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를 엄청 엄하고 단호한 사람으로 본다. 물론 육아를 하다 보니 '일관성'과 '단호함'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생각은 든다. 그럼에도 은근히 중도주의자에 좋은 것이 다 좋은 거지 하는 어설픈 평화주의자인 나는 일관성 있는 육아는 나름 어렵지 않은데 단호한 것은 늘 어렵다. 애교 가득한 몸짓에 넘어가고, 연민을 건드리는 애절한 말투에 넘어간다. 물론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단서는 꼭 붙인다.
"이번 한 번뿐이야. 다음에는 꼭 지켜야 해."
누가 말했던가.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습관처럼 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쉽다고. 연인관계도 처음 손잡는 것이 어려울 뿐 그다음은 일사천리라고 하는데 한 번이 두 번 되긴 쉽다. 한없이 흔들리는 것은 단순히 아이의 모습 때문이 아니다. 부모 된 입장으로 불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만 휴대폰이 없을까, 용돈이 적을까, 브랜드 옷을 안 입어서 눈치 보일까, SNS를 하지 않아서 소통하지 못할까 등 여러 이유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되는 원인 제공자가 될까 봐 바람 앞에 놓여있는 촛불처럼 불안하다. 부모의 소신 때문에 아이가 소외당할까 두렵기까지 하다. 그래서 단호하지 못한 부모들이 이해가 된다. 되려 그 속속들이를 너무 잘 이해하기에 단호함을 강조하게 된다.
학교에서 징징거리거나 고집을 부리는 아이들을 만나 문제가 생기면 부모 상담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모에게 단호하냐고 묻는다. 어리석었다. 단호함 역시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많은 부모들이 본인은 단호하다고 한다. 한번 안 되는 것은 아이가 울어도 허용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단호한 모습을 보이고 나서 속상해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안아주고 달래주게 된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단호함과 달랐다. 한번 안된다고 하는 것은 끝까지 안 들어주는 것도 단호함은 맞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가는 단호함에 대해 생각했다. 규칙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게 하는 것은 단호함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를 지키기 위해 아이가 풀이 죽어도, 좌절하고 움추러들었어도, 달래주지 않아야 한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 허용해주지도 않아야 한다.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 주되 그것은 부모가 공감하고 달래줄 문제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 풀어내야 하는 것으로 인지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규칙으로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납득하되 부모와 협상할 여지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육아도 트렌드가 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고 그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하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성행했다. 그리고 지금은 과유불급의 상태이다. 아이의 마음을 존중하고 공감해 주지만 아이가 주변에 끼치는 피해와 부모를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 주는 상처는 언급하지 않는다. 아이의 마음 읽어주기에 바쁘다. 비행기 좌석을 차는 뒤에 있는 아이에게 조심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시간 동안 끊임없이 등을 차고 찡얼거리는데 옆에 앉아있던 부모는 되려 아이의 힘듦만 알아주고 달래주는 것을 보았다. 이 상황에서 부모는 본인들이 단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단호하게 아이가 비행기 좌석에 벨트를 하게 했기 때문이다. 다만 불편해하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느냐고 다른 사람이 입는 피해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단호하게 지킬 것을 지키게 했는데 그것을 힘들어하는 아이의 마음은 읽어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데 왜 달래야 하는 것인가. 우리 딸들이 어렸을 때부터 정해진 좌석에 앉아 벨트를 매는 것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였고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단호하게 제지했다. 물론 나보다 더한 남편이 있어서 가능했겠지만 이런 우리 부부를 보면서 지독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부모가 작고 어린 자식들 앞에서 단호하게 행동하고 말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처음이 어려울 뿐이다. 지켜야 할 일을 당연히 지키는 것, 여러 사람들과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조절하게 돕는 것이 단호한 것이 아닐까. 아이가 간절하게 애원할 때 다른 방법을 찾아주거나 말로 설득하면서 달래면 이미 흔들린 것이다. 틈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아이가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또한 아이행동에 대해 나름의 변명을 할 때 들어주는 것도 단호함을 흔들리게 한다. 상황에 대해 자꾸 변명거리를 찾게 만들고 이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이들에게 이유를 묻지 않는다. 사정을 알면 마음이 약해지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유 없는 무덤이 없다는 것을 상기한다. 어떤 이유나 사정이 있어도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 짚고, 인정하길 요구한다. 인정하고 나서 해결하고 나서 물어도 늦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와 끈질기게 씨름을 하고 있는가. 작은 일마저 협상을 해야 하고 설득을 해야 하는가. 은근히 부모의 말을 어기며 화를 내도 그 순간이 지나면 같은 모습을 보이는가. 그렇다면 지금 본인의 단호함을 확인해봐야 할 때다. 지지부진하게 싸움이 길어지거나 혼내기보다 감정적으로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있다는 것은 뭔가 단호하지 못한 행동이 아이에게 자꾸 여지를 주고 있어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단호하지 못해 생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부모는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며 단호함의 칼로 끊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