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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Mar 01. 2023

반갑다, 친구야.

나, 지금 떨고 있냐.

  새 교실에서 아이들과의 첫 만남.


  떨리는가? 아~~ 떨린다. 뭐, 물론 아이들도 떨릴 것이다. 무섭기로 소문난 선생님의 교실에 들어서는 그 순간이 어찌 떨리지 않겠는가. 저학년 때 만났거나 교실 밖에서 나를 보았던 아이들은 더 많이 떨리리라. 내일 아침 장면이 예상된다. 고개를 푹 숙이고 오는 아이, 한숨을 쉬면서 들어오는 아이, 이제 일 년 죽었구나 하면서 중얼거리면서 들어오는 아이…… 아, 물론 밝고 경쾌하게 눈을 마주치면서 인사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무작정 선생님을 좋아해주는 저학년을 맡았다가 고학년 교실에서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내면서 들어오는 아이의 모습은 사실 상처였다. 시작도 전에 김 빠지는 느낌도 있고 약간은 억울한 마음에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보다 훨씬 전에는 울컥하기도 했다. 아직 뭘 하지도 않았는데 하면서.

예의, 배려, 존중 등 생활질서나 태도면에서 내가 여지가 없기는 하다. 버릇없는 것을 용납해주지 않기도 한다. 우리 반은 인사를 가장 잘하는 반으로 어디 가나 예의바르다는 칭찬을 받는 것도 어쩌면 내가 강조하는 부분이라서 그럴지 모른다. 학기 말이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어딘가 호구 같은 나를 알고, 어딘가 빈구멍이 많은 나를 알며, 예의를 갖추어서 자기주장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충분히 존중해 주는 나를 알아서 많이 편해진다.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끼고 고민을 터놓는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반에서 1/4은 끝까지 겁을 먹고 어려워하기만 한다. 그런 아이는 졸업 이후 볼 수 없다. 그래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이를 먹어서도 어느 날 툭하고 찾아와서 사는 이야기를 하다 간다. 중학생부터 20대 후반의 다양한 나잇대의 제자들은 언제나 봐도 반갑다. 아이 때의 모습을 보아서 늘 아이 같으면서 한 명의 어른이 되어 사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 행복하다. 그들로부터 많이 배운다. 내가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알게 되며 과거 아이들에게 저지른 나의 만행(지나친 장난)에 반성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찾아오는 녀석들 덕분에 첫날 두려움에 떨거나 인상을 찌푸리며 들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 이상은 상처가 되지 않는다. 따뜻한 마음을 갖고 찾아오는 녀석들 덕분에 처음에 나를 버거워하는 아이들이지만 나중에는 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첫인상, 중요하다. 그러나 소문은 내가 어찌할 수 없고 나에 대한 오해도 어쩔 수 없다. 날카로워 보이는 나의 인상도 어쩔 수 없다. 그러면서도 유치하게 나는 너희의 첫인상으로 너희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사실 신출내기 교사일 때 선배교사한테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아이는 교실에 들어와서 약 10분 정도면 교사를 다 파악한다고 그러니까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1년이 편한다고 한다. 10분이면 진짜 짧은 시간인데 어떻게 파악을 할 수 있을까, 아이라서 본능적인 부분이 커서 그런가 했다. 경력이 쌓이다 보니 이제 알겠다. 아이는 나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리를 마음껏 뻗을 수 있는가, 무릎정도는 구부려야 하는가, 아니면 정자세로 바르게 앉아야 하는가를 재보는 것이다. 어디까지 수용되고 어디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기싸움이라 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기싸움에서 지면 안된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여유롭다. 좀 떨린다. 반갑게 인사해도 약간 긴장되어 있는 아이들을 보면 괜히 안쓰럽기까지 하다. 어떤 면에서는 무섭다는 선입견에 첫날부터 잔소리 없이 예의 있게 행동하고자 하고 날카로운 이빨이나 손톱 없는 순한 양의 모습으로 들어오는 것이 편한 부분도 있다. 굳이 단호하게 말하지 않아도 잘 따라주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그거대로 힘들다. 아이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깨고 마음을 열고 나누기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휴. 누구에게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첫 만남을 생각하면 떨린다. 아이들을 어떻게 맞이해야 긴장감이 좀 누그러질까 고민하고 어떻게 시작을 해야 서로 마음을 빨리 열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래서 개학 전날과 개학 당일이 힘든가 보다. 나도 그런데 아이들도 그렇겠지 한다. 일 년을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낼 친구들을 내일 만난다. 어느새 나는 가르친다는 표현보다 한 공간에서 만나 함께 지낸다는 표현을 좋아하게 되었다. 가르치는 교사의 위치에서가 아니라 함께 지낼 새 식구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린다. 어떤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벌써 궁금하고 설렌다. 좋은 일도 많겠지만 같이 헤쳐가야 하는 일도 많겠지. 그러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알차게 일 년이라는 시간을 쌓아가겠지 한다. 교사도 떨리다는 것을 알면 교실에 들어서는 아이들도 덜 떨릴까. 그래서인가. 글을 쓰는 내내 난 나에게 묻는다.


 “나, 지금 떨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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