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자극과 휴식, 노력과 게으름 사이의 정확한 균형을 제공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
내가 언제부터 걷기를 했던가.
아이 둘 낳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소위 말하는 워킹맘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는 욕심이 스스로를 덜 돌보게 만들었다. 늘 피곤한 거야 둘째치고 어느 순간 주기적으로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발아래 있는 가방을 주우려다 삐끗, 아이를 안으려다 삐끗한 허리는 통증주사를 맞기 전까지 움직일 수 없게 아팠다. 가까운 내과에서는 허리디스크 조짐이 심하게 보이니 살을 빼고 운동을 하지 않음 큰 일어난다고 했다. 살 빼는 것이 그리 쉬웠다면 벌써 뺐겠지 중얼거리면서 과연 내가 매일 할 수 있는 운동이 뭐 있을까 찾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걷기"였다.
귀차니즘과 피곤을 핑계로 침대와 한 몸인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던 것은 연례행사처럼 병원에 가서 통증주사를 맞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싫었던 것은 살 빼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이었다는 것은 혼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 년 365일 다이어트를 결심했으나 실패를 거듭하고 있던 나에게 의사의 조언은 치명적이었다. 몰라서 못 빼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허리 아플 때마다 듣는 살 빼라는 소리가 아픈 허리보다 더 아프게 다가왔다. 요통보다 심통(心痛)이 컸기에 허리를 위한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네 한 바퀴를 시작으로 조금씩 늘려갔다. 안 나갈 핑계가 생기면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가기 싫어지기에 추워도 더워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냥 걸었다. 퇴근 시간을 이용하여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정도 걸리는 길을 매일 걷게 되었다. 꾀가 나서 중간에 따릉이를 애용했다가도 다시 허리가 아파져서걸었다. 시작은 허리였지만 어느새 "걷기"는 "일기"와 같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속도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며 주변을 둘러볼 여유와 하늘을 보면서 멍 때리는 등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 되었다.
걷기 시작할 때는 여러 감정들이 폭풍우처럼 몰아닥치다가도 다리가 무감각해질 때 되면 무상무념에 젖어든다. 사는 것이 별거 없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내려놓는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세상의 점 같은 존재임을 인식하면서 '뭣이 중한 디'를 마음으로 외친다. 그러면서 걷는 것에 집중한다. 어느 순간 '나'만 존재하게 되는 순간을 만나면 홀가분해진다. 삶의 무게가 깃털 같아진다.
우울해하시는 어머니께도 "걷기"를 강권하였다. 다른 운동보다 밖에서 무조건 1시간 이상 걸으시라고 했고 동기부여를 위해 캐시워크를 깔아드렸다. 물론 포인트로 치킨을 먹게 되는 것은 우리 딸들이었지만 1년이 넘게 걸으시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시는 것을 보았다. 이제 하루 2만 보도 별거 아니라 하신다. 좋아하는 선생님께도 권했다. 마치 걷기 전도사가 된 듯 말이다. 선생님 역시 이제 나보다 더 많이 걸으신다. 걷기가 너무 좋아지셨다면서. 가끔은 함께 걷는다. 걷는 것을 함께 즐긴다.
이렇게 걷기의 장점을 체화하고 주변에 강권하면서도 꾸준히 걷는 것에 아직도 노력이 필요하다. 침대의 안락함과 쇼츠의 끈질긴 구애를 떨쳐내고 나서는 것에강력한 의지도 필요하다. 만보 이상 걷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하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면 가능할지도) 그래도 매일 걸을 수 있음이 행복하게 다가온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시간, 우주의 작은 점과 같은 존재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하고 또렷한 점이 되는 시간을 사랑한다. 누군가는 묻는다. 매일 그렇게 걸으면 살이 빠지냐고. 그러면 웃으면서 답한다. 묻지 말고 나를 보라고, 빠진 거 같아 보이냐고. 그러면 위아래로 훑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다시 묻는다. 왜 걷냐고... 걸어보면 안다고 답한다. 정말 꾸준히 6개월 이상 걸어보면 걷기에 중독된다. 왜 걸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난 많은 사람들이 걸었으면 좋겠다. 꾸준하게 그리고 조금 지칠 정도로. 그러다 보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리라 믿는다. 모두가 걷기를! 삶의 균형을 온몸으로 느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