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어둠에 싸여있다. 어느새 가을이 오고 하루가 짧아졌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얇은 옷을 한번 더 여미게 된다. 어두워진 도시의 거리는 낮보다 오히려 더 밝고 화려하다. 온통 아름다운 얼굴과 밝은 불빛들로 가득 찬 세상은 언제나 나에게 낯설게만 느껴진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집을 나와 걷게 되는 이 거리가 왜 이렇게 낯설기만 한지 모르겠다. 키 크고 날씬한 여자들이 저희끼리 뭐라고 얘기를 나누며 내 옆을 지나간다. 거리를 걷는 동안 나는 그런 무리들을 무심히 바라본다. 이상한 세상이다. 인형을 찍어내는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다들 똑같이 예쁜 얼굴들이다. 작고 초라한 나는 그런 여자들의 화려한 그늘에 가려진 채 도시를 벗어날 궁리를 한다.
거리에는 크고 작은 인형을 파는 노점들과 먹거리를 늘어놓은 노점들, 그리고 짙은 화장을 하고 어묵을 먹는 여자들로 복잡하게 엉켜있다. 그들을 지나치는 일이 쉽지가 않다. 바쁘게 걷기 시작한다. 그리 급하지도 않지만 걸음을 재촉해서 걷는다. 낯선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는 일상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서 조금이나마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지치게 나를 재촉해서 지하철 속으로 급히 몸을 숨긴다. 살 것 같다. 그래도 여긴 사람이 살고 있는 곳 같다. 사람도 적을뿐더러 나이 드신 할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머리를 숙이고 동전을 구하는 사람의 구부린 허리도 볼 수 있다. 비로소 나는 나처럼 작은 자의 삶에 나를 포함시키고 안도할 수 있게 된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볼륨을 크게 한다. 이제 더 이상은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어폰 속에 나를 넣으면, 난 더 이상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세계가 마치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편안하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마치 영화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만 클로즈업되었다간 사라진다. 나를 향해 바쁘게 왔다가 내 뒤로 급히 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가 상기되어 있는 듯도 하고, 어딘가 지친 것 같기도 하다.
토요일 저녁의 전철 안은 복잡하고 소란스럽다. 서울에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밤이면 이 긴 차를 타고 이 도시를 빠져나간다. 사람들을 뚫고 구석에 기대어 선다. 노약자석 앞이다. 노약자석이지만 어린 여자들이 앉아 있다. 앳돼 보이는 두 사람은 저희끼리 키득거리며 떠들고 있다. 내가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많아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저들과 내 고등학생 시절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은 지그재그로 자른 단발머리에 블루블랙으로 염색을 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긴 머리를 뒤로 바짝 묶어서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그 옆에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지친 얼굴로 앉아 낡은 가방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는다. 그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 없이 바라본다. 한참을 찾던 할아버지는 동전 두 개를 가방에서 집어낸다. 가방에서 꺼낸 동전 백오십 원을 할아버지는 손에 있던 동전과 합하여 잠시 셈을 하고는 작은 동전지갑에 넣고 비로소 눈을 감는다. 몇 개의 동전을 소중하게 찾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계속 보게 된다. 할아버지에 대한 작은 동정심도 아니다. 이 도시에서 비로소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작은 사람의 모습을 봤다는 감동도 아니다. 단지 그 모습이, 동전을 세던 그 모습이 내 머리에 오래 남아있을 뿐이다. 나처럼 작은 인간이 여기에 살고 있다. 이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작고 초라한 인간의 모습이 아직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다. 나는 눈을 감고 있는 할아버지의 검게 패인 주름에서 내가 가진 것과 같은 심한 피로를 느낀다.
전화벨이 울린다. 동대문에서 옷을 팔고 있는 친구다. 그녀는 마치 나를 안 봐서 병이라도 난 것처럼 말한다. 그녀의 그런 과장된 그리움이 역겨울 때가 있다. 자주 만나지도 않는 데다가 1년이 넘도록 내가 먼저 연락한 적도 없는 친구다. 그립지 않다. 그녀는 ‘꼭 보자 잘 자고 사랑해’를 애교스럽게 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녀는 정말로 내가 그렇게 그리운 것일까.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동안 어느 집에서인지 찌개를 끓이는 듯 맛있는 냄새가 난다. 배가 고팠던 걸까. 갑자기 입에 침이 고인다. 오랫동안 내 집에서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구수한 찌개 냄새를 맛볼 수 없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집에서는, 저녁때가 되면 구수한 밥 냄새가 났었다. 찌개를 끓이고 있는 엄마 옆에서 나는 정말 걱정 없는 아이처럼 종알거렸다. 그 시절에 걱정 없이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따뜻한 저녁을 함께 할 수 있는 기대만은 가질 수 있었다.
그때도 아버지는 무능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아버지의 무능함은 원망 거리가 되지 못했다. 엄마가 그랬듯이 나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니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독하게도 권위적인 아버지는 밥을 먹는 동안에는 말을 해서도, 소리를 내서도 안된다고 했다. 우린 죄지은 사람들처럼 조용히 밥만 먹었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그래도 그 시간들이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린 그래도 같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어느 해인가 6개월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직장이라는 곳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시는 직업이라는 것을 가지지 않았다. 난 학교에서나 친구의 부모님이 아버지는 뭐하시냐고 묻는 게 싫었다. 내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가 왜 질문거리가 되는지, 그것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나 그냥 회사에 나가신다고 거짓말을 했다. ‘집에서 놀고 있어요. 집은 엄마가 꾸려나가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기가 싫었다. 무슨 자존심이나 그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땐 그렇게 거짓말을 했는데 지금은 더 이상 그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는다. 더 이상은 아버지의 무능에 대해 나를 비참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결정적으로 나를 그 거짓말에서 해방시켜 준 것이 있었다.
고2 때 아버지는 계단에서 넘어졌다. 허리를 심하게 다쳤고 아버지는 거동조차 불편하게 되었다. 그것은 엄마와 나에게는 또 하나의 엄청난 불행이었지만. 한편으로 거짓말 속의 나를 해방시켜 준 것이기도 했다. 난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해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아버지가 직장을 가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돼 버린 것이다. 그러나 내 작은 해방의 대가로 나와 엄마는 생활에 대한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지금까지 나는 하루하루의 삶에 지쳐 구수한 된장찌개에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일 따윈 잊고 산지 오래다. 그리고 이젠 나를 기다릴 엄마도 없다.
현관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하루 종일 집안을 채우고 있었을 후덥스러운 공기가 나를 덮쳤다.
“왔어?”
방문을 열고 아는 체를 하는 아버지, 혼자 보낸 낮시간의 지루함이 느껴진다. 몇 년을 집에서만 지낸, 병들고 곪은 시간의 지루함이다. 누군가의 병든 모습을 몇 년씩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쳐간다. 아버지는 3대 독자 외아들이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 아래에 엄청난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우습게도 3대 독자라는 위치에는 아버지의 무능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손으로는 물 한 컵 가져다 마시는 일이 없었다. 조금만 끼니때를 놓치면 갖은 욕설을 퍼붓고, 죽일 듯이 화를 내곤 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을 것 같은 사람이다. 그는 내게 아버지와 딸이라는 무거운 인연의 끈을 쥐어주었지만, 나는 결코 그를 사랑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단순히 무능하고 지금 병들어 누운 아버지로서의 책임에 관한 미움이 아니다.
엄마가 일을 나가고, 집이 비어있는 낮 동안의 시간에는 혼자 집에 있던 아버지였다. 단지 무능하다는 것 외에 아무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의 권위에 눌린 채 아무도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뿐이었어야 했다. 더 이상은 아무 일도 없었어야 했다. 가족에게 더 이상의 실망은 주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아름다울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그일 이후 누구도 믿지 않았고, 세상의 아름다운 말들을 가지지 못했다. 중학생 때였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들어선 나는 집에 아버지 외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 방에서 누군가의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짐승의 끙끙거리는 소리와도 같았다. 나는 살며시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방에서 짐승을 보았다. 화장실로 달려가 내 속에 더러운 소화물들을 쏟아냈다. 내 눈에 들어간, 벗은 몸까지 다 쏟아내고 싶었다.
놀라서 나를 돌아보던 남녀의 모습이 눈앞에서 맴돌았다. 아버지를 끌어안은 그녀는 바로 옆집의 아주머니였다. 분명히 그녀가 분명했다. 엄마와 친하게 지내던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어릴 적에 나를 무릎에 앉히고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그녀는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그녀의 집에서는 아이가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우리 집에 있었다. 이젠 더 이상 아버지는 권위에 찬 무서운 3대 독자가 아니었다. 엄마가 일을 나간 텅 빈 집에서 이웃집 여자를 안은 더러운 사람이었다. 그 후로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도 나를 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철저히 외면했지만 엄마한테는 나날이 더 신경질적이었다. 엄마는 날이 갈수록 지쳐갔다. 엄마는 오래전에 이미 아버지의 외도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로서는 모든 것을 참고 있는 엄마도 견딜 수 없었다. 장손에게 시집와서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생을 참고만 사는 엄마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점점 더 숨이 막힐 것 같은 집안의 공기를 참을 수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이 집에서 나가겠다는 의지로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았다. 다리가 퉁퉁 붓고, 오래 서있기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나는 참을 수가 있었다. 몇 개월만 참으면 내 몸을 휘감은 이 집의 더러운 공기에서 엄마의 불쌍한 얼굴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불편한 몸에 대한 화풀이를 했다. 엄마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3월이었다. 아직 추위가 다 가지 않은 3월의 어느 저녁에 엄마는 끙끙 않던 목숨을 놓아버렸다. 갑작스럽게, 어쩌면 전혀 갑작스럽지 않게 나는 고아가 되었다. 이젠 정말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집을 떠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하지도 않는 아버지를 나는 버리지 못했다. 몸이 아픈 아버지와 썩어버린 마음을 가진 나는 여전히 이 집에 함께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 얼마 전부터 나한테 친절한 사람이다. 그는 매일 출근할 때마다 나에게 인사를 했다. 백화점 안내데스크에 있는 나에게 일부러 인사를 하기 위해 들리는 것 같았다. 부드럽고 친절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와 눈인사를 주고받았고, 그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명함 한 장을 내 앞에 내밀었다. 당혹스러웠지만 민망해하는 그의 눈을 보며 딱히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제복 주머니 깊은 곳으로 명함을 밀어 넣었다.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그가 내 연락처를 물었다. 휴대폰을 잡은 그의 하얗고 가지런한 손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수줍은 그의 손짓에 비해 그의 의지는 의외로 확고했다. 우린 저녁을 먹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는 잔잔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공연을 같이 보기도 했다. 함께 길을 걷는 동안 나는 그 사람이 참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사람이었다.
“내일 아침에 집 앞으로 갈게요. 우리 재미있는 데 놀러 가요.”
사랑은 먼지처럼 가벼운 것이다. 나는 사랑을 증오한다. 내게 설렘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 그 사람은 나와는 상관없는, 내가 살고 있지 않은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나와 세상에 놓인 벽처럼 나와 그 사이에도 허물 수 없는 벽이 있다.
“저녁 먹고 자라”
악 하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나를 향한 비굴한 친절에 나는 미칠 듯이 화가 난다. 한 번도 대답을 하지 않았던 나다. 그래도 아버지는 내가 집에 들어오면 어떻게든 말을 건넨다. 아직도 난 벗어나고 싶다. 숨이 막힐 것 같다. 아니 차라리 숨이라도 쉬지 않는다면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집에 돌아와서야 내가 살아있는 세상에 들어온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아픈 시간들로 가득 찬 이 집에서는 세상에서 느낀 벽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쓰러지듯 침대에 눕는다. 온몸에 나른함이 번진다. 다시 아침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 또다시 낯선 세상으로 나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지치게 한다. 이대로 다시 눈뜨지 않았으면.
따뜻한 기운에 잠을 깬다. 창문으로 강한 햇빛이 들어온다. 찡그린 눈으로 창문을 연다. 투명한 햇살이 내 몸에 안기듯 밀려온다. 세상이 온통 투명하게 빛나는 일요일 아침이다. 하늘에는 구름 하나 없이 파랗다. 모든 것이 너무 투명해서 세상이 나를 안아줄 것만 같다. 이대로 뛰어내린다면 투명한 햇살 속으로 증발해 버릴 것 같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 난간에 걸터앉은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말로 세상은 나를 받아들일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발 밑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나 다들 궁금한 모양이다. 갑자기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나에 대해 이렇게 많은 관심이 쏟아졌던 때가 있었을까. 멀리 누군가가 눈 끝에 걸린다. 그 사람이다. 그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도 나를 본 모양이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그는 오늘 내게 놀이동산에 가자고 했다. 나도 그러자고 했던 것도 같다. 그는 이런 날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투명한 햇살에 감싸이듯 증발해 버릴 내 몸을. 내가 느낀 이 편안함을. 나는 살며시 두 손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