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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27. 2022

굿바이, 시카고 타자기!

오늘 아들이 졸업사진 촬영을 했다. 2주 전에 야외 촬영을 하고 오늘은 실내 개인 사진과 콘셉트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콘셉트 사진은 자신의 꿈을 표현할 수 있는 소품이나 의상을 입고 촬영한다. 요즘 아들이 밀고 있는 꿈은 작가다. 작가라...... 어떤 소품이, 어떤 의상이 좋을까 아들과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고전적인 느낌으로 깃털 펜을 들고 찍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가 생각났다. 나는 아들에게 드라마 속 유아인 배우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타자기와 안경을 준비해서 찍자고 했다.


인터넷에서 타자기를 찾아봤다. 비쌌다. 그리고 무거워서 아들이 학교에 가지고 가기도, 들고 사진을 찍기도 힘들 것 같았다. 검색 끝에 예쁜 타자기 모양의 오르골을 샀다. 아들은 이 오르골을 타자기인 척하는 오르골이라고 불렀다. 타자기가 도착했을 때 나는 아들에게 타자기에 살짝 손을 올리고 안경을 쓰고 포즈를 취하라고 했다. 아침에도 똑같이 이야기해 주었다. 아들이 직접 포즈 연습도 했다.  안경을 쓰고 찍으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얼굴을 가리는 소품은 안된다고 했단다. 평소에도 안경을 쓰는 학생이 있을 테니 안경은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선생님이 안된다고 하면 벗으면 되니까 일단 안경 쓰고 찍으라고 거듭 일러주었다.


아들은 타자기 인척 하는 오르골과 안경을 들고 등교했다. 아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이따금씩 아들이 촬영을 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어느새 졸업이라니!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마음이 여러 마음이었다. 일하면서도 아들이 생각났다. 어느새 졸업이라니...... 훌쩍 자란 아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자꾸 이런 말로 새어 나왔다.


아들이 하교할 시간이 지나서 사진 잘 찍었냐고 문자를 보냈다. 네!라는 답변과 함께 근데 타자기를 거꾸로 들고 찍었어요.라는 답이 왔다. 그 순간부터 이상하게 헛웃음이 났다. 내가 많이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가 역시다.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이상하게 거꾸로 들고 찍은 타자기 인척 하는 오르골 사진이 궁금해졌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 사진을 보면 괜히 웃음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제대로 찍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안경이라도 쓰고 찍었으면.... 안경은 썼겠지? 반쪽 유아인이라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집에 왔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들에게 졸업사진 촬영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들은 오르골의 자판이 카메라가 아닌 자기를 향하게 포즈를 취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진작가님은 별말씀이 없었다고 한다. 아마 작가가 콘셉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안경은 썼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선생님이 얼굴 가리면 안 된다고 할까 봐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고 했다. 일단 안경 쓰고 찍으라고, 선생님이 안된다고 하면 그때 벗으라고 했던 내 말은 깡그리 무시된 것이다. 역시가 역시다.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쉽기도 한 내 마음, 시카고 타자기에서의 유아인처럼 멋진 작가의 모습으로 촬영하기 바랐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천진했다. 경찰 조끼를 준비했던 어떤 여학생은 쉬는 시간에 조끼를 입고 포즈 연습을 했단다. 그런데 막상 촬영할 때는 조끼도 안 입고 입던 옷 그대로 찍었다고. 그 모습을 보고 아들은 뭐지?라고 생각했단다. 아들아 나야말로 너에게 묻고 싶다. 뭐지? 네가 지금 그런 말이 나오냐고 묻고 싶구나 아들아!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서는 이상하게 재미있는 헛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그러다가 움찔움찔 너나 잘하세요 하는 분노(?)가 욱 하고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웃음기 가득 담고 들려주는 졸업사진 촬영기를 웃으면서 들어주고 있었다.


나는 마음에서 유아인을 완전히 보냈다. 이제 작가를 표현하기로 했던 콘셉트는 잊었다. 나는 이 사진이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 재미있게 한바탕 웃음이 날것이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면 찍기 전까지, 아니 사진이 완성되기까지 신경 쓴 것과 무관하게 그 사진은 정말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다. 결혼사진이 그랬다. 무거워서 들기도 힘든 앨범은 꺼내보지 않는다. 결혼식 후로 쭉! 아들의 졸업사진도 찍기까지 아들과 심각하게 고민했던 그 시간만큼 그 사진이 가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라는 아들의 꿈이 표현되지 않은 사진이라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아들에게 작가라는 꿈에 갇히지 말고 마음껏 꿈꾸고 마음껏 앞으로 나가라고 오늘의 그 사진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은 타자기 인척 하는 오르골의 태엽을 감는다. 엘리제를 위하려를 반복해서 듣는다. 순간 욱 하고 올라오지만 차갑게 마음을 다스린다. 나의 사진이 아니다 아들의 사진이다.라고 스스로를 가르친다. 그리고 마음으로 외쳐본다. 굿바이, 시카고 타자기! 반갑다 변화무쌍한 꿈을 싣고 올 아들의 미래!





                                         타자기 인척 하는 오르골과 그의 뻘쭘한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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