아들은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 후로 계곡에 갈 때마다 아들은 다슬기 된장국을 끓여주라고 했다. 하지만 놀 때 잡은 다슬기를 집에 올 때까지 살려서 오는 일이 어려웠다. 몇 시간도 안 돼서 죽는 다슬기를 얼른 계곡에 놓아주고 왔다. 대신 마트에서 파는 논고동살로 된장국을 끓여주었다. 맛은 다르지만 기분만 내자는 것이었다.
다시 <1박 2일>로 돌아와서 다슬기살을 빼먹던 멤버들에게 삼겹살팀이 제안을 했다. 다슬기로 공기놀이해서 이긴 사람에게 삼겹살 한 줄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다슬기 공기를 보고 아들이 갑자기 방에서 공기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아들은 공기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어라? 3년 전에는 전혀 하지 못하던 공기놀이를 성공까지는 아니지만 아슬하게 실패할 정도는 되었다. 그동안 공기를 꺼내거나 연습을 한 적도 없는데 그냥 나이가 들었다고 손놀림이 달랐다. 나는 아들에게 공기놀이에 대해 코치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1단을 하나씩 성공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예전에는 전혀 못했던 공기놀이가 성공하자 신이 났는지 멈추지 않고 공기를 던지고 하나씩 잡기 시작했다. 1단이 성공하자 2단, 어렵게 2단까지 성공한 아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에게 제안했다. 나는 왼손으로 하고 아들은 오른손으로 해서 2단까지 먼저 성공하는 게임을 하자고 했다. 왼손으로 해도 나는 쉽게 2단에 성공했다. 3단도 성공했다. 아들은 그래도 속상해하지 않고 1단을 성공하고 드물게 2단까지 성공하는 자신의 실력에 행복해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공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2시간을 꼼짝도 않고 공기놀이를 했다. 잘 시간이 지났는데도 좀처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슬슬 지겹고 팔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또미야 그만하고 잘 시간인데."
"엄마 조금만 더 연습하고 잘게요."
"좋아 그럼 5분."
"엄마 5분을 누구 손에 붙여요."
"손에 붙이라는 거 아닌데. 그만하라는 건데. 좋아 그럼 10분."
"에이~~ 엄마 조금 더 쓰세요. 20분 콜!"
아들은 협상의 달인이었다. 그렇게 20분을 더 공기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1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아들이 제안해왔다.
"엄마 내가 20분 동안 2단까지 성공할 때마다 1분씩 추가하기로 해요."
"내가 왜? 싫은데."
"엄마 치사한 사람 아니잖아요."
헉! 아들은 고수였다. 나는 아들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20분 동안 최대한 많이 성공하기 위해 더 이상 나에게 공기를 넘기지 않고 쉬지 않고 공기를 던졌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 끝에 한 번의 성공을 거두었다. 아들은 못내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한 번이라도 성공한 자신이 대단하다는 듯 마지막 1분까지 꽉 채워서 공기를 던졌다. 그리고 마음 약한 나는 2분이 더 지난 후에야 그만!이라고 외쳤다.
공기를 정리하고 아들이 구부정하게 일어나더니 이불 위에 누웠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할아버지처럼 에고고 하는 소리까지 내면서. 그리고 아들이 나를 부르더니 허리를 발로 밟아달라고 했다. 나는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려고 했다. 고작 12살 아들의 허리를 밟아주는 엄마라니. 나는 아들이 다칠까 봐 싫다고 했지만 아들은 간절하게 허리가 뻐근해서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누워 있는 아들의 허리를 살짝 발로 밟아주었다.
"엄마 체중을 실어서 밟아주세요. 그래야 시원하죠."
"아들 내 체중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좀 많이 나가거든. 오히려 니 허리 다칠까 봐 못하겠어."
"엄마 괜찮아요. 체중 실어서 꾸우꾹 밟아주세요."
나는 할 수 없이 체중을 싣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힘을 줘서 밟아줬다. 아들은 그렇지 그렇지 아 ~시원하다 감탄사를 날렸다. 이 그림 뭔가 이상하고 웃겼다. 웃기면서 뭔가 익숙했다. 내가 출산 후부터 쓰고 있던 다리 마사지 기계를 아들이 일 년 전부터 매일 사용하고 있다. 아니 하루에 몇 번씩 마사지 의자에 앉는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오늘의 사태는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들은 온탕에 들어갔을 때 왜 시원하다고 하는지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눈을 뜬 나는 아들이 공기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엄마 공기놀이 정말 재미있어요."
나와 눈이 마주친 아들이 말했다. 매일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아들이지만 눈뜨자마자 공기놀이를 혼자 하고 있을 줄을 몰랐다. 한참을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는 내 옆에 누우면서 아들이 말했다.
"엄마 공기를 많이 했더니 허리가 뻐근하네요. 어제처럼 밟아주세요."
나도 어릴 때 친구들이랑 공기놀이 많이 하고 놀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공기놀이에 중독되면 밤낮이 없다는 것과 공기놀이에 반드시 허리 밟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아침 기상과 함께 내 체중이 다 실리지 않으면서도 아들을 만족시킬 만큼 적당히 힘을 주면서 아들의 허리를 꾸우꾹 밟아주었다. 공기놀이가 이렇게 위험한 줄 왜 예전에는 몰랐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