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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24. 2021

커피를 끊으면 빵을 어떻게 먹지?

한 달 전이었다. 나는 남편과 아이에게 이제부터 커피를 하루에 한잔만 마시겠다고 선언했다. 커피를 많이 마셔서인지 며칠 전부터 속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랜 불면증도 이제 지겨웠다. 나름 엄청난 선언이었음에도 남편과 아이는 '눼눼!' 하고 말았다. 어차피 지키지 못할 결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이번엔 꼭 지켜서 나도 커피 없이 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하루도 그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 모닝커피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아침에 하루치 커피를 이미 마셨다. 이제 나머지 커피는 모두 차로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남편이 퇴근길에 빵을 사 온 것이다. 이건 내가 결심을 지키지 못하게 하려는 음모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커피를 내렸다.


"엄마 커피 아침에 마신 것 아니에요?"


아들이 말했다. 하루에 한잔 마시기로 했는데 왜 또 커피냐는 뜻이겠지. 작심삼일도 아니고 작심 하루도 못하고 실패한 결심이 내가 생각해도 웃겼다.


"아들! 나도 한잔만 마시려고 했는데 빵을 먹을 때 커피가 필요하잖아."

"왜요?"

"그러게. 빵과 커피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그냥 커피 마시고 싶다고 하지."


아들과 남편이 합심해서 놀리기 시작했다. 치욕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빵을 먹을 때 커피를 안 마시려면 빵을 안 먹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런데 커피 때문에 빵을 안 먹기에는 빵이 너무 먹고 싶다.


"오늘까지만 두 잔 마시는 거야?"

"눼눼!"


남편은 역시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그 이후로도 이런저런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는 일들이 생겼다. 냉동 붕어빵을 오븐에 구웠는데 어찌 커피를 안 마시겠는가? 이번엔 남편이 퇴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콩설기를 사 왔는데 커피 없이 어떻게 떡을 먹을 수 있나? 내 생일이라고 남편이 치즈케이크를 사 왔는데 치즈케이크는 정말 아메리카노가 없으면 먹지 못하는 거 아닌가? 이래저래 여전히 다시 하루에 세잔 이상 커피를 꼬박꼬박 마시고 있다.


"커피 하루에 한잔만 마신다고 하지 않았어?"

"그럴 생각이었지.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커피를 안 마시는 사람은 빵을 어떻게 먹어?"

"나는 커피 없어도 빵 먹는데 아무 문제없어. 누구나 자기처럼 빵 먹을 때 커피를 꼭 마시는 건 아니야."

"믿을 수 없어."


정말 나만 커피 없이 빵 먹는 게 힘든 걸까? 이대로라면 나는 커피를 줄이거나 끊을 수 없을 것이다. 대책이 시급하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도 빵이나 떡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빵을 먹을 때 우유나 요구르트를 마시기로 했다. 매우 건강한 습관처럼 보였다. 빵을 다 먹을 때까지 커피를 안 마시는 내가 뿌듯했다. 하지만 빵을 다 먹고 30분을 채우지 못하고 나는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정말 나는 커피 중독이 확실하다. 그리고 나는 원래 중독에 매우 취약한 유전자를 가진 것 같다.


내가 처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믹스커피를 한번 마신 후부터 하루에 한잔 이상 무조건 마셔야 했다. 그때 친한 친구도 커피를 좋아해서 우리는 서로의 집에 놀러 가면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곤 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매일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아르바이트비를 다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쓰는 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시절은 거의 카페에서 보낸 것과 같다. 그때는 지금처럼 원두커피가 많지 않아서 인스턴트커피를 프림 없이 진하게 거의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게 해서 설탕만 넣고 마셨다. 나는 빈속에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는 첫 커피가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배를 데워주는 그 진한 뜨거움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속이 너무 아파서 몇 달 고생을 하고 나서는 지금까지도 공복에 커피 마시는 일은 없다. 공복이면 커피도 포기였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사실 나는 매일 하루 커피 한잔을 위해 애쓰고 있다. 한 달 동안 하루 한잔만 마신 날은 딱 하루였다. 다소 저조한 결과지만 나는 그 하루라도 지켜낸 내가 뿌듯하다. 도대체 커피가 뭘까? 왜 나는 그 까맣고 쓴 커피한테 매번 이렇게 패하는 것일까? 아들도 궁금했는지 물었다.


"엄마 커피가 왜 그렇게 좋아요?"


나도 정말 궁금하다. 맛 때문이라고 하기에 커피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끊기 어렵다. 다른 맛있는 음식은 한 달에 한두 번 먹어도 되는데, 심지어 너무 자주 먹으면 질리기도 하는데 왜 커피는 매일 서너 잔을 마셔도 다음날이면 다시 당기는 걸까? 심지어 하루 세잔 커피를 마시고도 밤에 커피가 생각나면 나는 빨리 아침이 와서 커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다. 이 정도의 중독은 혹시 재활센터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 빵을 먹기 싫어질지도 모른다. 커피를 완전히 끊게 되면 나는 아마 카페를 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커피 한잔 사라졌을 뿐인데 내 생활의 일부가 잘려나간다. 뭉텅 잘려나갈 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커피는 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전 07화 아들은 일상을 쥐어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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