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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12. 2021

큰일이다. 마음이 늙지 않고 있다.

책을 볼 때 글씨가 작고 흐리게 보이기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었다. 불편하면서도 아직 아니라고 생각했다. 돋보기를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루고 있었다. 코로나로 외출보다는 책 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경점을 찾았다.


"책 볼 때 글씨가 작고 흐리게 보이는데 돋보기를 써야 할까요?"


안경점 직원에게 물었다. 말하면서도 내심 나는 아직 노안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던 것 같다. 노안이 아니라 지금 쓰는 안경의 초점이 안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별로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태도로 직원이 물었다. 많이 젊어도 30대 초반처럼 보이는데. 나랑 나이 차이가 나도 열 살 안팎일 것 같은데 연세라고 극존칭을 써주니까 슬픔과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마스크 쓴다고 대충 잠바 걸치고 온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화장도 하고 액세서리도 좀 걸치고 올걸 그랬나. 뭘 해도 아마 그 직원은 연세를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돋보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나름 정성스럽게 시력을 재고 안경테를 골라서 기다렸다. 기다리면서도 머릿속에서 나는 연세가 어떻게 되지 생각했다. 생물학적으로 마흔다섯, 적지 않은 나이다.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나이라고 또 미련을 남긴다. 그건 내 마음이 아직 마흔다섯이 아니라서 그렇다. 옷을 고르거나 액세서리를 고를 때 나는 아직 20대 취향으로 고를 때가 많다. 후드티나 레깅스에 롱티셔츠를 입는 것까지는 평범하다. 나는 이 나이에도 멜빵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데님 소재의 멜빵 원피스와 멜빵바지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 매번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면 사게 된다. 동갑인 지인이 나의 이런 옷차림을 보고 용기 있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아마 사십 대 늙은 여자의 옷차림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인뿐만 아니라 내가 그러고 다니면 모르는 사람들도 주책이라고 속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아니 더 나이가 들어도 그러고 다니고 싶다.


스무 살의 나는 검은색 옷만 입고 다녔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도 없는데 마치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처럼 단정한 차림으로 다녔다. 민소매 옷도 반바지도, 치마도 안 입고 오직 정장 바지 차림이거나 청바지에 검정 재킷을 고집했다. 나이가 드니까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사실 치마도 입고 싶고, 화려한 무늬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들을 선망했다. 그런데 내가 입으면 누가 보는 것 같고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고 다닌다고 생각할까 봐 검은색만 입었다. 그때 내 스타일은 당시의 내 마음만큼 어둡고 칙칙했다. 나이가 들고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마음에도 다양한 색깔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홍분홍해진 마음처럼 옷도 화사하게 입고 싶었다. 노란색이 눈에 들어왔다. 스무 살에 입지 않았던 후드티나 원피스, 치마도 화사하게 입고 다닌다. 이걸 회춘이라고 해야 할지 주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우리나라는 나이에 맞는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이 은연중에 있는 것 같다. 결혼을 하면 긴 머리보다 단발을, 더 나이가 들면 짧은 커트머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옷차림도 단정한 단색의 원피스나 무채색 블라우스를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지인은 나에게 용기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나는 나이와 반대로 옷을 입고, 가끔 원색의 귀여운 귀걸이가 끌리기도 한다. 내 또래의 주변 사람들은 귀걸이가 두 개만 필요하지만 나는 5개가 필요하다. 결혼하고 한참 지나 용기 있게 귀를 몇 개 더 뚫었다. 20대에는 없던 용기가 아줌마가 되니까 생긴 것 같았다. 요즘은 타투가 흔한 것을 보고 타투가 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어이없어했다. 그냥 타투 스티커로 만족하면 안 되겠냐고. 사실 나도 겁이 나서 타투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단지 자꾸 마음이 스무 살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50, 60이 되고 나서 마흔에라도 해볼걸 하고 후회할까 봐 걱정이 된다.


이미 나는 노안이 와서 돋보기를 써야 하고, 연세를 묻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늙지 않는다. 아니 마음이 자꾸 어려지고 있다. 아직도 공유를 보면 설레고, 송중기를 보면 오빠~~ 가 절로 나온다. 어쩌면 좋을꼬. 철들면 늙는다고 하니 어린 마음으로 철없이 살아야 할까 보다. 주책맞은 아줌마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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