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달라진다
[자이언트 북 컨설팅]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글을 잘 쓰고 싶다거나 책 내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게 될 줄 알았지요.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글쓰기/책쓰기 관심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삶이 지치고 힘든' 이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저는 '치유의 글쓰기'를 맹신하지 않습니다. 10년 넘게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제가 겪었던 상처와 아픔이 완전하게 치유되었는가 속 시원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함께 한 작가들 중에도 '완전히 치유된 사례'는 별로 없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삶에 지치고 힘든 이들이 자이언트를 찾아와도 제가 뭔가 도울 만한 일이 없을 것 같다 불안하기도 했었지요. 겉으로는 글도 쓰고 책도 쓰겠다 말하지만, 속으로는 답답하고 심란한 마음 좀 위로받고 싶다는 뜻이 감춰져 있었습니다.
"힘들어 죽겠어요."
"가족 때문에 마음이 아파요."
"사람들이 저를 못살게 굴어요."
"도무지 제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요."
"과거 상처와 트라우마 때문에 괴로워요."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 위와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마치 댐이 터진 것처럼 말이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고, 목소리가 떨리는 사람도 있고, 1초도 쉬지 않고 계속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한테 힘들고 괴로운 사연을 마구 쏟아내는 것은, 제가 그에 못지않은 시련과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상처가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이는 없습니다.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사람, 비슷한 경험 있는 사람, 먼저 겪은 사람, 잘 이겨낸 것처럼 보이는 사람. 이런 사람들한테 자기 속 마음을 털어놓는 법이지요.
글쓰기/책쓰기 관련 문제라면 얼마든지 해결해줄 자신이 있었습니다. 허나, 인생 문제는 다릅니다. 제가 무슨 도 터진 사람도 아니고 수행을 오래 한 사람도 아닌데, 감히 남의 인생에다 함부로 조언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바로 저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저들을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위로를 해주고 다시 힘을 내 살아가도록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이 질문이 제 삶을 성장시켰고 지금의 자이언트를 만들어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힘들어 죽겠어요!" 라는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바꿔야 합니다.
힘든 이유는 정확히 무엇인가?
해결 가능한 부분과 해결 불가능한 부분은 무엇인가?
그 중에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가족 때문에 힘들어요!" 이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으로 바꿔야 합니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가?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런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 통제권을 벗어나는 문제는 무엇인가?
지금 당장 무엇을 실행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저를 못살게 굴어요!" 이것도 질문으로 바꿔 보겠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못살게 구는가?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들을 방어할 수 있는가? 없다면, 무엇 때문인가?
그들을 바꿀 수 있는가? 나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 삶을 만드는 건 그들인가, 나인가?
정답을 찾자는 게 아닙니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해 보자는 얘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어딘가 정답이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무슨 답이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계속 생각함으로써 조금씩 나아진다는 사실이지요.
질문은 생각하게 만듭니다. 질문은 생각을 더 깊게 만듭니다. 질문은 내가 인간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해줍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렇게 머릿속에 질문이 가득한 상태에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사람도 만나면, 어느 새 자신에게 맞는 길이 열리게 마련입니다.
질문 못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지 알면 깜짝 놀랄 겁니다. 질문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모르면 물어야 하는데, 모르면 창피해 합니다. 물으면 답을 찾게 되는데, 묻기를 두려워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질문 없으면 답도 없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강연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바람에 자신이 마치 신이라도 된 듯 여기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할 수 있다!" 생각하는 태도는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 내려놓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상처와 아픔이 생기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저런 스트레스 하나도 없이 살 수 있다면, 그게 인공지능이지 사람이겠습니까. 기계를 통해 흘러나오는 글이 마음에 닿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존재인 것도 맞는 말이지만, 길가에 핀 잡초처럼 여리고 약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합니다. 나도 그럴 수 있고, 너도 그럴 수 있고, 세상도 그럴 수 있습니다. 터무니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어처구니 없이 뒤통수 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가 내 마음처럼 흘러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들 때문에 속상해 하고 힘들어 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지키는 데 몰입해야 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이들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서로의 삶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평가하고 판단하려 들지 말고, 일단 내 인생부터 옳게 챙기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지금껏 살면서 이보다 강력한 질문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질문 하나로 인생 바꾸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세상을 향해 있던 시선 열 개 중 아홉 개를 저 자신에게로 돌렸습니다. '남을 까는 시간' 대부분을 '나 자신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으로 바꾼 것이죠. 질문 하나 바꾼 덕분에 삶이 통째로 달라진 것입니다.
환경 오염? 한숨 때문입니다. 강도와 살인? 한숨 때문입니다. 사업 실패? 한숨 때문입니다. 가족 갈등? 한숨 때문입니다. 연애 실패? 한숨 때문입니다. 인간 관계? 한숨 때문입니다. 인생 잘 풀리지 않는다? 한숨 때문입니다.
인생 문제 90퍼센트는 한숨 때문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저는 이 주장을 굽힐 수 없습니다. 아니, 굽힐 이유가 없습니다. 감옥에 갔더니 한숨 쉬는 사람 천지였고요. 실패한 이들 만났더니 한숨 쉬지 않는 사람 찾기 힘들었습니다. 울면서 상담 청하는 사람과 대화해 보면 절반이 한숨입니다. 통화하면 수화기 너머 한숨이 제 귓속으로 파고듭니다.
"한숨 쉬면 복 나간다!"
이런 말이 있지요. 그런데, 사전 찾아 보면 이 말을 잘못된 속설이라고 적어놨습니다. 화가 납니다. 무책임한 사전입니다. 만약 누군가 바로 코앞에서 한숨을 계속 내쉰다고 상상해 보세요. 복이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생 폭망할 겁니다. 잘못된 속설 아닙니다. 맞고 옳고 타당하고 정답이고 참인 명제입니다. 한숨 쉬면 끝장입니다. 무슨 짓을 해도 인생 나아질 수 없습니다.
한숨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질문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왜 한숨을 쉬려고 하는 거지? 몸이 피곤한 때문인가? 스트레스 때문인가? 한숨 말고 다른 표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렇게 한숨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좋아질 수 있습니다. 와우! 제 인생 시크릿을 털어놓고야 말았네요! 한숨이 질문으로 바뀌는 순간,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하루 평균 5~10개의 근심과 걱정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실제로는 훨씬 많겠지만 말이죠. 5~10개의 한숨을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면, 바로 오늘이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될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