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때의 일입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봉사할 수 있다는 말에 신청을 했습니다. 그때는 아이가 제가 학교에 오는 것을 좋아하던 때입니다. 중1이 아니고 초1이니까요^^ 학교 도서관에서 하는 봉사에 신청하는 부모가 몇 명이나 되는지 혹시 알고 계신가요?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봉사를 할 때는 학년당 10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정말 많아야 6~7명 정도였습니다. 한 학년이 200명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많지 않지요. 저는 코로나 전까지 도서관 봉사를 했는데 사서 선생님께서 점심을 드시는 시간을 포함 3시간 동안 도서대출과 반납, 도서 정리를 했습니다. 봉사는 2인 1조로 많이 힘들지는 않지만 새책이 들어오거나 책장 정리를 하는 날에는 많이 힘들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도서관 봉사는 즐거운 일이 아주 많았어요. 일단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편하게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좋아요. 사실 학부모가 되니까 학교에 함부로 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자주 갈 수 있었어요. 도서관 봉사와 책 읽어주는 부모님 봉사 덕분이었지요. 또 다른 즐거움은 아이가 도서관에 편하게 온다는 거예요. 초1 아이들은 엄마가 학교에 오면 좋아하기 때문에 엄마를 보기 위해서라도 도서관에 찾아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엄마가 없는 날에도 도서관을 편하게 이용하게 됐어요. 수업이 끝나면 몇 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오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아이의 하교를 위해 학교 앞에서 기다리던 저는 기다리다 집으로 가곤 했어요.
그렇게 마냥 모든 것이 낯설고 설렜던 초등학교 1학년 엄마였던 시절의 일이에요. 하루는 도서관 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무슨 일인가 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그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거예요.
"또미 엄마, 또미가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어요."
"네?"
"또미 만화책 봐도 되는지 걱정이 돼서 전화했어요."
"네. 당연히 만화책 봐도 괜찮아요."
"아~ 난 또미는 만화책 안 보는 앤 줄 알고. 엄마가 모르고 있을까 봐 전화했어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 전화를 받고 저는 한참을 생각했어요. 아이가 만화책을 본다고 전화를 하다니 내가 평소 아이에게 만화책을 못 보게 하는 엄마로 보였나 싶었어요. 아이에게 내가 그렇게 엄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한편으로 만화책을 보는 것에 예민한 사람이 나일까 아니면 전화를 한 그 사람일까 생각했어요. 제 생각에는 그분이 평소 아이가 만화책 보는 것에 민감했던 게 아닐까요?
아이들이 만화책을 보는 것이 왜 나쁠까요? 만화책은 재미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만화책은 교육적이지 않기 때문일까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아이가 만화책을 너무 많이 보면 신경이 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에게 만화책을 읽지 말라고 하지는 않아요. 대신 만화책을 읽으면서도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옵니다. 아이가 만화책과 다른 책을 함께 본다면 저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평소 고전이나 인문학 책 같은 어려운 책들을 많이 읽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하루 24시간, 365일 그런 종류의 책만 읽을까요? 가끔 넷플릭스를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기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어른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을까요? 그 어른의 정서에 심각한 이상이 생길까요? 누구나 잠시 즐거운 것을 보면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린아이들에게 만화책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거 아닐까요?
사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모든 사람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만화책이라도 종이로 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아들을 출산할 때 저는 스마트폰을 쓰고 있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 안 쓰는 사람보다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6개월쯤 지나면서 상황은 달라졌어요. 저도 스마트폰을 사게 됐는데 카카오톡을 전혀 몰랐던 제게 아이 출산동기 엄마가 웹을 깔아주고 사용법을 알려줬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부터였지요. 스마트폰과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기계나 화학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에는 텔레비전도 켜지 않았어요. 당연히 저도 아이 앞에서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았고요. 그래서 어딜 가나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에게 읽어주곤 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그 시간을 유튜브나 뽀로로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더군요.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보면서 먹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나은 편이었어요. 유튜브나 인스타가 지금처럼 엄청난 열풍을 일으키던 시절은 아니었으니까요. 제가 그만큼 많이 사용하지 않아서 모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만 지금보다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많이 보던 시절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이 돌도 되기 전에 스마트폰을 보면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저는 많이 낯설고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식사예절을 어떻게 배워야 하나?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는 스마트폰을 안 보고도 괜찮을까? 하루를 스마트폰으로 시작하고 스마트폰으로 끝내는 아이들에게 만화책은 정말 유익하고 교육적인 매체가 아닐까요? 어쨌든 자기의 속도에 맞춰 자기의 손으로 책장을 넘기니까요. 어쨌든 어떤 책을 읽을지 스스로 선택하니까요.
아이가 만화책을 본다고 전화를 준 그분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아이에게 만화책을 금지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화책을 시작으로 도서관을 친숙하게 느낀다면 아이는 언젠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도서관에는 좋은 만화책도 많고, 재미있는 그림책도 많아요. 그 공간에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스마트폰을 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들의 나라에 사는 저는 매일이 감사합니다. 방학을 맞아 중1 아들과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도서관 산책을 하고 있어요. 왕복 1시간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 시간은 어린 시절부터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읽던 그 아이가 제게 선물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책을 읽는 아이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좋은 책 많은데 왜 하필 만화책만 읽는지 걱정하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학습만화는 괜찮겠지 위로하면서도 그마저도 안 읽었으면 좋겠다는 거지요. 그럴 땐 만화책을 금지시킬 것이 아니라 다른 재미있는 책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정말 재미있어서 안 읽고는 못 배길 책들을 보여주면 만화책을 읽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요. 어린아이들은 엄마가 책 읽어주는 시간을 좋아하니까 좋은 책은 부모님이 읽어주면 정서적인 교감도 나눌 수 있고 아이에게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정말 감탄할 때가 많았어요. 세상에 이렇게 좋은 그림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그림책이 많다니 놀랍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주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들을 빌려와서 아이와 함께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만화책도 읽지만 그림책이나 동화책, 심지어 역사책까지 좋아하게 됐어요. 부모님이 너무 노력해야 하는 점이 싫을 수 있지만 그 시간 동안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좋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저는 울고 웃을 수 있었고, 위로와 힐링이 되어준 그림책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 좋은 시간을 위해 아이가 만화책을 읽고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어떤 부분이 재미있는지 물어보고 같이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세상에 부모님과 책 읽는 시간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더라고요. 지금 아이와 함께 있는 모든 부모님들이 그 시간을 즐기시면 좋겠어요.
-표지사진의 책은 싱숑 작가님의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입니다. 아이가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소설책입니다. 만화책은 아니지만 고양이에게까지 추천할만큼 재미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