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다큐<1975.김상진>
“아들. 수원시사회 시안하나 보내니 작업해주시게”
서울, 광주, 전주, 부산 시사회마다 도움을 받고 있다. 작은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는 아들 덕분에 상진형님과 영화의 의미를 두텁게 가져가는 중이다.
수원시사회 포스터의 콘셉트는 ‘상진이 형은 태극기’다.
내게 태극기는 생의 고비마다 결정적인 여운을 남기면서 한참한참 마음에서 ‘울컥거리는 존재’였다. 그만큼 뜨거웠다.
태극기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핏빛 눈발에 비춰진 ‘독립 의지’였다. 김상진 열사가 할복하시던 날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 동료들에게 불러달라 부탁한 것은 ‘애국가’였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때에는 희생당한 시민들 관 위에서 ‘뜨거운 위로’였고, 6월항쟁 때는 온 거리, 국민들의 가슴속에서 ‘펄럭이는 갈망’이었다.
1975년 4월 11일, 스물여섯살 청년·학생으로 박정희유신독재에 항거 자기 몸을 칼로 갈라 자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역사를 요동치게 한 그 ‘역동’은 무엇일까?
다큐<1975.김상진>은 그 역동성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김상진열사는 우리가 ‘몸으로 저절로 아는 태극기’ 그 자체였다.
강제징집 당해 보안대에서 녹화공작 받고 나서 서약서 쓰고 읽을 때. 벽에 걸린 태극기는 전두환 군부가 내게 양심을 팔아라 ‘강요한 태극기’였다. 하지만 나는 ‘이어지는 울컥함’으로 되받아쳤다. 그랬던 태극기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광훈,신천지 같은 이단부터 검사·판사같은 법비(法匪), 기레기언론등이 버무려진 극우·친일세력들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상징처럼 쓰고는 아무렇게 취급한다. 태극기의 글로리를 이해할 수 없는 자들이 벌이는 ‘태극기 부대’로 오염되고 말았다
“형님, 태극기를 다시 ‘뜨거운 역사’로 돌려주세요”
열사에게 빌었다.
4월 11일이면 할복의거 48주기.
형님이 1968년 서울농대 입학하셔서 막걸리 걸지게 한잔, 동료 선후배들과 뛰고, 의기투합하던 팔달산 인근 수원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수원시사회를 갖는다. (사)김상진기념사업회와 (사)수원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가 주최하고 제작사 이야기농업연구소가 주관한다.
윤석열정권 내부의 균열이 감지되는 지금.
다큐영화<1975.김상진> 수원 특별시사회
다시 민주주의, 다시 태극기.
상진형님, 태극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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