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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08. 2024

자전거를 탄 아이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광경을 봤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슬아슬 곡예를 하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있었습니다. 한 손에 책을 든 상태로 읽으면서 내 옆을 지나갔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저는 너무나 놀라운 광경에 그 아이에게 묻고 싶었어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그 순간 책을 읽으면서 자전거를 타면 위험하다는 말보다 먼저 무슨 책인지 물어보고 싶게 할 만큼 그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자전거를 타면서 책을 읽는 것은 매우 나쁜 일입니다. 말려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신기한 광경임에도 틀림없습니다.


 지난겨울에는 눈이 유독 많이 내렸습니다. 눈이 금방 녹는 구간도 있고, 그늘져서 며칠 동안 눈이 녹지 않는 구간도 있습니다. 하루는 빙판처럼 눈이 얼어있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미끄러운 눈길을 스마트폰을 보면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냥 걷기에도 미끄러운 길을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다는 것은 정말 위험천만한 일인데도 그 아이는 미끄러질 듯 위험한 행동을 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혹은 운전을 하다 보면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심지어 스마트폰을 보면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까지 심심찮게 마주하지요. 그리고 그런 광경은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놀랍지도 않지요.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까지 읽어야겠는 책이란 도대체 무슨 책이었을까요? 그 책의 표지로 봐서는 백 페이지 정도의 동화 같았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자전거를 타는 것과 책을 보면서 타는 것이 비슷한 맥락이었을까요? 어느 편이 더 위험한지에 대해서 잠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잠깐 지나간 그 아이가 저에게 많은 질문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읽는 조건으로 허용하는 것들을 없애야 한다고. 독서가 중요하고 공부가 중요하다고 해서 아이에게 관대해서는 안된다고. 물론 그 아이의 부모님이 아이의 곡예독서를 허락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 사회가 독서나 공부에 대해 지나치게 배려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의 평소 취침시간은 열 시 반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취침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10시 반에 자려면 그 시간에 불을 꺼야 하는데 그 시간에 책을 들고 들어가는 것이지요. 책을 읽겠다고 잠을 안 잡니다. 그런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하면 책 읽는다는데 안 자면 어떠냐고 합니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자야 할 시간에 안 자고 학교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저는 아들에게 여러 번 이야기합니다. 비슷한 예로 차에서 책을 읽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몇 시간 동안 차가 정차해 있는 거라면 허락하겠지만 운행 중인 차에서 책을 읽는 것은 안된다고 합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면 아이는 읽고 싶어서 안달이 납니다. 차가 신호에 멈추면 책을 펼치고, 달리면 덮는 식으로 책을 읽으려고 시도합니다. 저는 그것도 안된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신호가 바뀌어도 멈추기 어렵고 그러다 보면 계속 읽게 되니까요. 그러면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차에서 스마트폰 보는 것도 아니고 책 읽는다는데 왜 못하게 하느냐고.


 달리는 차에서 책을 읽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습니다. 달리는 차에서 책을 읽으면 시력에 좋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차에서 책을 보다 보면 시력에 좋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눈건강에 안 좋은 환경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들만 하더라도 스마트폰 시간이 늘어나면서 시력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 사용도 줄이고, 어두운 곳에서는 책을 못 보게 했습니다. 그렇게 애를 썼지만 시력이 나빠지는 것을 막기는 어려웠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저는 달리는 차에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책이, 독서가 좋다고 아이에게 마냥 관대해서는 안됩니다. 길게 보면 그런 관대함이 독서습관에도 나쁜 영향을 줍니다. 책을 읽는 것이 마치 면죄부가 되는 것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독서는 아이가 즐거워서 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독서가 부모를 위한, 혹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나 습관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요즘 제 아들을 보고 있으면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가만히 멍 때리는 시간이나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것도 필요한데 아들은 금세 책이나 스마트폰을 듭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창밖을 구경하거나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은 독서나 공부 못지않게 중요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아들에게 그런 시간을 즐기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차로 이동하는 시간입니다. 차에서는 그 공간에서만 가능한 것들로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만들기 위해 부모도 아이도 노력해야 합니다. 독서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차에서까지 책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전거를 타고 가던 그 아이,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 책을 들고 읽던 그 아이가 기억에 남습니다. 책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이야기해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책도 스마트폰처럼 중독될 수 있고, 그럴 수 있을 만큼 재미있고 좋은 책이 많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세상에 책 싫어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아직 책을 읽어보지 못했을 뿐, 아직 손에서 책을 놓는 것이 싫을 만큼 재미있는 책을 만나지 못한 것뿐입니다. 아이들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해주지 않아서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역시 중독 중에 가장 무서운 중독은 책중독입니다. 책에 빠진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책을 위험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교육지침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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