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오세암'
오세암: 부처의 자비로 살아남은 5살 아이
조선시대 스님은 설악산 깊은 곳의 암자에서 수행을 하던 중, 잠이 들었다. 관세음보살이 꿈에 나타나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꿈에서 깬 스님은 서둘러 마을로 돌아갔으나, 남아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무언가 이상해서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이 마을에 역병이 돌았어. 마을 사람들이 모조리 죽었는데 웬 어린아이 하나만 살아남지 않았는가?"
그 말을 들은 스님은 본가를 찾았다. 죽은 형의 아들은 고작 3살이었다. 저 아이는 스님의 조카이자 지나가던 사람이 말한 유일한 생존자였다. 스님은 관세음보살이 아이를 지켜주었다고 생각했다. 아이와 함께 설악산 암자로 돌아간 스님은 정성껏 돌보았다.
2년 후,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다. 스님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 이에 혼자 지낼 조카에게 일렀다.
"혼자 있는 게 무서우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외우며 지내거라."
스님이 양식을 구하러 갈 무렵, 설악산엔 폭설이 내려 산길이 끊겼다. 스님은 조카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 수많은 방도를 찾았지만 눈에 뒤덮여서 올라갈 수 없었다. 후에 완연한 봄이 찾아오자 비로소 암자로 돌아갔다. 스님이 암자에 도착하자, 죽은 줄 알았던 조카가 반겨주었다.
"먹을 양식이 없었는데 어찌 살아남았느냐?"
"관세음보살께서 저를 돌보아주셨습니다."
스님은 관세음보살의 신력에 감동했다. 이 암자의 이름을 '오세암'으로 바꾸었다.
초등학교 시절, 이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감이와 동생 길손이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다. 유일한 가족인 엄마를 여읜 남매는 스님의 도움으로 절에 살게 되었다. 당시 그 애니메이션은 관객의 눈물을 가져갔으며 가끔 그 장면들이 잇따라 떠올랐다.
오세암은 '5세'에서 비롯되었다. 간혹 우스갯소리로 어린이는 영안이 열려서 어른이 볼 수 없는 걸 본다고 했다. 그게 왜 하필 5세 무렵인지 모르겠지만 내게도 그런 경험이 존재했다. 이상하게 나는 9살 이후의 기억들이 흐릿했다. 남들은 학창 시절의 추억을 곱씹으면서 사는데 유독 난 유년기의 기억만 명징했다. 당장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다.
그러니까 이 일화는 나도 거짓이길 바랐다.
때는 내가 7살이던 시절, 저녁 7시였다. 엄마는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며 나를 데려갔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사거리에 도착했다. 앞장서서 걷던 엄마는 걸음을 멈췄다. 벽에 딱 달라붙어 건너편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누가 봐도 수상한 몸짓이었다.
엄마가 달렸다. 내 손을 붙잡고 갑자기. 영문도 모른 나는 끌려가다가 넘어졌고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어린 나는 주저앉아 엉엉 울었고, 그제야 엄마는 나를 안고 멀리 도망갔다. 만나야 한다는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잔뜩 지친 우리는 곧장 돌아왔다.
그 후로 십수 년이 지났음에도 나는 궁금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기억날 때마다 집요하게 물었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거? 엄청나게 커다란 강아지가 있어서 그랬어. 너도 알지? 엄마가 강아지 무서워하잖아."
거짓말. 10대의 나는 그걸 듣자마자 단박에 알아차렸다. 저건 진실이 아니었다.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귀찮을 정도로 집요하게. 그리고 얼마 전, 엄마는 지겹다는 듯이 모든 걸 토로했다.
"강아지 같은 걸 보고 놀란 건 확실해. 사실 뭔지도 몰라. 그냥... 커다란 눈이 수풀 속에서 고요하게 쳐다봤어. 보자마자 오금이 저리더라."
알 수 없는 맹수의 눈빛. 엄마는 그걸 보고 도망쳤다. 어린 내가 넘어진 것도 모를 정도로 공포에 시달려서 말이다. 나는 호기심이 아주 많았다. 또다시 풀리지 않은 의문인 '망태 할아버지 책 실종 사건'을 떠올렸다. 그건 간단했다. 다섯 살의 나는 어린이집에서 망태 할아버지 집을 놀러 간 남매의 책을 읽었다. 후에 다시 읽으려고 책장을 뒤적이니까 그 책은 원래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럼 내가 읽은 건 뭘까. 나는 헨젤과 그레텔을 혼동한 걸까? 그럴 리 없었다. 엄마는 왜 맹수의 눈빛을 마주한 걸까? 애당초 도시에 맹수가 왜 있어. 그 해에 동물원 탈출 사건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모든 걸 파헤치고 싶었고, 그건 굉장히 순조로웠다. 모든 열쇠는 아빠가 가졌다.
집안 대대로 모신 신이 있었다. 며칠 전, 우리 가족은 여행 겸 그 신이 있는 절에 다녀왔다.
살면서 종교를 가진 건 여러 번이었다. 외할머니를 따라서 교리 수업을 두세 번 들었으며 학창 시절엔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꽤 신실한 편에 속했다. 성인이 된 후, 종교엔 별 다른 관심이 없었다. 절을 가겠다는 다짐은 그저 궁금증이었다. 나는 마감을 앞두고 있었고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내 기억을 맴도는 유년기를 종결하고 싶었다. 그곳은 자그마한 절이었고 기운이 영험했다. 나름대로 시주하고 절을 한 뒤, 기념품 겸 팔찌를 구경했다. 그때 스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시시콜콜한 물음이었다. 어디서 왔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스님과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풍족한 차와 다과, 40분간 이어진 차담. 가족이 나를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난 더 그곳에 있었을 참이었다.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멍하니 차로 돌아왔다. 차담 프로그램을 신청한 적 없었다. 이 모든 건 우연이었다. 팔찌를 산 나는 한결 홀가분하고 특별한 마음이었다. 그 후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뭔가 성공할 거 같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한하게 긍정적인 마음이 샘솟았다.
이 설화가 번뜩인 건 왜일까. 다섯 살의 어린이가 어떻게 어른 하나 없이 몇 달 동안 살아남았을까. 세상에 신은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한낱 인간인 내가 이해하기엔 우주는 커다랗다. 호기심은 때론 화를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자그마한 호기심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독자를 즐겁게 만든다. 절을 다녀온 이후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을 파헤치고 싶었다. 왜 내 유년기가 이토록 뇌리에 박혔는지 알고자 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 어린이가 되어간다.
그 말처럼 성인의 문턱을 넘어버린 내가 다시 어린이로 귀환한다면 언젠가 진실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