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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23. 2024

독서를 권장하지 않는 사회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 저는 학원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쳤습니다. 처음에 국어 수업을 하던 제가 논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책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학교 국어수업도 그렇겠지만 학원 국어수업은 성적에 의한 성적을 위한 성적중심의 수업입니다. 성적을 위해 정해진 답을 외우고 수없이 많은 문제를 풀어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지요. 하지만 모국어가 한글인 우리나라에서 한글로 된 국어인데도 국어 성적이 만점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잘하는 아이들도 한두 개는 틀리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아주아주 잘하는 아이 중에 만점인 학생도 있지만 한 학원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 일 정도입니다. 어렵다는 영어나 수학보다 만점률이 낮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도 학원은 어떻게든 많은 문제를 풀이하고 가르쳐서 만점 그 언저리까지 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어느 순간 아이들과 책을 읽고 토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어를 가르치면서도 토론식으로 학생들에게 묻고 답하고 생각하는 수업을 하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부하고 시험 보고, 모의 수업을 해가면서 들어간 것이 대치동 논술학원이었습니다. 막상 논술수업을 하고 책을 일로 읽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학생들과 토론하는 시간은 즐거웠습니다.  


 아이를 임신하면서 저는 경단녀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아이에게 책을 많이도 읽어주었습니다. 책으로 놀아도 주고, 책과 관련된 장소에 찾아가서 놀고 자고 늘 책과 함께 하는 습관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격증도 따고 경단녀 12년 동안 독서와 관련한 많은 활동을 하게 되었지요. 2년 전 저는 아들과 책으로 놀아준 덕분에 독서 관련 수업을 하게 되었어요. 시청에서 면접보고 아동복지센터에서 독서토론수업을 하고, 도서관에서 성인들과 학생들에게 독서수업을 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독서토론 수업을 하면서 나름은 바쁘게 지낸 2년이었어요. 경단녀인 저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도 제가 수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한 가지였습니다. 대한민국은 독서를 권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독서수업은 많지 않아요. 학생들이 책을 싫어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아이가 책을 읽기 바라는 학부모들의 요구에 의해 독서 관련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가 있어요. 그런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서 책을 싫어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책을 더 읽어달라고 하거나 수업 재미있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보람을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올해 저는 학교에서는 더 이상 독서수업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도 막상 돈 앞에 무너질 결심일지 모르지만 지금 마음으로는 그렇습니다. 고작 2년인데 제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말하는 것이 저 자신도 웃음이 나옵니다. 하지만 저 나름 고단했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2년 동안 복지센터와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책이나 수업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청소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해가 안 가지요. 시청에서 복지센터 강사를 채용하고 계약서를 쓰러 가면 이렇게 말합니다. 절대, 수업 관련 없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저녁 배식을 하라고 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세요 하더라도 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문제 생기면 강사님도 시청도 곤란합니다. 웃기고 계시지요. 제가 복지센터에 갔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뒷정리해 주세요. 그래야지요. 제가 수업한 곳 정리 당연히 해야 합니다. 제가 사용한 물건 갖다 두고, 수업 시간에 나온 쓰레기 정리하고 그 정도가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바닥을 쓸고 물걸레로 닦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야지요. 당연히 제가 밟은 곳이 더러워졌을 수 있지요. 걸레도 빨아서 건조대에 걸어두고 갑니다.

 

어느 날은 아이들 급식을 봐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심지어 다른 시설로 체험 가는데 따라가서 케어해 주라고 합니다. 시청에서는 시켜도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게 되나요? 제 일이 아니니까 못하겠다고 하고 다시 그 사람들과 일 년을 일해야 하는데 거절은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은 설거지를 하라고 하더군요. 했습니다. 그게 뭐라고 아줌마가 설거지는 껌이지요. 그런데 속도가 늦다고 합니다. 평소 집에서 설거지하듯 꼼꼼하게 헹구니까 싫어하더군요. 후딱후딱 헹구는 그분의 속도에 저는 그저 감탄했어요. 이 정도면 제가 독서수업 강사인지 보육교사인지, 아니면 가사도우미인지 헷갈리지요. 가사도우미로는 제가 쓸모가 없었던지 저한테 한자수업을 해주라고 하더군요. 저는 한자수업을 할 시간이나 역량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원고지 쓰기나 받아쓰기 수업을 하라고 합니다. 독서수업에 그 모든 수업이 포함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더군요.


그래도 그건 괜찮아요. 아줌마가 못할게 뭐 있나요? 독서수업에 필요한 모든 재료는 말만 하면 사주겠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재료가 필요한데 재료비가 나올까요 물었더니 복지센터도 학교도 안 준다고 합니다. 분명 수업 시작하기 전에는 된다고 했는데 막상 수업을 시작하면 재료비도 안 주고, 심지어 어떤 학교는 복사도 곤란하다고 합니다. 겨우 얻어낸 것이 컬러복사는 안되고 흑백복사만 하라는거였어요. 그럼 강사는 땅 파서 수업하나요? 한 시간에 삼만 원 받는데, 심지어 복지센터는 한시간에 만원 받는데 몇십 명 아이들 수업재료 사고 나면 남는 게 없겠더라고요. 차라리 봉사였다면 내 돈 내고 수업할 수도 있겠지만 봉사가 아니니까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심지어 책놀이수업인데 놀이에 필요한 재료를 안 줍니다. 연필 한 자루 쓸 때도 눈치를 주더군요. 저는 집에서 쓰던 색연필, 연필, 지우개, 색종이, 나무젓가락, 종이컵 등등 돈 안 드는 재료로 수업하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그래도 재료가 없으면 가끔 제 돈도 써가면서 버텼어요. 여름에 '아카시아 파마' 책 읽고 수업할 때는 산으로 아카시아 줄기를 따러 가기도 했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하니 그날은 얼마나 뿌듯하던지.


학교에서 방과 후수업을 할 때였어요. 학부모가 돈을 내는 방과 후 수업이 아니라 학교 자체에서 학생들에게 무료로 하는 방과 후 수업이었어요. 그래서 강사료는 학교예산으로 주는 시스템이었어요. 수업이 끝나면 교실을 빗자루로 쓸고, 책상줄 맞추고 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청소함을 열었는데 빗자루가 없었어요. 그래서 옆교실에 빗자루를 빌리러 갔어요. 옆교실에도 없다고 하면서 쓰레기는 손으로 줍고 있더라고요. 처음에 저는 엄청 고민했어요. 제가 빗자루를 사거나 집에 있는 것을 가져갈까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그렇게 하면 학교에서는 빗자루가 원래 있었다고 생각할 것 같았거든요. 대신 저는 가지고 간 물티슈로 바닥을 최대한 닦았어요. 어느 날 수업 끝나고 집에 왔는데 장문의 카톡이 왔어요. 교실청소를 더 깨끗하게 하라는 내용이었어요. 내가 독서수업을 하러 간 사람인지 청소하러 간 사람인지 헷갈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 교실이 저만 사용하는 교실도 아니고, 다른 선생님도 사용하는 교실인 데다 제가 몇 달 동안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칠판을 닦고, 먼지까지 털고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하면 되지요. 아줌마가 못할게 뭐 있겠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최소한 장비는 주셔야지요. 빗자루가 없는 청소함, 물걸레는 없는 걸레봉 사진을 찍어서 보내고 싶었지만 아무 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대신했어요.


 2년을 책이 아닌 청소문제로 시달리다 보니 이제 학교나 복지센터는 독서수업을 하러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어차피 그들도 꼭 책수업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워낙 독서가 중요하다고 하니 형식적으로 만든 수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복지센터나 학교에서 수업하시는 분들이 자격이 없는 분들도 아닙니다. 저는 그저 평범한 아줌마지만 석사나 박사까지 저와 같은 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한 시간에 삼사만원하는 수업에 박사 학위 받은 분들까지 수업하러 오니 얼마나 고급인력인가요. 그런데도 청소지적이라니. 최소한 강사가 하는 수업에 대한 내용, 수업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다면 이렇게 비참하진 않았을 거예요. 시청에서는 하지 말라는 청소와 설거지까지 열심히 했지만 돌아오는 건 더 나은 청소서비스에 대한 요구였어요. 제가 있던 곳만 특별하게 그런 행태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만의 경험으로 너무 크게 해석한 것도 있고, 어디까지나 이건 제가 겪은 저의 감정이니까 모두가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하지만 적어도 제가 2년간 수업하면서 책을 싫어하던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의 보람을 꺾었던 경험은 모두 청소에 대한 요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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