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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Sep 30. 2023

판사가 싫은데, 평생 판사처럼 살았다

내 인생에 신경 쓰기


판사를 싫어합니다. 개인적인 감정입니다.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해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때 기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담당 판사의 눈빛과 말투. 처음부터 저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였지요. 그 사람, 틀림 없이 공부 많이 했고 능력도 좋은 사람일 겁니다. 하지만, '피고인'을 '죄수'로 단정짓고 재판하는 모든 과정을 저는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죄 지으면, 자신이 지은 죄보다 훨씬 더 억울하고 분한 상황을 매 순간 만나야 합니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은 잘도 피해가는 것이 법이지만, 돈 없고 힘 없는 사람은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법이기도 합니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당시 원고가 제출한 통장 내역은 누가 봐도 A4용지에 엑셀로 그린 임의 작성본이었음에도 아무런 제한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돈을 빌려 갚지 않았다는 '범죄사실' 하나만으로, 제가 말하는 그 어떤 정당한 요구나 질의도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죄를 지었으니 입을 다물라! 죄를 지었으니 가만히 있어라! 죄를 지었으니 죗값을 치뤄라! 할 말이 아무리 많아도, 당신은 죄인이니 그냥 입 다물고 판결 대로 하라! 전부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지요. 아랫입술을 얼마나 씹었던지 피가 질질 흘러내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죄를 지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법의 심판을 받으면서도, 저는 판사가 미웠습니다.


구입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스마트폰에 이상이 생겨 서비스 센터를 찾았습니다. 담당 직원의 실수로 세 번이나 방문했는데도 제대로 수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참고 참다가 결국은 폭발했습니다. "아니, 삼성 전자 서비스 센터가 어찌 고객한테 이럽니까!"


동네 김밥집 앞에 나이 많은 할머니가 쭈그리고 앉아 나물을 팔고 있습니다. 김밥집 사장이 뛰쳐나와 왜 남의 식당 앞에서 장사를 하냐며 소리를 지릅니다. 아무리 장사에 방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머리 허옇고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한테 그렇게까지 소리를 지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쩜 사람이 저리도 모질고 못됐냐고, 속으로 질타했지요.


화면을 켜지 않는 수강생, 과제를 엉뚱하게 제출하는 사람들, 골백 번도 더 강조한 내용을 다시 묻는 수강생, 남의 출간 소식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자기 책 홍보하는 데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 저는 그들을 보면서 "사람이 어찌 저럴 수 있느냐"며 비난했습니다.


판사를 싫어하면서, 저는 평생 판사로 살아왔습니다. 정의를 지키고 우주를 구하겠다는 듯, 매번 사람들을 평가하고 잣대를 들이대며 옳고 그름을 따졌습니다. 마치 내 생각이 법전이라도 된 듯, 내가 옳다는 전제 하에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비난하기 일쑤였지요.


그들은 '잘못된'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 나름의 방식과 철학과 가치관 대로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내 눈에 거슬린다 해서 그들이 잘못된 것이고, 내 마음에 든다 해서 그들이 옳은 건 아니지요. 모두가 각자의 모습과 눈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내 눈에 파랑으로 보이는 것들이 그들 눈에는 빨강으로 보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와 뜻이 맞으면 '옳은' 사람들이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잘못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저 여의도에 있는 인간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삶을, 제가 살고 있었던 겁니다. 토 나올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합니다. 쉴 새가 없습니다. 그 이야기 중 대부분이 험담이고 욕이고 비난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 그들이 먼저 잘못했다." 혹은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그들이 더 잘못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을 비난하고 나의 정당성을 주장함으로써 내 분노와 짜증을 합리화 시키는 것이죠.


차분하게 앉아 글을 써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감정보다 팩트 위주로 글을 적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옳고 그들이 틀렸다는 건 진실이 아니라 그저 나의 감정일 뿐이란 사실을요. 누군가 일방적으로 잘못한 게 아니라 그들이나 나나 거기서 거기란 사실을 말입니다. 백 번 양보해서 그들이 틀렸고 내가 옳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지구를 구할 일은 아니란 사실을, 글을 써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판사로 사는 건' 별로 재미 없습니다. 매 순간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고, 내가 옳고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려 애쓰고, 그 과정에서 자꾸만 화가 나고 속이 상하고, 결국 지치고 피곤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나도 장단점 있고, 다른 사람들도 강점과 약점 있습니다. 내가 완전한 존재가 아님에도 자꾸만 세상과 타인을 심판하려는 속성은 거짓과 위선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피곤합니다. 나는 그들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오직 내 마음이고 나 자신입니다. 관심과 정성은 그들에게 쏟을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쏟아부어야 합니다.


바꿀 수 없는 그들에게 온통 신경을 쓰며 분노와 짜증을 일으키느라, 정작 나 자신이 집중해야 할 일들에 소홀하게 되는 것이죠. 정리하면, 내 할 일은 똑바로 챙기지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 간섭하고 그들을 비난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과연 내가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만난, 제가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따르는 다산 정약용과 토니 라빈스에게도 나름의 문제와 고민이 있었지요.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들을 보면, 오직 자신에게 집중하고 남을 도우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비판하고 옳고 그름을 판결하려는 속성 대신에, 어떻게든 타인의 인생에 도움을 주려는 태도로 살았다는 얘기입니다.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차선을 마구 바꾸며 내 앞에 끼어드는 차를 만났을 때, 우리는 즉흥적으로 '판사'가 되고 맙니다. "운전을 왜 저 따위로 하는 거야!" 흥분하고 화를 내기 일쑤죠. 이런 분노와 짜증이 과연 나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단 한 가지라도 이로운 점이 있다면 생각을 달리 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은 점이 없습니다. 내 감정을 망칠 뿐이죠.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매일 매 순간 타인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며 온갖 복잡한 감정에 얽혀 스스로를 힘들게 합니다. 이제는 이런 습성을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성공이나 행복 등 우리가 추구하는 어떤 가치에도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판결 내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담겨 있지 않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갈 갈을 가야 합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 휘둘릴 게 아니라, 어떻게든 그들을 돕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공자님 말씀 같지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큰 실패를 겪은 후부터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남을 돕는 척"하며 살았거든요. 이후로 제 삶이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 설명이 불가할 정도입니다.


타인의 말과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는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은 나의 말과 행동입니다.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가. 내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없는가. 내 존재 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그 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 다른 사람 옳은가 그른다 따질 시간에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저는 평생을 '판사'처럼 남의 말과 행동을 두고 맞다 틀렸다 옳다 그르다 평가하고 판단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얻은 건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저의 세상이 다 무너지고 말았지요.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후회해도 소용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고 남은 인생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뿐이었지요.


제가 찾은 실패 원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판사처럼 사는 태도'였습니다. 제 관심은 모조리 '틀린 그림 찾기'에만 가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무엇인 문제이고, 저 사람은 말투가 어떻고, 저 사람은 분위기를 망치고, 저 사람은 행실이 어떻고...... 허구헌날 다른 사람 평가하고 점수 매기는 데에만 급급해서 제 인생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이제 인생 절반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보기에 옳다고 해서 옳은 건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 틀렸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지요. 그건 그저 내가 보는 방식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이는 것이지요.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삐딱한 사람 눈에는 세상이 삐딱하게 보입니다. 내가 아무리 간섭하고 화 내고 발버둥쳐도 그의 눈에 비치는 삐딱한 세상을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속만 터질 뿐이죠.


이럴 때 현명하고 지혜로운 태도는, 그의 삐딱한 세상을 인정해주는 겁니다. 그의 삶을, 그의 사고방식을, 그의 말과 행동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바라보며 선을 그어야 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라는 게 아닙니다.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박에 선을 긋도 돌아서 내 인생에 집중해야 합니다. 인생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 해야 할 일은 다 했습니까? 내일은 또 무엇을 할 겁니까? 내일은 또 누구를 도울 겁니까? 내일은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도울 건가요? 공자님 말씀처럼 들릴 거라는 걸 알지만, 이 공자님 말씀을 매일 실천하면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좋아진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둘 있습니다. 다른 사람 바꾸려는 사람과 다른 사람한테 휘둘리는 사람입니다. 내 인생 챙깁시다. 중심 잡고 인생 반듯하게 올려놓고 나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풍요롭습니다. 평화롭습니다. 당연히 행복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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