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는 분을 만나서 커피를 마실 일이 있었어요. 많이 친한 분은 아니어서 개인적인 일보다는 자연스럽게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저의 아들이 책을 많이 읽고 제가 독서 관련 일을 하다 보니 그분이 제게 책에 대해 물어보셨어요. 11살 아들이 읽은 책만 계속 읽는 것을 보고 짜증 나서 다른 책도 많은데 왜 그 책만 읽느냐고 했대요.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읽게 할 수 있느냐고요. 저는 읽은 책 다시 읽는 것은 아주 좋은 거라고 말했어요. 열 권의 책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열 번 읽는 게 낫다고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 책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고요. 도대체 책 같지도 않은 책을 읽어서 몇 번 혼을 냈다고 합니다. 책을 읽는데 왜 혼을 냈을까,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그럴까 궁금해서 물었어요. 그분이 말해준 책의 제목을 듣고 솔직히 놀랐어요. 아이가 말도 안 되게 유치한 책을 재미있다고 여러 번 읽어서 짜증 난다는 그 책은 바로 김리리 작가님의 '만복이네 떡집'이었어요. 사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스테디셀러로 한 번도 안 읽은 아이는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아이는 없다는 바로 그 책이지요. 그분은 아이가 그 책만 몇 번을 읽더니 '소원 떡집'과 '장군이네 떡집'까지 사달라고 했다면서 속상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좋은 책 읽으면 안 되냐고 하면서 책을 안 사줬다고 하더군요. 정말 제가 더 속상한 일이었어요.
'만복이네 떡집'은 나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만복이가 신비한 떡집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변화를 그린 작품이에요. 마음과 달리 못된 말과 행동이 튀어나오는 만복이는 어느 날 집에 가던 길에 신비한 떡집을 발견하해요. 바람떡을 먹으려면 착한 일 두 개를 해야 한다는 떡집, 만복이는 떡을 먹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착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말과 행동이 달라지게 됩니다. 책은 읽기도 쉽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데도 좋아요. 주변에서 유난히 버릇이 없거나 행동이 거친 아이들을 볼 때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 아이들의 속마음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라 어른들이 읽어도 참 좋은 작품입니다.
제목 때문이었을까요? 그분은 아마 그 책을 읽어보지 않은 것 같았어요. 제가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해 주자 놀라면서 당장 아이가 원했던 시리즈를 사줘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런데 아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혹은 어떤 책을 지금 읽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을 읽고 있어도 부모가 알아보지 못하면 아이의 독서의지를 꺾을 수도 있어요. 반대로 아이가 정말 읽어서 정서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책을 읽고 있어도 부모가 모른다면 독서가 해가 될 수도 있어요. 만화책이나 그림책을 읽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아이들은 공포나 폭력성이 짙은 책에 끌리기도 하는데 그런 책을 만화가 아니라 줄글이니까 괜찮다고 허용한다면 어떨까요? 부모들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학생들처럼 수학이나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읽고 있는 책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죠. 시간을 내서 아이가 흥미 있어하는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아요. 그러면 아이와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이의 마음도 알 수 있고 공감대도 생기게 될 거예요.
올해 열다섯 살이 된 아들이 요즘 빠져서 읽고 있는 책은 싱숑 작가님의 '전지적 독자시점'이라는 웹소설이에요. 인터넷으로 완독을 한 아들이 이 책을 앞으로 최소 서너 번은 더 읽을 것 같다면 구입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은 다 읽어서 내용을 다 아는 책을 사는 것을 좋아해요. 서점에서 이미 완독까지 한 책을 굳이 돈 주고 사는 아이지요. 그래서 이미 읽은 책을 사달라는 말이 놀랍지는 않았아요. 평소 저는 아이에게 책을 많이 사주는 편이 아니에요. 서점에 갔을 때나 특별한 날에만 책을 사주는 책에는 야박한 엄마지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을 좋아해요. 가족들이 책을 많이 읽다 보니 그래도 집에는 책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아들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에 책선물을 받고 싶어 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기념일이 아님에도 책을 사줬어요. 아들은 평소에도 읽은 책을 반복해서 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을 산다고 해도 돈 아까울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니 사실은 조금 돈이 아깝긴 했어요. 이십만 원이 넘는 책을 사줄려니 아깝긴 하더라고요^^ 하지만 아들이 책을 받은 그날부터 5일 만에 스무 권을 다 읽는 것을 보고 돈 쓴 보람을 느꼈어요. 지금도 아들은 세 번째 그 책들을 읽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다른 책은 전혀 안 읽는 것은 아니고 가끔 다른 책을 읽기도 하니 책 사주길 잘했다 싶어요.
저는 웹소설은 완독 한 책이 없어서 그 세계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들의 원작이 웹소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도지요. 아들은 '전지적 독자시점'도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하면서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어요. 저에게도 이 책을 완독하고 가족독서회를 하자고 하는데 사실 살짝 떨립니다. '토지' 이후로는 스무 권이나 되는 책을 읽은 적이 없어서 손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계속 안 읽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지요.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제가 언제 웹소설 스무 권을 다 읽을 결심을 할 수 있겠어요. 아이가 좋아하고 추천하는 책을 부모가 같이 읽는 노력은 아이들의 독서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예요. 아이들은 누구나 부모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어린아이들만 그렇다고 주변분들이 말하더군요. 중학생들은 그렇지 않다고요. 하지만 아이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어릴 때부터 대화하는 시간이 많았다면 중학생 아들도 수다쟁이로 만들 수 있어요. 아이에게는 부모가 가장 좋은 독서모임 멤버입니다. 산책길에, 설거지 하는 엄마 옆에서, 같이 빨래를 개면서 가족독서모임을 매일 할 수 있어요. 아이와 책만 함께 두지 말고 부모님도 함께 있어준다면 책 싫어하는 아이라는 말은 하지 않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