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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16. 2022

하남자 아들!

아들과 장을 보러 갔다가 마트 안에 있는 다이소 매장에 갔다. 특별히 살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이소에 가 본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 구경하러 간 것이다. 아들은 들어서자마자 지루해했다. 이것도 쇼핑이라고, 아들도 남자라고(?) 다이소 아이쇼핑이 지루한 모양이었다. 꽤 넓은 매장을 둘러보는 동안 아들은 뭐 사러 온 거냐고 계속 물었다. 나는 마치 명품 매장에 온 것처럼 여유 있게 말했다. 그냥 즐겨.


온몸을 배배 꼬면서 어슬렁거리던 아들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집은 것은 카드였다. 마술사들이 카드마술 할 때 쓰는 것 같은 카드, 원카드의 그 카드.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이런 카드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거기서도 쓸 것 같은 그 카드였다. 나에게는 원카드나 라스베이거스가 아닌 마술사들의 공연에서 본 것이 익숙한 바로 그 카드였다. 카드를 손에 넣은 아들은 이제 그만 계산하러 가자고 했다. 그렇게 다이소에서 2000원을 주고 산 카드에 아들은 행복해했다.


집에 오자마자 아들은 카드를 꺼내 이리저리 만져보고 마치 타짜처럼 카드를 섞기도 했다. 물론 어설펐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진지했다. 요즘 아들의 반에서 유행하는 놀이가 카드놀이라고 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카드놀이를 한다고. 내가 카드놀이를 몰라서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선생님이 있는 교실에서도 한다고 하니 나쁜 놀이는 아닌 것 같았다.


"엄마 애들이 나보고 하남자래요."

"하남자가 뭔데?"

나는 평생 처음 들어보는 하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궁금해하며 물었다.

"상남자가 아니라 하남자라는 거지. 내가 카드놀이할 때 너무 안전할 때 멈춘다고 하남자라는 거지."

아들의 말을 듣고 하남자가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아들은 겁이 많고 조심스러운 편이다. 무리해서 투자하거나 모험하는 성격이 아니다. 카드놀이의 방법을 모르는 내가 짐작하기에도 아마 아들은 조금의 위험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아들에게 붙여준 별명이 '하남자'란다.


"괜찮아. 엄마는 하여자니까."

"잉 뭔 말이에요?"

"아들! 상남자의 반대가 하남자라는 거잖아. 그럼 상여자도 있겠지. 엄마는 상여자는 아니니까 하여자인거지. 하여자의 아들이 하남자인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네 뭐."

"아~~"

"아들 혹시 친구들의 말에 상처받았어?"

"아뇨. 전혀요."

"그리고 엄마는 아슬아슬하게 스릴을 즐기는 모습이 남자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엄마 그냥 그랬다는 거에요. 별일 아니에요."

하남자 답지 않게 쿨하게 말하고 아들은 카드를 섞으면서 놀았다.


유난히 조심스럽고 겁이 많은 아들을 볼 때마다 내가 너무 조심스럽게 키워서 그런 것은 아닐까 마음이 좋지 않다. 타고난 기질도 겁이 많았지만 나 역시 혹시 다칠까 봐 안전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아들이 더 조심스럽고 겁이 많아진 것 같아서 요즘은 미안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아들을 남자답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남자답다거나 여성스럽다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색의 옷을 입었다. 특히 빨간색이나 핑크색 옷이 많다. 아들이 색깔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다양한 색깔에 노출시켰다. 아들의 도시락이나 소품은 분홍색이나 노란색으로 샀다. 남자는 이러해야 한다거나 남자니까 울면 안 된다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기를 바랐다.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한다고 했다.


6살에 어린이집에 간 아들은 핑크색은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깔이라고 했다. 남색 옷이 좋다고 했다. 아니라고, 남자는 핑크라고, 핑크색이 잘 어울리는 남자도 많다고 말해도 아들은 파란색 계통을 더 좋아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옷가게에서 핑크색 남자아이 옷은 찾기도 힘들었다. 핑크색 옷을 입지 않아도 아들은 남자답게 자라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고민에 공감하지 못했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오거나 학교에 챙겨 가야 할 준비물을 미리 말하지 않는 아들이 답답하다는 말이 와닿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들은 항상 준비물을 스스로 챙겼다. 숙제가 있는 날이면 숙제를 끝내야 편히 잠들었다. 선생님이 공지한 내용을 언제나 미리 알려줬다. 우산 같은 물건을 잃어버리고 오는 일도 별로 없었다. 아들의 가장 남자다운(?) 점은 애기 때부터 일관되게 애교가 없다는 것뿐이다.


아들이 어떤 남자로, 아니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지금처럼 쭉 하남자로 자랄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어깨 딱 벌어진 상남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모습이어도 나는 상관없다. 나에게 아들은 그저 태어나서 처음 내 품에 안기던 모습 그대로, 유일하고 소중한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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