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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04. 2021

전화가 왔다

  내가 세상에서 당근보다 싫어하는 것은 전화다. 전화기를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다. 나도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스마트폰을 끼고 살고 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전화를 걸거나 받는 일이다. 둘 중 어느 것을 더 싫어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에 대한 답보다 어려운 질문이니까. 언제부터 내가 전화(전화를 걸거나 받는 일)를 싫어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그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사실 그 일은 아주 사소하게 시작되었다.


 취업이 어려운 과를 선택한 탓에 나는 대학시절부터 자격증이나 영어공부를 위해 이 학원 저 학원을 배회하고 다녔다. 마치 다시 대입을 준비하는 기분이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수업이 끝나고 학원 동기들과 치킨에 맥주를 들이켤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 만난 혜영언니는 나의 좋은 술친구였다. 대학 3년 동안 틈틈이 마신 술로 이미 나는 술맛에 눈을 뜬 후였다. 사실은 맥주 맛이었다. 소주는 냄새도 못 맡는 탓에 나는 모든 안주에 술은 맥주였다. 삼겹살이나 회를 먹을 때도 시원한 맥주로 목에 길을 터주어야 맛이 났다.


 혜영언니는 나보다 4살이 많았다. 직장을 다니는 언니와 학생이었던 나는 저녁반 영어 수업을 같이 들었다. 돈이 부족한 나는 술값을 보태기가 힘들었지만 매번 술값을 계산하는 언니에게 미안해서 주말 알바를 해서 번 돈을 술값으로 날리곤 했다. 하지만 언니와 얘기하는 시간이 좋아서 별로 아깝지는 않았다.

 처음 술을 마시게 된 것은 3학년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하루 종일 흐리던 날이 어둑해질 무렵에는 커다란 눈송이가 내리기 시작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눈이 내리면 길이 미끄러울 걱정으로 서둘러 집에 가겠지만 나는 그 분위기에 취해 시원한 맥주 한잔이 생각났다. 학원 입구에서 눈을 보면서 술친구가 없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데 언니가 계단을 내려왔다. 말을 해 본 적은 없지만 같은 강의를 듣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예쁘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던 언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꾼은 꾼을 알아보는지 우리는 피식 웃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웃음이었다.

 “어디 가서 한잔 할래요?”

 “좋죠.”

 우리는 커다란 창이 있는 작고 예쁜 카페로 들어갔다. 눈이 오는 날 어울리는 곳이었다. 핸드 드립 커피와 간단한 파니니, 샐러드에 병이 예쁜 수입맥주도 마실 수 있는 카페였다. 창가에 운 좋게 자리를 잡고 앉아 언니는 샐러드와 병맥주를 시켰다.


 그날 우리가 나눈 대화는 별게 없었지만 아무렇게나 찢은 솜을 하늘에서 뿌려대는 것 같은 함박눈을 바라보며 마신 맥주의 맛은 정말 최고였다. 우리는 자주 그렇게 저녁을 같이 했다. 언니는 직장을 다니면서 영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껴서 학원을 다니게 됐다고 했다. 발 빠르게 미리 영어를 준비하는 내가 순간 대견했다. 우리는 언니가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갈 때까지 5개월 정도를 그렇게 보냈다. 영어 강의를 듣고 맥주를 마시고. 언니가 이사를 가기 한 달 전쯤, 그날도 우리는 삼겹살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넌 어쩜 전화 한 번을 안 하니?”

 “네?”

 언니가 새로 시킨 맥주를 따르면서 말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내가 의식하지 못한 나의 습관이 뼈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게 붙어버리게 된 계기가 된 말이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카카오톡을 이용했기 때문에 전화를 잘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는 한 달 후에 이사를 갔고 언니의 말처럼 나는 전화 한 번을 하지 않았다. 가끔 언니가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오면 짧은 답을 보내다가 어느새 그마저도 흐지부지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나는 일 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나는 전화를 싫어하는 만큼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도 서툴렀다. 사무실에 있는 복사기 같았던 일 년이었다.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몇 군데 면접을 봤고 아무 연락이 없거나 불합격 문자를 받았다.


 그날 늦은 오후에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 본 면접에서 합격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합격 전화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광고회사에 면접을 본 것은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그러면 전화와 관련된 업무나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이번에 꼭 합격하고 싶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전화를 이렇게 간절하게 기다린 적은 없었다. 전화를 주고받는 친구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전화는 며칠째 조용했다.

 나는 엄마가 출근을 한 것도 모르고 자다가 늦은 오후에 화장실 때문에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습관적으로 벨소리를 무시했다. 벨은 끊어졌다가 잠시 후 다시 울렸다. 순간 며칠 전 봤던 면접이 생각났다. 이게 혹시 합격 전화라면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했다. 전화가 끊어질까 애가 탔다. 나는 급하게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벨소리는 위태하게 울리고 있었다. 휴대폰을 드는데 온몸에 개미 수천 마리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나는 항상 이런 상태가 되고 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나는 떨리고 긴장되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는 외치듯 말했다.

 “김수정 씨 되십니까?”

 “네 제가 김수정인데요.”

 나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뻔했다. 사무적이고 형식적인 목소리의 남자였다. 이건 누가 봐도 합격통보를 알리는 회사의 형식적인 전화였다.

 “저희가 지금 김수정 씨 어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네? 왜요?”

 우리 엄마가 왜 회사에 가 있다는 거지. 나는 순간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저희가 지금 김수정 씨 어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남자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래도 나는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엄마가 거기 있나요?”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감이 안 잡혀서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으 으 으 수 우 수정아.”

 엄마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엄마의 말투가 이상했다. 아픈 것 같았다.

 “엄마? 엄마 무슨 일이야? 저기 우리 엄마 어디 아프신 거예요? 무슨 일이 있나요?”

 “김수정 씨 전화 끊지 말고 들으세요. 어머님 살리고 싶으면 지금 2000만 원 준비하세요.”

 “네?”

 나는 충격에 머리가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은 것 같았다. 생각을 하려고 해도 어떤 생각도 바위를 비집고 들어가지 못했다.

 “저기요.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 괜찮은 거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내가 할 수 있는 생각들은 모두 눈물로 빠져나오는 것처럼 눈물만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저기 죄송한데요 제가 2000만 원이 없어서 그러는데 구할 때까지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잘못한 것 도 없이 납치범에게 사과를 하고 사정을 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2000만 원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통장에는 2000만 원은커녕 200만 원도 없다.

 “지금 내가 김수정 씨 사정 봐줄 생각 없습니다. 전화 끊거나 주변에 알리면 어머니는 못 만나게 될 겁니다. 명심하세요.”

 “죄송해요. 제가 돈이 없어서요.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제발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나는 울면서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머릿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걱정만 되풀이했다. 엄마의 괴로워하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무슨 고문이라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외동인 나에게는 엄마가 전부였다. 아빠와 이혼 후에 엄마는 나를, 나는 엄마를 의지하면서 살았다. 엄마까지 사라진다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김수정 씨 어서 은행으로 가서 돈을 인출하세요. 신용카드 있죠? 신용카드로 현금 서비스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을 받으세요. 전화 끊으면 어머니 죽습니다.”

 “네? 아 네.”

 나는 아바타처럼 납치범이 시키는 대로 했다. 전화 끊으면 엄마가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경찰에 신고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얼른 겉옷을 대충 걸쳤다. 전화는 여전히 들고 있는 채였다. 눈물이 자꾸 흘렀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일하다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늦어도 엄마한테 전화하지 않아서 엄마 애를 태우던 생각이 났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이렇게 전화를 하고 싶어도 목소리가 듣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엄마 살아만 있어줘. 손이 떨려서 전화기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나는 전화를 확인했다. 다행히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이 사람이 내가 전화를 일부러 떨어뜨렸다고 생각할까 봐 불안했다.

띡  띡   띡

 여전히 전화기를 뒤에 대고 다급하게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에 몸이 굳었다.

 “저 저기요. 죄송한데요. 집에 누가 온 것 같아요. 다시 전화.”

 라고 말을 하는데 전화가 끊겼다. 동시에 현관문이 열리면서 엄마가 들어왔다. 흡사 귀신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너무 놀라 뒤로 물러나다가 나는 그만 현관 턱에 걸려 뒤로 나자빠졌다.

 “수정아 어디가? 왜 그래?”

 “엄마? 엄마 맞아?”

 “그럼 엄마 맞지.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어디 가려고?”

 “엄마!”

 나는 벌떡 일어나 엄마를 안았다. 엄마의 몸에서 익숙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나는 다시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꼭 안았다. 너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엄마 다행이야. 나는 속으로 끝없이 말했다. 엄마가 집에 와서 정말 좋았다. 어제도 그제도 엄마가 함께 했다는 것이 오늘도 함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나는 갑자기 힘이 풀려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손 하나도 까딱하기 힘들었다.

 “아니 너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수정아 일어나. 괜찮아? 아니 얘가 왜 이래?”


 그날 밤 우리는 보이스 피싱에 당하는 멍청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사실에 한바탕 웃었다. 누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수법에 걸려서 돈을 잃는지 어이없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야 넌 엄마 목소리도 몰라?”

라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모를 것이다. 정말 엄마 목소리였다는 것을. 엄마가 얼마나 간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내 이름을 불렀는지 엄마는 모를 것이다.

 “엄마 진짜 엄마 목소리였어. 진짜 같았다니까.”

우리는 2000만 원을 아낀 기념으로 한우를 구워 먹었다. 그리고 평소에 비싸서 사지 않던, 엄마가 이혼 전에 좋아했던 와인도 샀다.      


 아까부터 계속 전화가 울려댔다. 나는 이불속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다. 엄마는 이미 출근을 했을 것이다. 전화는 참을성 있게 울리다가 멈췄다. 이불을 더 당겨서 머리까지 덮었다. 어쩌면 합격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아니겠지 하며 눈을 감았다.  내가 전화를 싫어하는 것은 갈비찜에서 물컹한 당근을 집어 먹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눈 한번 딱 감고 해치울 수 있지만 매번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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