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도 그렇지 못한 날도 모두 살아내야 한다
글 잘 쓰는 사람도 책 한 권을 모두 주옥 같은 문장으로만 채울 수는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의 책을 읽어 봐도 첫 장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싹 다 밑줄을 긋는 경우는 없거든요.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위대한 거장이라 하더라도 잘 쓴 글이 있는 만큼 부족한 글도 있게 마련입니다.
글을 못 쓰는 사람도 어쩌다 제법 잘 써지는 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자기도 모르게 썩 괜찮은 문장을 쓰기도 하지요. 초보작가가 쓴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밑줄을 그었던 기억이 분명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매일 꾸준히 쓰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리적으로 쓰는 양을 극대화하는 것이 잘 쓰는 글을 많이 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글 쓰는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잘 쓴 글을 만나기도 어려운 법입니다.
무조건 잘 쓰기만을 바라는 것은 무조건 내 뜻대로 다 되어야 한다는 고집을 부리는 어린 아이의 태도와도 같습니다. 미성숙한 자세지요. 때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글도 인생과 똑같습니다. 매일 글을 쓰다 보면, 어떤 날은 생각보다 멋진 글을 쓰기도 하고요. 대부분 날에는 부족하고 모자란 글을 쓰게 됩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글을 쓰는 덕분에 제법 잘 쓴 글도 만나게 된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글은 쓰지도 않으면서, 한 번 썼다 하면 기가 막힌 문장 쓸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글은 손으로 쓰는 것이 정답입니다. 머리로만 쓰려고 하면 실력은 늘지 않고 기대만 커집니다. 성실한 태도 없이 위대한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홉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제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을 꼽으라면, 아홉 권 중에 대략 스무 개 정도 고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책 한 권에 고작 두 개 정도 괜찮은 문장을 썼다는 뜻입니다.
A4용지 백 장 가량의 글을 쓰면서 고작 두 개의 문장이라니. 허탈하고 맥 빠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A4용지 백 장 가까이 부족하고 모자란 글을 썼기 때문에 그나마 두 개의 문장이라도 건질 수 있었던 겁니다.
만약 제가 끝내주는 문장만 쓰고 싶다는 욕심으로 계속 비법만 찾아 헤매었더라면 아마 지금까지 책 한 권도 출간하지 못했을 테고, 그랬다면 스무 개의 문장도 만나지 못했을 테지요. 그리고 이제 열 번째 책을 마무리하고 있는데요. 이 책에는 나름 괜찮은 문장이 서너 개 정도는 담겨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꾸준하게 오래 쓴 덕분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 성과가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한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매번 만족스러운 결과만 낼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이런 여지를 허락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또 매 순간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좀 괜찮은 문장 썼다 하여 기고만장 촐싹거리는 것도 꼴불견이고, 부족하고 모자란 글을 썼다 하여 실망하고 좌절하는 모습도 보기 좋지 않습니다. 상황이나 결과가 어떠하든 초연하고 의연하고 덤덤하게 구는 태도가 흔들리지 않는 인생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다른 일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글쓰기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얻는 바가 더 큰 행위입니다. 한 편의 글을 쓰는 동안 수많은 생각을 깊이 해야 하고, 평소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다른 측면에 대해서도 고려할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과정을 통해 충분히 배우고 익힐 수 있다면, 굳이 결과에 연연할 필요도 없겠지요.
글이 매끄럽게 잘 써지는 날에는 기분이 좋습니다. 글이 서툴고 어색하며 한 줄 쓰기가 사막 건너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아무래도 감정이 편치 않습니다. 책을 집필하는 과정 전체를 놓고 보면, 좋고 나쁜 모든 순간들이 그저 한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있겠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이나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안절부절 발 동동 구를 때도 있게 마련입니다. 인생을 길게 놓고 보면, 그 모든 순간들이 삶이라는 도화지에 찍힌 하나의 점이나 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당시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만,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을 때 있었을 겁니다. 당장은 죽을 것만 같이 힘들지만, 시간 흐르고 나면 별 일 아니었다 싶은 때도 많았을 겁니다. 길고 먼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매번 어느 한 순간에 고착되어 마치 그 순간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전전긍긍하는 태도. 잠시 멈춰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왜 글을 쓰지 않냐고 물어 보면,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답답하고 재미 없기 때문이라도 답하는 사람 많은데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하여 오늘을 건너뛰고 내일을 살아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좋든 나쁘든 주어진 날을 살아내야 하듯이, 글이 잘 써지든 말든 오늘도 주어진 백지를 채워야 합니다.
동전의 양면은 인생 모든 분야에 존재합니다. 절망이 있어야만 희망을 이해할 수 있고, 슬픔을 알아야만 기쁨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둠이 있어야 밝음의 개념이 성립하고, 두려움을 느낄 수 있어야만 용기도 가질 수 있는 법입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만 '제법 잘 써진다'는 생각도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슨 일이든 술술 잘 풀리지 않는 때입니다. 인생에는 짠 하고 터지는 행운의 순간보다 어렵고 힘들고 막막한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시련과 고난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모든 일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만이 동전의 앞면도 기꺼이 만날 수가 있는 것이죠.
작가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글 쓰는 사람의 손끝에 묻어 있어야 할 키워드는 정직과 정성, 그리고 배려 이 세 가지뿐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