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건
감옥에서 처음 글을 썼을 때, 곁에 앉은 네 살 아래 K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쓴 글인데 한 번 읽어 보라며 권했지요. 무심한 척 건넸지만, K가 제 글을 읽는 동안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난생 처음 제 글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음...... 형님, 솔직히 말해도 됩니까? 이 글은 장르가 뭡니까? 로맨스? 스릴러? 액션? 등장인물들이 계속 싸우는데,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모르겠어요."
K의 소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말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의 입에서 읽을 만하다 정도의 평은 나올 줄 알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모르겠다니. 지금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남자 셋이서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인력 시장에서 만난 동료 형에게도 글을 보여준 적 있습니다. 그는 호평을 해주었지요.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소설가로 돈 많이 벌겠다 뭐 그런 종류의 평가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평가였음에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제가 그 형의 소감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글을 제대로 읽을 거라고 생각지 않은 탓이기도 합니다. 저는 은근히 그 형을 무시하고 있었거든요. '노가다판에서 일하는 사람이 글에 대해 뭘 알겠어.'
분명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제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매일 글을 쓰면서도 매일 스스로를 비난했고, 급기야는 자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실력으로 무슨 책을 내겠다고.
10년 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악평도 받아 봤고 호평도 받아 봤습니다. 온마음 다해 응원하겠다는 독자 메일도 받아 보았고, 이런 걸 책으로 냈냐는 악성 댓글도 받았습니다.
아무리 멋진 칭찬을 받아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고,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먹어도 글 쓰는 걸 멈출 수 없었습니다. 타인의 칭찬과 인정은 순간적인 기분을 좋거나 나쁘게 만드는 것 외에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내 글을 아껴주고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진심 다해 감사해야 합니다. 내 글을 무시하고 형편없다 여기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무시하면 됩니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 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쓸 필요 없습니다.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이들 있다고 해서 그들의 마음 돌리기 위해 노력할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마음입니다. 내가 내 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늘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최고가 되는 것보다 매일 성장하는 것이 훨씬 기분 좋고 행복합니다.
타인으로부터 칭찬 받고 인정받으면 기분 좋습니다. 인간은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일 테지요. 그러나, 타인의 인정과 칭찬에만 목을 매면 평생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도 모든 사람 마음에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글을 쓰는 이유는, 타인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돕기 위함입니다. 내가 쓴 글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설령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해를 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책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족하고 모자라면 더 채우기 위해 노력하면 됩니다. 스스로를 못살게 굴 필요는 없는 것이죠. 칭찬 받으면 기분 좋고, 욕 먹으면 기분 나쁩니다. 일회성 기분에 좌우되는 가벼운 작가 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의 인정도 필요없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해주면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사랑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