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Sep 09. 2021

엄마 외모지상주의예요?

화창한 날씨에 아직은 여름의 푸르름이 가득 담긴 창문을 바라보며 아침의 여유를 누린다. 그러다가 시계를 보고 서둘러 아침을 준비한다. 사과도 계란찜도 맛있게 먹어주는 아들을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바라본다. 아들은 재잘재잘 오늘도 할 말이 많다. 

 “엄마 친구가 동물의 숲에서 무트 코인을 샀다가 망했대요."

 “무트 코인? 그게 뭐야?”

비트코인을 잘못 말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아들에게 다시 물었다.

“동물의 숲에서 무를 사서 되파는 방법으로 돈을 버는 거예요. 그런데 제때 팔지 않으면 무가 다 썩어서 망하는 거죠.”

무슨 말인지 사실 모르겠다. 그래도 열심히 들어보려고 한다. 사실 듣는 척할 때가 더 많다. 아들을 위해 게임에 흥미를 가져보려고 했는데 테트리스 외에 나한테 게임은 다 어렵다. 그래도 무를 사서 파는 게임이라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사과를 포크로 찍어서 먹고 있는데 어디서 날아온 건지 벌레 한 마리가 식탁 너머 기둥에 앉는다. 날개를 접은 모양이 머리 부분을 제외하고는 오각형 모양에 파리보다는 큰 곤충이다. 

 “어디서 날아왔지?”

창문이 모두 닫힌 것을 확인하고 내가 말하자 아들이 묻는다.

 “어디서 들어왔어요? 혹시 그 벌레 광대 하늘소예요?”

광대 하늘소라니 내가 알고 있는 하늘소는 장수하늘소가 전부이다. 나는 아들의 물음에 되묻는다. 

 “그래? 광대 하늘소라는 벌레가 있어?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 있으면 안 되는데.”

 내 말에 아들은 걱정스럽게 묻는다. 

 “엄마 혹시 죽일 거예요?”

여름을 지나면서 우리 집에 날아다니던 작은 벌레들을 전자 모기채로 잡던 엄마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그때도 아들은 물었다. 

 “엄마 벌레도 생명인데 왜 죽이는 거예요?”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주면서도 나는 정말 이 벌레들이 사람에게 해로운 걸까 생각했다. 어쩌면 벌레들에게 사람이 더 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아들에게 벌레가 사람에게 나쁜 균을 옮기기 때문에 죽이는 거라고 말했다.  해충은 죽이지만 다른 곤충이나 동물은 인간이 보호해줘야 한다고. 그러면서도 나는 머릿속으로 해충과 해충이 아닌 곤충을 나누는 기준이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들에게 광대 하늘소라고 불리는 곤충을 죽여야 하는가는 중요한 문제인가 보다. 저 곤충이 해충인지 아닌지 결정해야 하는 나에게도 중요한 순간이다. 

 “엄마 안 죽이면 안 돼요?”

아들은 간절함을 담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순간 나는 저 곤충의 목숨을 쥐고 있는 나의 위치를 생각했다. 저 작은 곤충의 생사를 내가 결정해야 하는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곤충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곤충은 날아가지 않고 긴 다리로 기둥 위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작고 파랗고 긴 종이를 곤충의 머리 앞에 갖다 댔다. 하얀 기둥과 다른 파란 길에 놀란 것인지 곤충은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온몸의 어느 부분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던 곤충은 망설이듯 한쪽 다리를 앞으로 뻗었다가 접었다가 한다. 이 길을 계속 가야 할 것인지, 이 길이 안전한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나는 왜 곤충이 날개를 펴서 곧장 날지 않고 망설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곤충은 잠시 더 고민하다가 드디어 파란 종이에 다리를 올렸다. 한쪽 다리를 올리자 나머지 몸은 빠르게 종이 위로 올라갔다. 마치 결심이 서면 뒤돌아보지 않는 강한 결단력과 추진력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여 놀랍기도 하고 웃음이 났다. 나는 종이를 올리면 곤충이 날아서 거실 어딘가로 숨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종이를 들고 창문으로 갔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서 곤충을 종이에서 날려 보냈다. 곤충은 자신의 목숨이 얼마나 위험한 순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 날개를 펼쳐서 힘차게 날아올라 금방 사라졌다.

 “광대 하늘소가 살아서 다행이에요.”


아들은 커갈수록 벌레나 개미의 죽음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 얼마 전에 아들은 산책하다가 실수로 달팽이를 밟은 적이 있었다. 빠직 소리에 보니 달팽이의 집이 으스러져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달팽이가 자신의 발에 밟혀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슬퍼했다. 나는 아들에게 '니 잘못이 아니야 실수였어 너무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나 고민했다. 실수니까 괜찮아 라고 해야 할지 그건 달팽이의 운명이야 자연에서는 어쩔 수 없이 죽는 생명체가 있기 마련이야 라고 해야 할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아들은 밤이 되어도 달팽이의 죽음을 슬퍼했고 일기장에 쓰기까지 했다. 일기를 보신 선생님은 실수로 어쩔 수 없이 달팽이를 죽일 수는 있지만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말라고 써 주셨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죽이게 되는 생명들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 소중함에 대해 고민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마음에 새겼다. 


집에 들어온 많은 벌레들을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죽였다. 해충인 초파리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많은 곤충들도 내 손에 희생되었다. 나는 그 벌레들을 살리고 싶지만 살리기에 너무 무서웠다. 아들과 남편은 휴지로 살짝 집어서 창문으로 조심스럽게 내보내 준다. 하지만 나는 벌레가 도망가려고 바둥거리면 무서워서 창문까지 가지 못하고 휴지를 놓아버린다. 결국 남편이나 아들이 없을 때 만난 벌레들은 살아남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나도 살려주는 벌레가 있다. 바로 무당벌레다. 언젠가 무당벌레가 들어와서 나는 심지어 맨손으로 살짝 잡아서 창문 너머로 보내준 적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들이 물었다. 

"엄마 무당벌레는 왜 안 죽여요?"

"얘는 안 무섭잖아. 이뻐서 그런지 무섭지가 않아. 그리고 바둥거리지도 않고."

"엄마 외모지상주의예요?"

아들의 말이 맞았다. 생각해 보니 벌레를 대할 때도 나는 외모에 따라 다르게 대하고 있었다. 무당벌레나 나비는 무섭지 않고 나방이나 귀뚜라미 같은 벌레는 무서웠다. 꿈틀대는 애벌레들은 쳐다보기도 무섭지만 달팽이는 괜찮았다. 


아들의 말처럼 나는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이 맞다. 내 이상형은 항상 잘생기고 키 큰 남자였다. 언젠가 남편의 지인들에게 나는 결혼할 때 외모만 봤다고 했더니 배꼽 잡고 웃었다. 뭐 현실은 이상형과 다르고 이상형과 결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아무튼 내가 외모지상주의라는 것을 아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을 대할 때도 예쁜 것만 챙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들이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차마 무서운 벌레에게 마음을 열 수가 없다.  


나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해충이라 불리는 곤충들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하고서는 곤충을 아들 앞에서 잡았던 나에 대해서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누구의 생명이라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에게 편하고, 나에게 예쁜 존재에게만 사랑을 준 것이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아들은 자신이 살린 한 생명을 생각하며 뿌듯해서 아침밥을 마저 먹고 양치질을 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간다. 오늘도 아들이 있어 나의 부족함을 나의 경솔함을 일깨워주니 다행이다. 어른들이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완전히 잃을 즈음에 아이를 낳아 순수함을 되찾게 한 자연의 이치에 감탄하게 되는 아침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