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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팍끌림 May 08. 2024

어쩌다 동대표

또 하나의 부캐를 만들었어요

동유럽 여행을 다녀온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네 친구를 만났다.


" 요즘 아파트 게시판 봤어? "

" 아니, 여행 가면서 아예 앱 데이터 꺼버렸는데? 무슨 일 있어? "

" 얼른 봐봐 "


그렇게 확인해 본 아파트 게시판은 아파트의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어주고 있는 입주민들이 고군분투 중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계약건 중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계약이 체결되었던 것이다. 이상함을 느낀 입주민 한둘이 게시판에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몇몇의 입주민들이 아파트를 바로 잡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편으로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면 관심이 없고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게시판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어주고 계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그분들이 지치지 않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 공청회 한다는데 갈 거야? "

" 공청회가 뭐야?ㅎㅎ "


난생처음 듣는 공청회라는 단어. 사전적인 의미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기관이 일정항 사항을 결정함에 있어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듣는 형식이라고 한다. 아파트 회의실에서 진행된 첫 번째 공청회에 참석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참석자가 별로 없을 것 같아 자리라도 채워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갔다. 역시나 온라인에서는 참여도는 높았지만 오프라인으로 참석한 인원은 20명도 안 되었다.


다양한 직업,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입주민들이 의견을 나누다 보니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그렇게 공청회가 여러 번 더 진행되었고 마지막 공청회 때는 회의실이 공간이 부족해서 외부 문까지 열어두고 진행되었다. 몇 번을 참석하다 보니 매번 참석하는 익숙한 얼굴들의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연락처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신혼집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에 신청해서 소개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 혹시 유튜브에 신혼집 소개 하셨었죠? "

" 아 네 맞아요ㅎㅎ "

" 그 유튜브 보고 이사 왔어요. 좋은 정보 너무 감사해요 "


집 꾸미는 걸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딩크로 살면서 방 하나를 홈바로 꾸며놓은 우리 집은 네이버 부동산 카페에 올린 랜선집들이 글도 추천 글로 한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우리 부부가 올린 글과 유튜브 영상을 보고 우리 아파트로 이사 왔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게 신기했고 왠지 모를 책임감이 생겼다.


" 오빠 다음 동대표 선거에 오빠가 나가보면 어때요? "

" 내가? "

" 우리는 저녁때 시간도 많고 오빠가 잘할 것 같아. 내가 적극 도와줄게요 "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아파트에 이슈가 생기면 ' 내가 동대표를 나가던지 해야지 ' 를 여러 번 얘기했었던걸 기억해서 남편에게 제안했지만 약력 공개와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반대로 네가 해보는 게 좋겠다는 남편의 제안.


기존 동대표들이 모두 사퇴하고 다음 입대의 후보 등록이 시작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힘써주시던 분들이 하나 둘 배우자의 반대, 출산, 육아 등등으로 후보 등록을 포기했다. 배우자의 반대, 출산, 육아에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는 나는 새로운 경험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결국 몇 년 동안 공석이었던 우리 동의 동대표는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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