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타고난 재주 없이도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다.

by 보름달

나는 평범하다 못해 타고난 재주가 없다. 머리가 뛰어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외모도 당연히 연예인 급이 아니다. 미적감각도 없다. 예체능은 젬병이다. 재주 없는 것도 참 재주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의 지적에도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되려 누군가 칭찬하면 칭찬하는 그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 있길래 칭찬하지 하면서 튕겨냈다. 대신 엄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서 시험지에 답을 못 쓰는 것이 싫어 공부했고 다른 세상에 빠지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딸들을 키우면서 또 반 아이들을 만나면서 재능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일명 '엄친딸'과 '엄친아'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했다. 무심한 엄마이기에 혹시 우리 아이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놓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근데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봐도 평범하다. 말이 빠르고 발음이 정확한 큰 딸에게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외모가 안되는데....." 했고 운동을 쪼금 잘하는 둘째를 운동시키라 했을 때도 "글쎄요. 그 정도는 아닌데" 했다. 뭔가 특출 나게 보이지 않음을 객관적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했으나 이런 대답에 다들 나를 꿈을 꺾는 엄마라 했다. 만약 딸들이 정말 원한다면 밀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크게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나 역시 가볍게 접었는지 모른다.


욕심이 많은 나는 타고난 재능과 외모가 없는 대신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냥 주어진 순간순간 남들보다 더 노력했다. 교대 가서 피아노시험을 볼 때도 매일 연습했고 학원을 등록해서 배우기도 했으며, 악보 보고 음을 정확히 읽어내기 위해 매일 피아노 앞에 앉아 같은 음을 억지로 외웠다. 못하는 높이뛰기를 위해서도 기본을 하고자 일찍 학교에 가서 뛰었다. 글씨를 못 쓰기에 판서연습도 틈만 나면 했다. 숙제로 내야 하는 미술분야는 언니찬스를 썼지만 직접 평가받아야 하는 부분을 그럴 수 없었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못하니까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만 본다면 참담했다. 예체능 쪽에서는 남들에 비해 두세 배의 노력을 들이고도 B 받으면 잘 받은 것이고 C 가 자주 나오기도 했다. 상대평가여서 노력과 결과가 비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재능을 가진 사람은 적은 노력으로 나보다 훌륭한 결과를 낸다는 것을 알았다. 연습을 안 하고 편하게 C를 받았으면 어떨까 했지만 평가지나 평가자 앞에서 전혀 준비 안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스스로가 부끄러워 용납이 되지 않았다. 고루 잘해야 하는 교대는 참 내게 맞지 않았지만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게 하고 노력해도 안될 수 있음을 체감할 수 있게 했다. 다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교대를 졸업하고 학교에 오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마주치는 현상들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래서 또 공부하고 공부했다.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 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토대로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교육적인 방법, 부모상담 방법, 아동 심리 관련 등등 공부할 것이 참 많았다. 공부하고 현실에 적용해 보면서 조금씩 익숙해졌다. 멈춘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썼고 애쓰고 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지만 아니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 부족함이 열등감이 되도록 두지 않았다. 채우면서 빈틈을 찾아내 또 채워가고 있다.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지금 피하고 싶은 교사가 되지 않은 것, 조금씩 어른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 역시 노력의 결과이다. 그러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혼자 생각한다.


딸들의 평범함을 보면서, 보통의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더 이상 안쓰럽지 않다. 이런 나의 마음에 확실한 획을 그어준 것은 둘째 딸이었다.


"엄마도 예뻐보고 싶다. 인어공주 노래 부른 다니엘 부럽지 않아? 엄만 가끔 부럽던데..."

"그래? 난 안 부러워. 그들은 그들의 세상을 사는 것이고 나는 내 세상 살면 되는 거지 뭐."


그렇다.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들을 쳐다만 보고 지금 내가 가진 평범함에 열등감을 갖지 않고자 한다. 그냥 주어진 소소함을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부족하면 채우면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재능을 가진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각자의 몫이 있고 각자의 특별함이 있음을 믿고 천천히 나아가자고. 우린 각자의 세상을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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