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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06. 2022

아들의 뻗친 머리는 고데기로 진정시킬 수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아들을 보고 빵 터졌다. 속으로 쌤통이다 싶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엄마 말 안 들으면 자다가도 머리가 뻗치는 법이다. 아들의 머리카락이 동서남북으로 자유롭게 뻗쳐 있었다. 아들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 일어나셨어요 아침 인사를 한다. 웃음도 나고 재미도 난다.

 

아들 머리카락이 심하게 뻗쳤는데.

아~ 알아요. 이렇게 심하게 뻗칠 줄 몰랐는데.


아들은 화장실로 가더니 머리에 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묻혀 와서 빗으로 빗는다고 난리다. 속으로 그런다고 되겠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는 대로 두었다. 복수다 이눔아! 한참을 물 묻히고 했지만 사방으로 힘차게 뻗어나간 머리카락들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감아야 진정될 것 같다며 아들은 머리에 빗질을 해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 그렇게 통쾌한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어젯밤의 일이다. 늦은 샤워를 하고 나온 아들은 말리지 않은 머리를 하고는 잘 준비를 했다. 머리 말리고 자야지 했지만 아들은 괜찮단다.


괜찮긴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데 이리 와봐.


나는 화장대 앞으로 아들을 끌고 가서 머리를 말려주었다. 오랜만에 아들의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있자니 아들이 아기처럼 귀여웠다. 아주 잠깐 동안 그랬다.


엄마!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요.

아니야 아직 물기가 많아.

아이 엄마 그만하죠?


아들의 말투가 살짝 거슬렸지만 머리를 완전히 말려야 한다고 나도 드라이기를 놓지 않았다.


엄마~ 그만하시죠? 충분히 말린 것 같은데.


매우 거슬리는 아들의 말투에 욱하고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욱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대신 드라이기를 껐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침에  머리가 사방 뻗칠 텐데 괜찮겠냐 너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먹고, 뻗칠 머리도 멋진 머리 되는 거야 그리고 너 그 말투가 살짝 이상하다. 사춘기 시동 걸 목적이라면 아예 생각 접어라 니 반항받아줄 마음 없다. 등등의 말을 아직 물기가 남은 머리로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향해 속으로 발사했다. 아주 강하고 엄한 목소리로.


그렇게 완성된 것이 오늘 아침, 사방 자유롭게 뻗친 머리였다. 아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쌤통이고 통쾌하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그 봐라 싶었지만 아들을 약 올리는 말도 속으로 삼켰다. 속상할 때 건드리면 나도 기분 별로니까. 그리고 나는 다시 아들의 손을 잡고 화장대로 향했다. 드라이기와 고데기를 이용해서 아들의 성난 머리카락을 진정시키면서 아들을 봤다. 아들은 어제의 시큰둥한 반응은 없고 매우 얌전하고 차분하게 머리를 내주고 있었다.


자 이제 됐어. 괜찮지?

네. 머리카락이 따뜻해요~^^


진정된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아들이 말했다. 아들도 어제의 일이 생각난 것인지 말투가 공손하고 애교까지 섞여 있었다. 아들아 앞으로 엄마가 시키면 잘해라. 엄마가 하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단다. 엄마가 어제 분명 머리 다 말리고 자라고 했잖아. 엄마 말 안 듣다가 바쁜 아침에 이게 뭐냐? 하고 싶은 말이 한 보따리지만 아침 잔소리가 될까 봐 참았다. 대신 온순하게 변한 아들의 말투와 태도를 보면서 스스로 깨달은 바가 클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분명 나의 백 마디 잔소리보다 그 깨달음이 큰 역할을 할 거라고 믿기로 했다.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의 말투에서 엄마가 자기를 귀찮게 한다는, 엄마가 필요 이상으로 간섭해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벌써 이렇게 컸나 섭섭할 때도 있다. 여전히 아이 같은 아들이지만 자기만의 생각이 있고, 자기만의 고집이 생긴 것이다. 감히 아들의 세계를 건드리거나 간섭하고 싶지 않지만 섭섭한 마음까지는 어쩔 수가 없다. 고데기로 얌전해진 아들의 뻗친 머리를 보면서 까칠하게 뻗쳐가는 아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진정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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