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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an 31. 2024

최소한의 행복

 카톡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카톡을 열었다. 잘 지내냐는 평범한 안부 메시지였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안녕하지 못할 거라는 기대를 담은 메시지이다. 아니 생각보다 너무 안녕한 것 같아서 보낸 일종의 경고를 담은 메시지일수도 있었다. 뭐라고 답을 할지 몰라서 그냥 휴대전화를 덮었다. 혜영은 자신이 은주의 기대에 못 미치게 별일 없이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선생이 걱정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만큼 사실 혜영은 괜찮았다. 기영과 자신이 아무 사이가 아니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은주가 생각보다 자신과 기영의 사이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다시 카톡이 왔다. 이번에도 은주였다. 집으로 오겠다는 내용이었다.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집으로 갈게요 하는 말투였다. 서둘러 오지 말라는 답을 남겼다. 잠깐이면 된다는 은주의 말에 혜영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댔다. 무슨 이유로 자기를 찾아오겠다는 건지 혜영은 알 수가 없었다. 게시판에 올린 글에 대해 할 말이 있어서 오려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혜영과 기영에 대해 글을 올린 것은 혜영과는 이런 식으로 대화하겠다는 의미라고 혜영은 생각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집으로 오겠다는 것은 뭔가 협박할 것이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혜영은 이상 자신과 기영을 연결 지을 일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냉장고에 장조림을 다시 넣어두고 혜영은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쉽게 잠이 들 수 있었던 때가 자신에게도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번호를 뒤졌지만 전화할 사람이 없었다. 요양원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간병인이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야. 혜영이."

 엄마는 말이 없었다. 사실 간병인이 전화기를 엄마 귀에 대고 있을 것이다. 말은 안 하지만 엄마의 가느다란 숨소리는 전화기 너머로 작게 들렸다.

 "엄마! 엄마!"

 혜영은 대답 없는 엄마를 불렀다. 부르고 또 불렀다. 아직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덜 외로웠다.

  "엄마 코로나 때문에 엄마한테 못 가서 미안해. 다음에는 꼭 갈게."

 간병인은 엄마가 말은 안 하지만 혜영을 기다리는 눈치라고 했다. 다행히 엄마의 건강은 더 나빠지지 않았다고 간병인이 말해주었다. 세상 어딘가에 가족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혜영에게 엄마는 충분히 힘이 되었다. 전화를 끊고 혜영은 다시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내일은 병원 진료가 있었다. 좋은 컨디션으로 가야 불필요한 검사를 더 하지 않을 수 있다.


 몇 시간 못 자고 아침이 왔다. 아침 일찍 진료가 있어서 혜영은 서둘러 집을 나섰다.

 "황혜영 선생님!"

 "누구세요?"

 현관을 나서는 혜영을 막고 남자가 말했다. 혜영은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00 일보 김민수 기자입니다. 황혜영 선생님 7년 전 박기영 선생님의 자살에 선생님이 관계가 있습니까?"

 "네? 무슨? 아니에요."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는 혜영을 기자가 다시 막아섰다. 남자뒤로 몇 명이 더 혜영을 향해 다가왔다. 혜영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박기영 씨와 부적절한 관계였습니까? 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대해 해명할 말 없습니까?"

 "이러지 마세요. 남의 집에서 뭐 하시는 거예요?"

 "집안에 들어간 것이 아니니까 선생님 집은 아니죠? 제자의 부모님과 따로 만난 것이 사실인가요?"

 "아니에요. 비키세요."

 혜영은 기자들을 피해서 달렸다. 계속 질문을 하면서 따라오는 기자들을 피해 뛰던 혜영이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손을 짚어서 손바닥이 아팠지만 혜영은 일어나서 달렸다.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간 혜영은 문이 열린 버스에 그냥 올라탔다. 버스 안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복잡했다. 다행히 기자들은 버스에 타지 않고 버스가 출발했다. 혜영은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섰다.


 갑자기 왜 기자들이 집 앞까지 찾아온 것일까 혜영은 생각했다. 어젯밤에 김 선생이 왔다갈 때까지 집 앞은 조용했다. 밤새 자기가 사건을 중심에 서게 된 이유를 알아야 했다. 혹시 하는 생각에 휴대전화로 뉴스를 검색했다. 학교이름과 자신의 이름, 선생과 제자라는 검색어로 찾아보자 혜영에 대한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학교 게시판에 올란 글에 자신과 기영이 카페에서 만나는 사진도 있었다. 혜영은 버스 안을 둘러봤다. 앉아 있는 사람들도 서 있는 사람들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아무도 혜영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혜영은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마치 세상에 자신의 알몸이 공개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정말로 기영과 자신이 불륜관계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갑자기 혜영은 구역질이 날 것처럼 속이 좋지 않았다. 정류장에서 버스가 서자 혜영은 버스에서 내렸다. 토할 것 같은 증세는 나아졌다. 혜영은 병원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검색했다. 혜영이 내린 정류장에서는 병원으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예약시간에 병원에 도착하기 힘들었다.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예약시간을 늦출 수 있는지 물었다. 예약이 꽉 차 있어서 변경이 어렵다고 예약날짜를 바꿔준다고 하는 말에 혜영은 전화를 끊었다. 자기에게 자꾸 겹치는 불행에 조금도 배려해 주지 않는 세상이 싫었다. 암에 걸린 환자가 예약시간에 가지 못한다고 기다려주지 않는다니 내가 얼마나 힘든데 왜 조금도 나를 참아주지 않는지 화가 났다. 자신에 대해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기자가 찾아오게 한 은주에게 화가 났다. 아침부터 자신을 기다려서 병원시간을 못 맞추게 한 기자들에게도 화가 났다. 갑자기 넘어지면서 다친 손이 쓰라렸다. 기자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기사를 쓸지 생각하니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12년 전 언니 소영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알 것 같았다. 소영이 기영을 만나는 자신을 얼마나 혐오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언니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언니도 나처럼 얼굴이 없어지기를 원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기를 바랐을 거라고. 그것이 세상이 자기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행복이라고 혜영은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소영은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졸업 후에도 혜영이 남자를 만나지 않은 것과 같았다. 대학에 가지 않고 백화점 화장품매장에서 판매일을 하는 동안 소영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이 없지는 않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것도 있지만 자매는 둘 다 남자에 관심이 없었다. 마치 털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것과 같았다. 그런 소영이 기영을 만난 것은 27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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