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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Oct 27. 2024

이런 미친 2

그녀와 나는 10년 전 군포에 있는 작은 보습학원에서 만났다. 그녀는 사회를 가르치고 나는 국어를 가르쳤다. 내가 그 학원에서 일하는 2년 동안 나눈 대화보다 오늘 카페에 오는 동안 나눈 대화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낄 정도로 우리는 거의 말을 주고받지 않고 지냈다. 정확하게는 그녀가 그랬다.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그 학원의 누구와도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출근하면서 안녕하세요, 퇴근하면서 안녕히 가세요. 가 그녀와 나눈 대화의 전부였다. 그런 그녀가 학생들에게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그녀는 말이 없었다. 교무실의 책상은 모두 벽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등을 맞대고 있었다. 의자만 돌리면 얼굴이 보이는 자리였다. 그녀는 항상 나를 등지고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교무실의 누구와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원장과도 그 정도의 말만 주고받았다. 내가 그 학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랬다고 했다. 그녀와 가장 오래 일한 과학쌤에게 들었다. 그녀의 지나친 침묵과 함께 내가 그녀를 뜨악하게 하는 일이 또 있었다. 학원에 출근하는 시간은 오후 2시, 밤 10시에 끝이 났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하기 전, 4시쯤에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었다. 그때 저녁을 먹지 않으면 수업하는 내내 떠드는 일이라 허기가 져서 힘들었다. 근처 식당에서 배달을 시켜서 먹는데 그녀는 한 번도 음식을 배달시키지 않았다. 안 먹는다는 답이 올 것을 알면서도 예의상 묻는 우리에게 그녀는 언제나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우리끼리만 먹는 것이 처음에는 미안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매일 비슷한 듯 메뉴는 다양했다. 주로 근처 백반집에서 시켰지만 가끔 중국집이나 돈가스집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날은 돈가스를 시킨 날이었다. 나는 그날따라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아 돈가스를 반이나 남기게 되었다. 다 먹은 그릇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뒤돌아보더니 물었다.

“다 먹은 거예요?”

갑자기 말을 걸어서 나는 정말로 놀랐다. 다른 선생님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마치 텔레비전의 일시정지버튼을 누른 것처럼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네? 아 네.”

“그럼 내가 먹어도 돼요?”

“네?”

“국어쌤 다 먹었으면 내가 먹어도 되냐구요?”

“아. 네. 뭐.”

나는 내가 먹던 음식인데 괜찮겠냐고 묻는다는 것도 잊고 얼버무렸다. 갑자기 그녀가 돈가스가 담긴 쟁반을 들어서 자기 책상으로 가지고 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먹던 음식이라는 꺼림칙함도 없이 돈가스를 먹기 시작했다. 교무실에 있던 우리는 당황해서 정지된 그대로 눈빛만 주고받았다. 너무 갑작스럽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우리의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다 먹은 그릇을 정리한 배달통을 학원 앞에 내놓고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이게 뭐지?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녀가 한 번이라도 우리 얼굴을 쳐다봤다면 우리가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는지 알았을 텐데 그녀는 다시 묵묵히 등을 보인채 앉아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날부터 그녀는 누군가 남긴 음식이 있으면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생각 없이 네 라고 대답했던 사람들은 이내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먹을 것이 뻔한데 안 된다고 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번 자기가 남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묘하게 불쾌했다. 내가 남이 남긴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닌데 비위가 상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매일 고민이었다.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어서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한편으로 그녀가 굶는 것이 싫어서 음식을 더 깔끔하게 남겨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매번 김밥이나 돈가스, 샌드위치 같은 나눠먹기 깨끗한 음식들을 배달시키게 되었다. 그런 우리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식사시간에만 긴 침묵을 깨고 물었다.

“안 먹을 거면 내가 먹어도 돼요?”     

 도대체 그녀가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라서 우리는 가장 오래 다닌 과학쌤한테 물었다. 그녀 없이 수업 끝나고 맥주를 마시면서였다. 과학쌤도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녀가 지금보다 조금 더 말이 많았던 때에 해준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자기가 큰 사고를 쳐서 월급을 받으면 모두 엄마한테 줘야 한다고 했단다. 무슨 사고를 어떻게 쳤는지 다시 물었지만 대답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과학쌤도 궁금해서 술을 사주면서 물어보기도 했지만 대답을 하지 않고 소주만 마셨다고 했다. 그녀는 그 나이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웃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탓인지도 모르지만 어둡고 그늘져 있었다. 몇 벌의 옷을 번갈아 입어서 스타일도 항상 비슷했다. 그녀는 수수하다 못해 공기 같았다.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아서 누군가 실수로 그녀가 없는지 알고 문을 잠그고 퇴근해도 놀랍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월급을 모두 엄마에게 차압당할 만큼 쳤다는 사고가 무엇인지 우리는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우리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남자문제? 도박이나 주식이었을까? 무엇이 그녀를 침묵에 가뒀을까 그 의문을 풀지 못한 채 나는 2년 만에 그 학원을 나왔다. 2년 동안 그녀에게 음식을 남겨줘야 할지 다 먹어서 비위상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할지 몰라 고민만 했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짜장면을 먹고 남긴 것도 먹었다. 단무지에 짜장 양념을 듬뿍 찍어서 마치 그런 음식을 시킨 것처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오늘 지하철 역에서 그녀를 만났다. 마치 거지와 신분을 바꾼 공주가 다시 공주로 돌아간 것 같은 모습으로.      

“쌤 어떻게 지냈어요? 하나도 안 늙은 거 보니까 잘 사는 거 맞죠?”

그녀가 물었다. 하나도 안 늙었다는 칭찬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10년은 젊어진 것 같은 그녀가, 재벌집 막내딸처럼 변한 그녀가 물으니까 내가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쌤은 너무 변했어요. 왜 이렇게 예뻐졌어요?”

나는 간신히 이 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할 수 있었다. 여자들이 만나면 의례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많이 변했고, 정말 예뻤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이렇게 예뻐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예뻤다.

“그냥 뭐. 우리 나이에 사는 거 다 비슷하죠 뭐. 쌤 결혼은?”

그녀가 물었다. 그때까지 그녀에게 궁금하지 않았던 것이 궁금했다. 그녀는 결혼을 했을까?

“나는 안 했어요. 쌤은?”

“나는 했지. 애가 둘이에요. 다른 쌤들과 연락해요? 쌤 과학쌤이랑 친했잖아요?”

과학쌤과 나의 친분은 순전히 그녀의 공이었다. 도대체 그녀가 쳤다는 사고는 무엇인지, 그녀는 왜 밥을 시키지 않고 남긴 음식만 먹는지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근처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밤새 추리했다. 아무리 추리해 본들 아무도 풀지 못할 문제를, 그녀에게 차마 물어보지도 못하고 우리는 밤새 풀고 또 풀었다. 과학쌤과는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더 이상 우리가 함께 할 어려운 문제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쌤은 남편과 함께 스위스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만 어렴풋이 들었다. 내가 전한 소식에 그녀는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한번 더 그 우아한 손짓으로 라테를 마셨다. 나는 연못에 앉은 백조를 보는 시선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미친년

갑자기 미친년이라는 말이 섬광처럼 머리에 떠올랐다. 수업 도중에 가지고 갈 자료가 있어서 교무실에 들렀을 때였다. 텅 빈 교무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의 전화였다. 자료를 들고 교무실을 나가려다가 몸을 돌려 그녀의 책상으로 향했다. 핸드폰 액정에 미친년이라고 쓰여 있었다. 도대체 누구길래 번호를 미친년이라고 저장했을까 궁금했지만 서둘러 교실로 가기 위해 교무실을 나갔다.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온 그녀는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전화를 했다. 그녀가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궁금해서 책을 보는 척 신경을 바짝 쓰면서 그녀의 대화 내용을 들었다. 내용으로 봐서 엄마와 통화하는 것 같았다. 수업 중이라 못 받았다고 했다. 엄마를 미친년이라고 저장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무슨 사고를 쳤는지 한 달 내내 일해도 월급을 손에 쥐어보지도 못하는 그녀가 엄마에게 하는 작은 복수 같은 건가 보다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찜통처럼 더운 날이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등에 난 땀으로 옷이 들러붙어서 기분이 나빴다. 어서 에어컨이 있는 학원 건물로 들어가려고 서둘러 걷고 있었다. 길만 건너면 학원이었다.

“아!”

갑자기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보니 중년의 아주머니가 웬 젊은 여자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있었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는 머리를 아주머니가 하는 대로 내주고 있었다. 그래야 덜 아프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무슨 일인지 머리채를 흔들면서 마구 욕을 퍼붓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관계길래 저렇게 표독스럽게 굴까 싶었다. 남편이랑 바람피운 여자겠지 하는 말이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들렸다. 그렇게 보니 그렇게도 보였다. 나이도 얼추 맞아 들어갔다. 아주머니의 분노도 이해가 갔다. 사람들도 상간녀에 대한 보복이라 생각했는지 말리지 않고 구경했다. 고소하다는 표정의 여자들 사이에, 남의 일에 신경쓰기 싫은 중년의 남자들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 있었다.

“엄마 잘못했어요.”

머리채를 잡힌 여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모녀관계라는 것을 알고 구경꾼들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아주머니를 말렸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도 그제야 우악스러운 손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머리채가 자유로워지자 그녀가 머리를 만지면서 일어섰다. 사회쌤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몸을 돌렸다. 내가 구경꾼 사이에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면 안 될 것 같았다. 자꾸 돌아서서 그녀의 표정을 한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을 참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학원을 향해 걸었다. 그날 나는 그녀가 출근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길 한복판에서 그 꼴을 당하고 도저히 일할 기분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조금 늦긴 했지만 그녀는 평상시와 같은 표정으로 교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너무 놀라서 누구라도 붙잡고 내가 방금 길에서 본 광경과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엄마가 왜 길에서 딸을 그렇게 대했는지, 어떤 상황이면 그런 모녀관계가 될 수 있는지 이 어려운 문제를 함께 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다른 한편으로 그 모진 일을 당했으니 얼마나 놀라고 속이 쓰릴까 싶어서 오늘은 무슨 음식을 시켜 먹어야 하나 고민했다. 그녀의 쓰린 속을 달랠 음식을 오늘은 아주 넉넉하게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휴대폰 속 미친년, 그 실체를 마주하고 나는 그녀에게 묘한 애정을 느꼈다. 그녀의 실체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간 사람은 이 학원에서 나밖에 없다는 우월감을 품은 애정이었다.      

그녀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내 의도를 들키지 않는 선에서 질문을 하고 또 했지만 끝내 속 시원한 말을 듣지 못했다. 10년 전보다 말도 많고 살가운 그녀였지만 여전히 그녀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막을 깨지 않았다. 나는 금세 지쳐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이 문제를 풀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더 지치기 전에 그녀와 헤어지고 싶었다. 이제는 그녀의 몸을 감고 있는 비싼 옷과 분위기에도 지치기 시작했다.

“선희쌤 나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애요. 정말 반가웠어요. 이제 연락처 알았으니까 종종 봐요 우리.”

급하게 인사를 마무리하고 나는 일어섰다.

“그래요. 우리 자주 봐요. 쌤 보니까 정말 좋다. 내가 친구가 별로 없어서 옛날 이야기할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옛날이야기를 하고 싶기나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웃으면서 가방을 챙겼다. 그때 그녀가 그 가늘고 우아한 손으로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연핑크색 손톱이 반짝 빛났다. 나는 뭔가 싶어서 봤다가 정말 뜨악하게 놀랐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내가 마시다 남긴 아이스커피잔이었다. 그녀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럽고 태연해서 마치 처음부터 그녀의 음료였다고 느낄 정도였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도대체 10년 전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는 왜 항상 다른 사람이 남긴 음식을 먹는지 오늘은 속 시원하게 답을 듣고 싶은 충동이었다. 조금 더 있으면 정말 그 질문들이 말로 튀어나올 것 같아서 나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왔다. 사람들이 바쁘게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이유인지 나는 조금 어지러움을 느끼고 벽을 짚고 걸었다. 그녀만큼이나 깊은 의문을 품기라도 한 듯 깊고 어두운 지하철 입구로 나는 빨려 들어가듯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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