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차리는데 괜히 웃음이 난다. 기분이 좋다. 빨리 남편이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전화로 이야기해도 좋지만 얼굴을 보고 남편의 표정을 보면서 말하고 싶다.
띡! 띡! 띡!
드디어 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얼른 현관으로 달려가서 남편을 보자마자 내 몸속에서 누르고 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보 오늘 나 진짜 웃긴 일이 있었어. 내가 ○○○에서 장을 보고 계산을 하는데 직원이 신규 회원 선물이 있네요. 하면서 주방세제를 주는 거야. 나는 별생각 없이 받아서 집에 왔는데 영수증을 보니까 내 이름이 아닌 거야. 내가 말한 회원번호를 잘못 알아듣고 직원이 사은품을 준거지. 영수증에는 신규 회원 사은품이 주방세제라고 쓰여 있는 거야. 웃기지? 나 괜히 기분이 좋아졌잖아. 공짜로 받은 것 같고…….
남편은 신발을 벗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내 이야기를 듣더니
참 별일 다 있네. 잘 됐네.
무심하게 대답하고 씻으러 갔다. 그래도 나는 기분 좋게 식탁에 국도 놓고 밥도 퍼서 놓는다. 참 별거 아닌데 공짜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 같다.
○○○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친환경 매장이다. 우리 가족은 대부분의 식품과 생활용품을 이곳에서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할 때는 회원 가입할 때 받은 번호를 말해야 한다. 오늘 직원의 실수로 받은 주방세제는 매장에서 칠천 원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으로 내가 자주 사서 쓰는 제품이다. 다른 마트에서 사는 제품보다 비싸고 양도 적지만 가족과 환경을 위해 친환경제품을 사용하려고 한다.
기분 좋게 후일담을 이야기하면서 남편과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나 때문에 사은품을 받지 못하게 될 그 신규 회원이 생각났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사은품을 가져간 것을 알고 있을까? 모르면 좋겠지만 혹시 안다면 기분도 나쁘고 아까울 텐데……. 혹시 매장에 가서 누가 자신의 사은품을 가져갔는지 물어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가져갔는지 모를 거야. ○○○매장에 CCTV가 있었나? 당연히 있겠지? 설마 신규 회원이 직원에게 CCTV 영상을 보자고 하지는 않겠지? 설마……직원이 영상을 보고 나를 기억해 내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회원번호가 잘못 전달된 것을 알고도 모른척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이런 경우도 절도가 되는 것일까? 이런저런 불안에 나는 더 이상 공짜로 받은 주방세제가 반갑지도 좋지도 않았다. 더 이상 웃음도 나오지 않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고 있어도 재미있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온통 머릿속이 주방세제로 가득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불안하기도 하고, 실수한 직원이 미워지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잠을 설치니 나중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나에게 온 행운도 공짜도 아니고 재앙이다.
나는 오픈 시간에 맞춰 매장을 찾아갔다. 내 생각대로 매장은 CCTV로 녹화되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주방세제와 영수증을 꺼내 직원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어제 여기서 물건 사고받은 사은품인데 회원번호가 잘못 전달됐나 봐요. 저는 신규 회원이 아닌데 신규 회원 사은품을 주셨더라고요. 회원 이름도 제가 아니고요.
직원은 영수증을 확인하더니 결제 취소를 하고 나의 회원번호로 다시 결제를 했다. 나는 영수증을 받아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 기분 좋게 매장을 나왔다. 어제 공짜로 주방세제를 들고 나올 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아이의 하교시간에 학교 앞에서 사탕이나 학용품, 장난감을 주는 학원이나 학습지 사람들이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받지 말라고 말했다. 아파트 앞에서 우유배달 홍보용 시식 우유도 절대 나는 받지 않는다. 학교 앞에서 주는 사탕이나 홍보용 우유 하나쯤 받아도 되겠지만 아이가 혼자 있을 때 나쁜 사람이 주는 것도 망설이지 않고 받을까 봐 받지 말고 오라고 했다. 그래도 아이는 가끔 공책이나 사탕을 받아올 때가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오늘은 받았지만 다음에는 받지 말고 오라고 한다. 혹시 갖고 싶은 것이 있거나 사탕을 못 받아서 속상하면 엄마가 사줄 거니까 말하라고 한다.
한 번은 학교 앞에서 달고나 사탕을 주는 학원 사람이 있었다. 아들은 이상하게 달고나에 약했다. 학교 앞에서 가끔 달고나를 만들어 파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내가 못 사게 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아들이 그 달고나 사탕을 못 받은 것이 속상했는지 하교해서 말했다. 나는 편의점에 가서 달고나 사탕을 사주었고, 아들은 조금 먹더니 맛이 없다고 버렸다. 다른 아이들은 다 받는 공짜, 아이만 못 받으면 아이는 손해 본 것 같고 아쉬워서 계속 속상할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이 들면 아들이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사람, 바로 내가 사준다. 공짜는 아무에게나 받으면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코로나로 한창 힘든 작년이었다. 아파트 놀이터 한쪽에 학습지 홍보부스가 설치되었다. 이런 시국에 돈 받고 그런 부스를 설치한 아파트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부스에서는 아이들은 누구나 돌림판을 돌려서 나온 선물을 준다고 했다. 아이의 친구들은 매일 가서 한 번씩 돌리고, 연필이나 과자 등등을 받는다고 하면서 아들도 은근히 해보고 싶어 했다. 꽝이 나와서 아무것도 받지 못한 친구조차도 부러워했다. 나는 대책이 시급함을 느꼈다. 아이의 머릿속에 돌림판이 뱅글뱅글 돌고 있을 것이다.
남편과 나는 아들만의 돌림판을 만들기로 했다. 찍찍이 인형 다트에 게임 십 분권, 도서구매권, 연필, 사탕, 꽝 등등을 걸고 던져서 맞는 상품을 주었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아빠가 퇴근하면 하루에 한 개씩 던지게 했다. 아들의 목표는 게임십분이었다. 낮에 게임십분을 위해 다트 던지기 연습도 했다. 게임을 맞추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노력의 대가로 게임을 몇 번 할 수 있었다. 아들은 학습지 돌림판보다 우리 집 인형 다트가 더 좋다고 했다. 게임은 학습지 부스에는 없으니까.
살면서 공짜가 주는 달콤함이 얼마나 짧고, 무의미한지 점점 더 알게 된다. 가끔 지인이 카톡으로 기프트콘을 보내면 나는 고민에 빠진다. 그냥 있기도 뭐하고 바로 다시 답례 선물을 보내기도 뭔가 불편해서 일주일 정도 간격을 두고 다시 선물을 보낸다. 꼭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선물을 받고도 그냥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서 고민 끝에 결국 보내고 만다.
지인이 뮤지컬 티켓을 줘서 간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공짜 티켓에 좋았지만 고맙다고 밥을 샀더니 밥값이 뮤지컬 티켓값보다 비쌌다. 그러면서도 공짜 티켓을 준 지인에게 '공짜 티켓, 감사해요'라고 인사까지 했다. 뮤지컬 잘 보고 와서 나는 뭔가 계속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티켓값은 밥값으로 퉁 쳤다고는 하지만 나는 마음을 손해 본 것이다. 당당히 금액을 지불하고도 고맙다고 공짜로 받은 것 같은 인사를 하면서 이거 뭐지? 왜 기분이 나쁘지 하면서 느낀 불편한 마음을 지불했으니 결국 나는 받은 것보다 더 값을 치른 것이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결국 공짜는 없다는 옛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맞는 말인지를 깨달음과 동시에 나는 공짜에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 대가를 치러야 하고, 그 대가는 돈이거나 물건일 수도 있고, 나의 노동이나 불편한 마음일 수도 있다. 아이에게도 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말한다. 공짜로 받으면 그건 위험하거나 불편한 마음이라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한다. 마트에서 시식을 하면 필요하지 않아도 사게 되는 것과 같은 불편한 마음이 그런 것이라고. 엄마가 살아보니까 확실히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