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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04. 2023

동창회, 로또 당첨보다 더 큰 행운

괴로움과 상처, 트라우마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면,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합니다. 딱히 기억나는 순간이 많지는 않아서 매번 만날 때마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처음 나누는 이야기인 것처럼 깔깔 웃으며 넘어갑니다.


중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면 주로 싸웠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고요. 고등학교 동창회를 하면, 과목별 선생님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합니다. 이야기 종류는 다양합니다만, 우리는 한결 같이 목을 뒤로 넘기며 숨이 넘어가듯 웃습니다. 그 시절 그 일이 참말로 웃긴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인생 절반을 살아온 우리에게는 그저 웃을 일로만 여겨지는 거겠지요.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이렇게 늘 웃습니다. 과거에 술을 많이 마셨을 때는 술 마시는 즐거움으로 동창회에 나갔는데, 이제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으면서도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친구들 만납니다. 일상에 찌들어 스트레스 받다가도 동창들 만나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이런 학창 시절 친구들 말고도 동창회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안양 교도소에서 같은 방을 썼던 H, 의정부 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은 K와 M. 저는 지금도 가끔 이들을 만나거나 통화를 합니다. 세 사람 모두 다시 살아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어쩌다 감옥에 가게 되었지만, 그 실패를 딛고 인생의 오점을 지우기 위해 노력중인 '친구'들입니다.


H는 나이가 제법 많습니다. 입만 뗐다 하면 자신이 젊었을 때 사업하면서 승승장구했던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그 이야기를 할 때 H의 표정은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아이로 바뀝니다. 어찌나 환하게 웃는지 같은 남자가 봐도 참 매력적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10분 정도만 지나면,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이야기로 접어듭니다. 표정은 심각해지고 목소리는 침울해지고 태도도 점점 거칠게 바뀝니다. 때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자기가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불쌍하고 안됐습니다.


K와 M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렸을 적 부모로부터 학대 당하는 바람에 악마가 되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 물건을 잠깐 만지고 놀다가 도둑놈 취급을 받았고, 그때 선생님으로부터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듣기도 했답니다. 공부 못한다고 선생님한테 두들겨 맞고, 거짓말했다고 아버지한테 몰매를 맞고, 그래서 때리고 맞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고도 합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세 사람 모두 만날 때마다 통화할 때마다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 마디가 끝나고 나면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전부 다 예상 가능할 정도입니다. 이미 들었다고 말해도 무조건 계속합니다. 열 번도 더 들었는데 잘 좀 들어 보라고 합니다. 한이 맺혔다는 뜻이지요. 속이 덜 풀렸다는 의미입니다.


학창 시절 때 친구들 만나 옛 이야기 나누며 깔깔 웃는 것은 추억이며 행복이고 우정이며 아련한 기쁨이빈다. K와 H와 M이 하는 이야기는 추억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지우고 싶어 하는 바로 그 과거 속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괴로움 또는 상처. 이것들은 모두 과거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과거는 내 머릿속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의 시간일 뿐 지금 이 순간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는데, 여전히 스무 살 서른 살 시절에 머물고 있는 셈이죠. '지금'을 전혀 살고 있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지금에 쏟아부어야 합니다. 사람이니까, 과거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잠시 떠올리는 것과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만약 누군가 삶이 5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어떨까요? 지난 수십 년 인생의 상처만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지금부터 남은 5년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옳을까요? 인생에서 중요한 시간은 지나간 과거가 아닙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시간은 항상 현재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트라우마'라는 말이 있지요. 사전적 정의를 한 번 살펴볼까요.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 심각한 질병 혹은 자신이나 타인의 신체적(물리적) 위협이 되는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후 겪는 심리적 외상』


많은 사람들이 툭하면 '트라우마'를 말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트라우마'라는 이름을 붙여 심각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심각하고 무거운 사건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 정도 되어야 '트라우마'라고 말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사람은 자신이 겪은 일을 과장해서 표현하게 마련입니다. 특히 고생하거나 어렵고 힘든 과정 겪었을 때 더 부풀려 생각하고 말하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나 이렇게 고생했다, 나 이렇게 힘들었다 강조하고 외치고 그에 따른 보상과 보답을 받길 바라는 심리입니다.


괴로움과 상처, 그리고 단어. 모두가 나의 선택입니다. 자꾸만 지난 일을 떠올리며 괴로워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주어진 일에 집중하면서 내 인생 새롭게 만들어갈 것인가. 죽을 만큼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동정을 유발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음을 떳떳하고 당당하게 보여줄 것인가. 모두가 나의 선택입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괴로움과 상처를 선택하면 계속 아플 수밖에 없고요. 오늘과 지금을 선택하면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소중한 인생을 괴로움과 상처 속에 파묻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요.


물론, 지금 당장 생각을 바꾼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옛날 생각이 떠오르고, 또 불쑥불쑥 괴롭고 힘든 순간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우울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력하는 태도 자체가 중요합니다. 어제까지는 하루에 열 번 괴로웠다면, 오늘은 아홉 번만 괴로울 수 있습니다. 이런 걸 성장 또는 변화라고 하지요.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 막노동꾼, 암 환자. 현재 진행형인 수식어도 있지만, 모두 저의 지난 일들입니다. 상처이고 아픔입니다. 괴로움 그 자체입니다. 제가 이런 것들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면 아직도 인생 개판으로 살고 있겠지요. 지금에 집중한 덕분에 기적 같은 변화를 일궈냈습니다. 로또 당첨보다 더 큰 행운은 어떤 생각을 선택하는가 하는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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