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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09. 2024

책을 나이로 읽나요?

아이가 1학년 때 일이다. 나는 아이의 친구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책놀이를 했다. 코로나 직전까지. 아이가 7살때 내가 도서관에서 독서회를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독서모임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7살 겨울부터 친한 친구와 함께 독서회를 만들고, 나는 책놀이 지도사 자격증과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오로지 아이에게 책놀이를 해주기 위해서였다. 운전면허증을 제외하고 처음 따 보는 자격증이었다. 수능 이후 처음으로 OMR 답안지를 작성하는 긴장된 경험도 했다.


이 시간은 책을 읽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놀이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수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재미있으면서도 좋은 그림책을 선정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책을 선정한 후에 내가 먼저 읽고 문방구에 갔다. 책에 맞는 놀이를 정하기 위해 문방구에서 놀이를 생각하고 재료를 구했다. 물론 다른 책이나 자료를 보고 참고하기도 했지만 매주 하는 놀이에서 나의 창의력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주 재미있어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놀이를 해 주는 시간이지만 나에게도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그림책이 주는 즐거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림책만 읽어도 마치 철학을 하는 기분이 들때도 많았다. 이 모임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는 지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책놀이에 필요한 재료를 내가 다 마련했는데 두 명 이상이 되면 재료비가 부담되기 때문이었다. 재료비를 낸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이 놀이를 즐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적은 돈이라고 해도 돈을 받으면 돈값을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모임에 들어오지 못한 지인이 어느 날 부탁을 했다. 우리 아이보다 한살이 많은 지인의 9살 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어차피 도서관에 자주 가니까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과 읽은 책 중에 특히 좋았던 그림책 몇 권을 빌려다 주었다. 일주일 후에 그분이 말했다.


"우리 아이에게는 너무 수준이 낮은 것 같아. 우리 아들 두꺼운 학습만화도 잘 읽고 2학년인데 그림책 읽을 나이가 아니거든."

"아~ 네 그럼 좀 더 두께가 있는 책으로 골라볼게요."


그리고 나는 아들이 좋아했던 책 몇 권을 선정했다. 그림이 있지만 글밥이 많고 일이백 페이지 정도의 두께였다. 그분은 책의 두께에 만족해 하는 것 같았다. 일주일 후, 그분은 아이가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작은 했지만 몇 페이지 읽고는 안 읽는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 두꺼운 학습만화를 보던 습관만 보고 두꺼운 책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이가 있으니 유치한 그림책은 읽을 필요 없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은 나이로 읽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9살은 그림책을 보기에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빌려준 그림책 중에 '앵무새 열 마리'라는 책이 있었다. 나는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분명한 메시지를 담아서 쓴 책은 본 적이 없다.


매일 하던 일들을 반복적으로 하는 뒤퐁 교수에게는 정말 사랑하는 앵무새 열 마리가 있다.


뒤퐁 교수는 매일 아침 온실로 가서 앵무새들에게 '안녕 , 나의 멋진 깃털 친구들!'이라고 인사를 한다.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앵무새들은 매일 아침 똑같은 인사만 하는 뒤퐁 교수가 지겨워서 뒤퐁 교수를 놀려주기로 하고 온실을 빠져나간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앵무새가 사라진 것을 보게 된 뒤퐁 교수는 앵무새를 찾아 집을 샅샅이 뒤지지만 찾지 못한다. 그리고 넋이 나가서 잠도 자지 못한다. 아침이 오고 뒤퐁 교수는 늘 하던 대로 양치를 하고 옷을 입고 안경을 쓰고 온실로 갔다. 온실에는 앵무새들이 한 마리도 빠짐없이 돌아와 있었다. 반가운 마음을 가득 담아 뒤퐁 교수는 앵무새들에게 외친다.'안녕. 나의 멋진 깃털 친구들!'


 앵무새들이 다시 온실을 한 마리씩 빠져나가는 그림으로 책은 끝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뒤퐁 교수가 앵무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앵무새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정말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뿐인데 표현하는 방법이 앵무새들에게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의 관계도 아마 이런 경우가 많을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잘못된 표현방법은 오히려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 앵무새들이 돌아오고 나서도 뒤퐁 교수는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 즉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친구관계나 부모와 자식, 심지어는 직장에서도 이렇지 않을까? 내가 좋은 방법으로만 상대를 대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기 힘들 것이다.  


이 책은 그림이 정말 섬세하고 예뻐서 그림만 봐도 좋은 책이다. 그림마다 앵무새 열 마리의 표정이나 몸짓을 다르게 그렸는데 앵무새들의 표정을 보는 재미가 있다. 앵무새를 찾아다니는 뒤퐁 교수를 교묘하게 속이면서 숨어있는 앵무새들의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 책에서 그림을 빼고 글만 읽는다면 이 책의 아주 일부만 읽은 것과 같을 것이다.


주변에서 보면 아이의 나이에 맞춰서 책을 읽게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하지만 책은 나이와 상관없이 읽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만 봐도 그렇다. 나는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좋아하는 책만 편식하고, 책에 대한 해석도 내 마음대로다. 어려운 책은 읽기 힘들고, 읽어도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또 좋아하는 책만 편식하게 된다.


아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매주 학교에 가서 아이의 반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역시 재미있는 그림책을 몇 권 가져갔다. 아이들은 아주 재미있어했고, 집중해서 들어주었다. 나는 아이들 사이를 다니면서 그림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림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이고, 첫 표지부터 마지막 표지까지 꼼꼼하게 보라고 말했다. 그때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부끄럽게도) 엄마가 그림은 보지 말고 글자만 보라고 했는데요?"


아이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고민했다. 엄마가 가르친 대로 하라고 해야 할지 그 방법보다는 그림을 자세히 보는 것이 맞다고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물론 글자도 중요하지. 그런데 그림책이니까 그림도 잘 보는 것이 좋다는 거지."


이렇게 나름 정답을 말해주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그림책을 그만 읽을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의 내 나이가 그림책을 그만 읽을 나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림책을 그만 읽어도 되는 나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읽어줄 책을 고르면서, 그리고 아이와 책을 읽으면서 그림책의 가치를 실감했다. 그림책은 재미있고 쉽게 인생의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그림책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미술관에서 느끼지 못하는 감동과 영감을 받은 적이 많았다. 이렇게 소중한 경험을 아이들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지금도 도서관에 가면 유아책 코너를 뒤지고 다닌다. 그리고 매번 숨은 보석을 찾는다. 마치 산삼을 캐는 심마니처럼.

아이와 읽으면서 웃고 즐길 그림책들은 도서관에 항상 쌓여있다. 열심히만 찾으면 대박나는 것은 시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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