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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28. 2021

거미줄 위를 걷는 거미처럼

엄마! 거미는 왜 거미줄에 안 걸리는지 아세요?


책을 읽고 있던 아들이 묻는다.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들어 답을 알고 있지만 나는 왜 안 걸릴까?라고 묻는다.


알려 줄까요?

응! 궁금해.

거미줄은 가로실과 세로실로 만들어져 있어요. 이 중에 가로실만 끈끈한 액이 있어서 파리 같은 곤충들이 거미줄에 걸리면 빠져나오지 못해요. 그런데 거미는 가로실이 아닌 세로실로만 걷기 때문에 거미는 거미줄에 달라붙지 않는 거예요. 게다가 거미 다리에 기름성분이 있어서 가로실을 밟아도 거미줄에 잘 거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오 거미 멋지다.


설명을 마친 아들의 얼굴이 뿌듯해 보인다. 좋아하는 책을 여러 번 읽고,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아들은 이런 식의 질문을 자주 한다. 요즘은 이 질문을 자주 하는데 나는 답을 알지만 아들의 설명하는 즐거움을 위해 항상 모른다고 답한다.


오늘은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거미줄 위의 거미에 대해 생각했다. 이슬 맺힌 거미줄은 진주처럼 예쁘지만 그 위에 거미는 징그럽고 공포스럽기까지 한 벌레일 뿐이다. 하지만 거미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거미줄을 만들 줄 하는 최고의 건축가이다. 게다가 자신만 피할 수 있는 함정을 치는 최고의 지략가이기도 하다. 거미는 자신이 갈 길을 알고 가는 지혜로운 존재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거미가 부럽다. 인생에서 언제 걸릴지 모르는 거미줄을 피할 수만 있다면 살아가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거미줄에 걸려 버둥거렸는지 생각했다. 잘못 디딘 한걸음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던 내가 생각났다. 아니 어쩌면 나는 여전히 그 거미줄에 걸린 채 위태하게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배가 고프지 않은 운명이 언젠가 허기를 느끼면 자기만 피할 수 있는 길을 통해 나를 옥죄러 올 수도 있다.


아들에게 거미처럼 길을 알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  게다가 설령 가로실을 밟아도 걸리지 않을 안전장치까지 발에 있어서 안전하다니 아들에게도 하나 장착해주고 싶은 아이템이다. 아들이 가로실이 아닌 세로실만 밟고 앞으로 거침없이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거미줄 위를 의연하게 걷는 거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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