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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Dec 31. 2020

아이낳기를 고민합니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이 왜 낳기로 하셨어요?

제현주님의 ‘일하는 마음’이라는 책을 읽다가,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듣는데, 되려 왜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는지가 궁금하다는 말에 무릎을 쳤다. 사실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으면 아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인데, 왜 사람들은 그런 결심이 서지 않은 사람에게만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고 삶에 큰 변화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왜 질문이 없는지에 대한 작가의 글에, 지금의 나만이 기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남겨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아이는 먼 훗날의 일, 남의 일로 생각하다 이제서야 내 고민 선상에 가져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시작되었는데, 이 고민의 과정을 기록해두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단 3시간. 빨래를 돌리기에도 어정쩡한 시간. ‘아이’라는 큰 존재를 우리 삶에 추가할 수 있을까?

회사는 성장궤도에 올라섰고 (퇴근하고 일 생각을 off 해도 회사 일에 아무 영향이 가지 않고), 회사 일을 끝내고 집에 와도 에너지가 남아있다고 느껴질 때, 무언가 내 삶에 하나를 추가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처음 접해보는 내 마음상태다.)

집에 와서 핸드폰만 만지작대고 넷플릭스만 보는 내가 한심해, 처음으로 대학원을 가볼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퇴근 후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도 되는데 무한경쟁사회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이 시간조차 내 경쟁력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이 상황이 씁쓸하다. 이런저런 새로운 일에 대한 후보군을 추려보다, 그렇다면 먼 미래의 내가 언젠간 결정하길 바랬던 아이에 대한 고민 또한 지금부터 해봐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무언가를 추가한다고 해도, 내게 주어진 시간은, 퇴근하고 잠들기 전까지 단 3시간이다.


남편은 9 to 7, 나는 10 to 7. 우리 부부 둘 다 일반적인 회사원의 근무 시간을 가지고 있고, 남들처럼 평균 통근시간 편도 50분 왕복 2시간이다. (집 값은 계속 올라 회사가 있는 여의도, 강남 주변에는 살지 못하고 서울 외곽으로 빠지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 집 얘기는 너무 할 말이 많아 여기에 쓰지 않겠다.) 남편은 평균 아침 8시에 출발해서 퇴근 후 집에 오면 8시가 넘는 상황이고, 나 역시 9시에 출발해서 집에 오면 8시가 되는 상황이다. 우리가 대략 한 시간동안 저녁을 함께 준비하고,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은 8시 40분쯤. 설거지까지 끝내고 tv 앞에 앉을 시간 9시 30분. 빨래를 돌리기에도, 그렇다고 무언가를 해보기에도 아쉬운 시간. 그 3시간 정도 수다도 떨고 드라마도 보고 나면, 다음날 출근을 위해 자야하는 시간 12시.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언가를 추가한다 할지라도, 감히 이 생활에서 ‘아이’를 추가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아이를 낳자는 이야기 전에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질 강아지가 불쌍해 키우지 않기로 했다. 강아지가 하루종일 혼자 집에 있어야 하고,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9시부터 12시 하루에 4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강아지가 하루에 20시간을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 판단되었다. 아이도 같았다. 우리의 삶이 2명의 자아실현과 2명의 돈벌이가 완벽히 돌아가는 상황에서, 아이를 추가한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희생을 의미했고, 나는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 명만 평생 살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남편과 함께하는 삶도 충만했지만, 10년 뒤 20년 뒤를 그렸을 때는 아이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 삶에는 아이를 추가할 여유가 있지 않았고, 언젠가 미래의 내가 해결해주길 바라면서, 지금의 내가 고민할 일이 아니라고 외면해 왔었다. 지금의 삶도 충분히 바쁘고, 충분히 행복했기에. 지금의 삶이 완벽해보여 어떤 균열도 일으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아이’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의 충돌.

하지만 이유는 모르겠다. 남편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우리는 아직 있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TV에서 말 안 듣는 아이가 나오면, 나중에 우리 애가 저렇게 행동하면 어떻게 할지 묻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리기엔, 이미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아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전에 친구들과 “남자친구 생기면 뭐하고 싶어?” 같은 수다를 떨 듯, 우리는 아이가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아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무엇이 두려운걸까?

하지만 아이 고민을 지금 시점으로 가져온 순간부터, 평온하고 무료하기까지 했던 내 삶은 다시금 불안해졌다. 사실 변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아이’라는 큰 존재를 우리의 삶에 추가하겠다고 생각한 순간, 지금의 충만한 삶이 깨질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남편이 아이를 임신하고 낳을 수만 있다면 나는 오늘이라도 아이를 가지자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만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아이를 만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두렵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고, 그건 여성이기에 겪게 되는 두려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글로 기록해두어야 그 두려움의 크기가 가늠이 될 것 같았다. 이 막연한 두려움을 내가 직접 볼 수 있는 글로 재단해 내가 매니지할 수 있는 수준의 두려움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싶었다. 낳지 않아야 할 이유만 가득하고, 낳았을 때 내가 잃을 것들만 보이는 이 상황에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축복이라고 표현하는 ‘아이의 존재’에 대해, 이런 셈법을 들이미는 것이 맞지 않다는 생각도 들지만, 매일 아침 커피를 사먹을지 말지에 대해서도 셈법을 돌리는 나라는 사람,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셈법은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싶다.


그렇게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기 위해, 내 두려움을 글로 재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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