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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20. 2021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욕을 들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서당에서 삼 년 동안 살면서 매일  읽는 소리를 듣다 보면 개조차도  읽는 소리를 내게 된다는 뜻으로어떤 분야에 대하여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부문에 오래 있으면 얼마간의 지식과 경험을 갖게 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아이가 9살이었다. 8살 때 같은 반이었던 외동이 4명이 함께 여행을 갔다. 한껏 여문 가을이었다. 넉넉하게 숙소를 잡아 한방에서 하룻밤 자고 오기로 하고 떠난 길이었다. 엄마와 아이들, 8명만 떠나는 여행길에 아들은 들떠 있었다. 짐을 싸면서 내가 챙긴 것은 몇 권의 책, 색연필과 색종이, 아이들이 만들면서 놀 수 있는 놀이 재료들이었다. 아이와 여행을 갈 때 내가 항상 챙기는 것들이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아이들은 방에 자리 잡고 놀았다. 엄마들은 거실에서 차나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들도 함께 여행한 것은 처음이라 다소간의 어색함과 육아와 집안일에서 벗어난 홀가분한 공기가 노곤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텔레비전에 빠져있었다. 함께 간 엄마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이든 밥을 먹는 동안이든 텔레비전을 꼭 켜놓고 있어야 해서 아이들도 텔레비전을 자연스럽게 보고 있었다. 나는 준비해 간 하얀 면필통을 사인펜, 색연필로 마음대로 그리고 놀라고 아이들에게 주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남편이 잘하니까 언니도 애랑 노는 게 느나 봐요."


텔레비전에 빠져 있던 그 엄마가 한 말이었다. 순간 이거 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너네 집에서 육아는 아빠 전문인데 언니도 옆에서 오래 보더니 어설프게 풍월(어깨너머로 배운 짧은 지식.)이라도 읊는 서당개라는 건가? 혹시 욕하신 거예요? 나도 모르게 말할 뻔했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넘어갈 수 있었다.


내가 서당개라고? 


순간적으로 나는 확 올라왔다. 내가 서당개라는 거야. 아 나 진짜? 어이가 없네. 아이와 있는 시간을 놓치기 싫어서 아이를 6살에 겨우 어린이집에 보낸 내가?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책놀이 자격증을 딴 내가? 서당개라고 욕한 것 맞지?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나이도 어린 사람이 말이 좀 그렇네.라고 유치하게 나이까지 언급할뻔했다. 그 엄마는 나보다 8살이 어렸지만 내가 나이가 많다고 그 엄마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꾹 참았다. 


우리나라에서 남편이 육아에 관심이 많으면 이런 비슷한 말을 자주 듣는다. 마치 남편이 하루 종일 일도 하러 가지 않고 아이와 놀아주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엄마의 말인즉슨 프로 아빠랑 좀 살더니 어설프게 좀 따라 하네. 뭐 이런 거? 남편의 육아가 취미라고 하면 엄마의 육아는 생활이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엄마는 설거지를 할 때, 비가 내릴 때,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릴 때 그 소리와 색깔, 느낌을 뱃속에 아이에게 말해주면서 논다. 모유수유를 할 때 아이의 손가락을 만지면서, 아이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면서, 아이의 귀에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엄마의 놀이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을 나이가 되면 당근을 오이를 삶은 애호박을 아이의 손에 쥐어주고 함께 먹으면서 손으로 입으로 모든 감각으로  논다. 미역을 불려서 만지고, 국수를 부러뜨리면서 노는 것이 엄마의 놀이다. 목욕을 할 때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들어서 터뜨리면서 노는 것이 엄마의 놀이다. 퇴근해서 공놀이하고 보드 게임하는 아빠의 놀이가 취미라면 모든 순간, 함께 하는 모든 것이 엄마의 놀이이고 생활이다. 


 육아를 잘하는 아빠들이 늘고 있다. 밖에서 일도 하고 집에서는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는 아빠들이 부각될수록 엄마의 육아는 빛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아빠가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많다고 해서 엄마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당연하게, 때로는 아빠의 육아에 비해 하찮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밖에서 일하고 퇴근해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아빠의 육아가 위대한 것이라면 엄마의 육아는 평범할지 모르지만 공기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 엄마의 무심코 뱉은 한마디에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지는 것을 보면, 몇 년이 지나 이렇게 글로 옮기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는 열등감이 발동한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평가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받은 상처가 새삼 쓰리게 아픈 모양이다. 내가 아이와 있는 시간이 힘들지만 매 순간 행복한 것만큼 그 시간을 함부로 생각하는 것이 상처가 된다. 엄마로서 나는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최고의 엄마는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의 목표는 최고의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엄마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밖에서 일한 당신, 집에서는 육아까지 해라.


요즘 남편들은 아마 이런 보이지 않는 분위기를 많이 느낄 것이다. 텔레비전에는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를 위해 음식을 하는 아빠들이 나온다. 지인은 그런 프로들을 극혐(?) 하기도 했다. 누구나 그들처럼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다행히 남편은 그런 방송들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놀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공간이었다. 그런 남편에게 항상 고맙고, 그 수고에 대해 아이에게도 알려준다. 텔레비전에는 아빠와 아이가 나오지만, 그 뒤에 항상 엄마가 공기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공기처럼 소중한 세상의 모든 엄마들과 나의 엄마, 그리고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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