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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Dec 31. 2020

나의 '일' 이야기

아이낳기가 고민되는 첫 번째 이유

아이 낳기가 고민되는 첫 번째 이유는, 출산/육아가 일과 상호대립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일은 내게 존재 이유와도 같다. 내게 가장 큰 두려움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단연코 경력단절이다. 지금의 회사 생활이 아무리 안정적이라고 해도, 아이를 낳는 순간 커리어에서 큰 변화를 맞닿을 수 밖에 없다. 어디선가 육아의 시작은,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아이를 위해 내 인생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을까.


내가 경력단절을 두려워한 것을 돌이켜보자면, 엄마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엄마는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나를 낳았고, 나를 키우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업을 찾고자 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좌절되는 것 또한 끊임없이 보았다. 엄마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엄마에게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와, 독박육아로 아이를 키우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면, 엄마는 안정적인 직업과 내 몫의 일을 하고 있다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따뜻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엄마의 일을 찾고자 했다.

엄마의 첫 시작은 기술을 배우려는 시도였다. 내가 3살 무렵 엄마는 미용 기술을 배워 경제적으로 독립하려 했지만, 그 당시 엄마는 베이비시터라던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당시 내가 엄마의 신발을 모조리 숨기며 울고 불고 매달리는 바람에 기술을 배우러 나갈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동생이 생기고 엄마의 첫 독립 시도는 좌절 됐었다.


그 후는 급식소 취업, 식당 취업과 같은 비정규직이었다. 동생이 어느 정도 자라자 엄마는 다시 일을 찾고자 시도해볼 수 있었지만, 기술을 배우기에는 나이가 많다고 판단했다. 당장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을 하거나 식당에 일자리를 얻기도 했다. 모두 비정규직이었고, 월급은 15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의 상황, 식당의 상황에 따라 언제 계약이 끝날지 몰랐다. 아빠와 맞지 않아 더는 같이 못 살겠다 싶은 날에도 경제적 독립이 어려웠기에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엄마는 늘 ‘여자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아이를 낳고도 돈을 벌 방법은 선생님 밖에 없다’처럼 엄마가 알고 있던 세상에서 최고의 자리로 나를 키우려 했다. 엄마의 청춘을 먹고 자란 덕에 나는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사회인으로 컸지만, 내 마음 속에는 경력단절이 되어 엄마처럼 되면 어떡하지?와 같은 두려움 또한 생겼다. 물론 아이를 키우면서 충만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기에 전업주부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내 일을 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전업주부라는 옵션만 남아있을 것을 두려워했다. ‘아이를 낳고서 사회에서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 것.’ 그것이 내게 있는 큰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이제 엄마는 노후가 불안하다고 한다. 지금의 내가 엄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엄마께 매달 용돈을 드릴 수 있을까? '부모님께 기대지 않고 내 삶의 몫을 잘 살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려운 세상이어서, 도와드리지도 못한 채 안타까움과 미안함, 너무 속상해서 화가 일렁이는 감정, 그리고 그것이 혹 나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복잡한 마음은 설명할 길이 없다.


경력이 단절된 후 그것을 극복해보려 노력하다 실패했던 케이스들을 계속 보아왔고, 내게는 뉴스의 헤드라인들이 단순한 뉴스이지 못하다. ‘30대 여성의 60%는 경력단절 경험’, ‘경력단절 평균기간 7년’ 같은 뉴스의 헤드라인들이 비수가 되어 내 마음에 꽂힌다. 그리고 맘카페에도 경력단절된 여성이 재취업을 고민하거나 (그 고민하는 자리가 비정규직이어서 취업을 하는게 맞는지 그럴거면 아이를 그냥 키우는게 맞을지에 대한 고민이고) 워킹맘이 아이를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버텨보았으나 이제는 그만둬야하는게 아닌가 싶다는 고민글을 볼 때, 여성이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양립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인다. 육아를 개인의 능력, 개인의 과제로 남겨놓고 출산율이 낮다고 이야기하는 사회에도 화가 치민다.


하지만 나는 일하는 것이 즐겁다.

그러면 두려움 때문에 일을 하고 싶냐라는 질문에는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일하는 것이 즐겁고, 일하지 않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마케터로서 브랜드를 키워가는 것이 즐겁고, 새로운 기획을 시작하는 것이 재밌고, 사람들과 토론하고 결과물을 만드는 그 과정이 즐겁다. 퇴근하고서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기록하기도 하고, 주말에 편집샵 등을 가서 요새 트렌드가 이렇구나 하고 읽어내는 것도 좋아한다. 나라는 사람은 대학생 때부터 나라는 사람의 사회 몫을 하고 싶어서 계속 노력해왔고, 지금도 내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데 쓰고 있어서, 일하지 않는 나는 사실상 죽은 나와 다름없다. 아이를 키우는 것을 아직 겪어보지 않아 내게 어떤 의미가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내게 전부같은 일이 무의미해질만큼 더 큰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사회는 ‘아이 키우기’는 내게 전부같은 일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만약 정말로, 육아와 일이 상호대립적이라면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아이 없는 삶이 얼마나 허전하고 노년이 외롭고 따위의 조언은 필요없다.


나는 그나마 육아휴직이 보장된다는 대기업에만 다녀야 하나

나는 몇 번의 이직을 거치며, 내게는 제약이 덜한 스타트업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직장은 여성이 다니기 좋다고 유명했던 회사였고, 육아휴직이 보장되는 곳이었지만 나와 맞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보장되고 평화롭기만 한 회사는 없다. 그 곳에서도 육아휴직을 채 3개월도 쉬지 못하고 복귀해야하는 사람도 있었고, 끊임없는 업무 스트레스로 화장실에 가서 울고 돌아와야하는 사람도 있었다.

스타트업은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걸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곳이지만, 그 말은 곧 리스크를 내가 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만큼 회사가 성장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고, 내가 지금처럼 일을 하기만 한다면 앞으로 더 클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육아휴직으로 1년을 비운다면? 물론 내 일에 따라 회사의 속도가 바뀐다는 생각이 오만한 생각이라는 것은 알지만, 내가 1년을 쉬고 돌아올 쯤의 회사가 지금의 성장 속도를 유지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가 답이다. 스타트업이라는 리스크에 육아라는 리스크가 만난다. 하나의 생명을 리스크로 봐야하는 것이 말도 안되지만, ‘일의 기쁨과 슬픔’에 나오던 사람들처럼 우리 세대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셈법에 강한 세대 아닌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기 전까지, 지금 회사 일이 재미있는 것과 별개로 아이를 낳기 위해서 대기업으로 이직을 고려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내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사회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녹록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도 이미 다 알던 것들이었는데, 내가 서 있던 위치가 불안하다고 느끼고서는 잠시 잊고 있었다.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복기해보자면,   

전 회사에서 보았던 것처럼, 대기업이라도 육아휴직이 보장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1년 다 쉬는 사람 흔치 않다. 스타트업처럼 회사의 존폐 여부를 떠나서, 대기업이라고 해도 더 잘하는 사람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1년 full로 다 쉬고 오는 사람이 몇 %나 되겠냐 와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대기업에 다니면 또 다른 불안감이 생긴다. 당장은 회사의 타이틀이 있고, 회사의 시스템 안에서 일하기에 안정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평생직장의 개념이 없는 이 사회에서 회사가 더는 나를 책임져 주지 못한다고 할 때 그 때 나는 어떻게 할지 고민에 사로잡힌다. 사회의 변화를 피부로 체감하지 못하는데, 지금의 평온함에 젖어 미래의 내가 도태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들.


그래서 나의 결론은, "내가 우선 있고, 그 다음에 아이가 있다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기 위해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 나의 적성, 나의 가치관 등을 무시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서 대기업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뽑아줄지도 모르지만) 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리에서 아이를 낳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다.

14년도에 첫 취업을 할 때, 취업이 너무 어려웠고 여자 동기들의 취업률이 현저히 낮음을 느꼈다. 취업카페에는 "남자친구 있느냐, 결혼하고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따위의 질문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후기 또한 수없이 보았다. 그 때 내 스스로 결심했던 것이 있는데, 내가 취업하면 내 뒤에 올 여성들이 저런 소리를 듣지 않도록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낳고도 계속해서 일을 하기로 했다. 나를 비롯한 지금의 여성들이 일과 육아를 양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 엄마가 필요로 했던 그 롤모델) 버텨준다면 더 이상 취업전선에서 저 따위 질문을 물어볼 생각을 못할 것이란 생각과 결심.


이제 내게 일은 돈벌이, 자아실현, 사회에 대한 책임 등 한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워졌고, 나와 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어려울만큼 나의 존재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일'이 육아로 인해 단절되지 않을까 하는 큰 두려움. 그것이 아이낳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첫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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