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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Dec 15. 2023

내가 그리는 원이 더 넓어지길

사람, 그리고 사랑


릴케는, 사람은 원을 그리며 살아간다 했던가요. 살아 보니 그렇습니다. 인생이 원을 그리는 일과 같네요. 때로는 누군가를 저의 원 안쪽으로 들이고, 또 어떤 때는 원의 크기를 줄여 누군가를 내쫓기도 합니다. 삶의 끝에 이르면, 제가 그린 원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반갑습니다. 설레고 기쁩니다. 어느 정도 그 사람을 알게 되면 더 좋아집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그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단점은 저 자신과 비슷한 경우도 있고 전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미운 구석이 보이고, 못마땅해지기 시작합니다. 갈등이 생기고 다투기도 합니다. 연을 끊기도 하고 서먹한 상태로 그냥저냥 지내기도 하지요.


모진 편입니다. 큰 실패를 겪었을 때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치였거든요. 평생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이 어쩌면 이럴 수가 있나 배신감에 치를 떨었습니다. 사람이란 게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구나. 인간관계라는 것도 결국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였구나. 다시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혀를 씹으며 다짐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글쓰기/책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짧고 뜨겁게 만났다가 등을 돌린 사람도 많고, 시간이 흐를수록 진국이라 그 매력에 푹 빠진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았고, 사람 때문에 다시 일어서기도 했습니다. 뒤에서 험담과 비난을 일삼는 인간들도 있고, 진심 다해 응원과 사랑과 격려를 보내주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그리는 원이 작고 좁아서 그 안에 많은 사람을 품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틈이 생기면 바로 날을 세워 거리를 두었지요. 과거 아픔과 상처가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신경을 바짝 세우는 모양입니다.


글 쓰는 일은 사람에서 시작하고 사람에서 끝납니다. 사람을 놓은 작가는 차라리 글을 쓰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강의 시간에도 매번 사람을 위하고 챙기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왜 저는 사람을 가리고 구분하고 선을 긋고 평가를 하려는 것일까요. 잘못된 습성이 있다면 원인을 밝혀 고치려는 노력을 해야 마땅하겠지요. 


첫째,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자꾸만 제가 세운 기준과 가치관으로 그들을 판단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누구도 나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지금에라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둘째, 태도가 엉망인 사람은 도저히 용납하지 못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태도'의 개념 자체도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죠. 제가 주장하는 태도만 무조건 옳다는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습니다.


셋째, 근본적으로 아주 못된 인간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인간들이 있거든요. 뒤에서 험담과 비난을 일상처럼 하는 인간들도 많고요. 앞에서는 살살거리다가 금방 뒤통수 후려치는 인간도 적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철저하게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살았는데, 이제는 그들까지 품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 문제는 아직 조금 더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넷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많은데요. 그들도 언제가는 저를 떠날 사람들이다 싶은 요상한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지요. 그래서 거리를 두게 됩니다. 허물 없이 친해지는 걸 일부러 막기도 합니다. 이제는 그 벽을 허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다섯째,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할 때는 그를 위해 독한 말도 서슴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저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했고요. 무조건 좋은 말과 표정으로 좋다 좋다 하는 것이 과연 그의 성장과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의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습성도 이제는 조금씩 고쳐야겠습니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지요. 저도 당연하고요. 좋은 말로도 얼마든지 서로를 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제가 그리는 원이 조금은 더 넓어지길 바랍니다. 특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제 원 안쪽으로 더 들어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이제는 속도를 조금 늦추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제 마음이 또 상처 투성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시, 용기를 내 보는 것이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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