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함

많이 보고, 듣고 배우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를 길러준다.

by 보름달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겸손과 호기심을 가르쳐야 한다. 여기서 겸손이란 본능으로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것이고,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는 것이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겸손하면 모든 것에 대해 내 견해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고, 항상 내 견해에 옹호할 준비를 해야 할 필요도 없어 마음이 편하다. -FACTFULNESS 중에서


"FACTFULNESS"는 얼마 전, <함께 읽기>로 읽은 책인데 제목에서 주는 압박과 달리 잘 읽히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우선 엄청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자는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 속에는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를 다루고 있다. 세상이 점점 비극적이며 힘들어진다고 믿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별히 어느 부분이 인상적이다라고 말하기 힘들 만큼 전반적으로 다 좋았는데 그중 마지막 챕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특히 작가가 말하는 '겸손함'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겸손함'과 비교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길러주어야 하는 진짜 '겸손함'은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겸손'을 강조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을 통해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다. 요즘은 조금 변하기는 했어도 누군가의 칭찬을 들었을 때 우리나라 정서상, 사람들은 기뻐하면서도 어색해하고 일률적인 답을 한다.


"에이, 뭘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아닙니다. 잘 봐주셔서 그렇지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아이들도 그런 경우가 많다. 굉장히 쑥스러워한다. 칭찬을 받았을 때 자기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는 말을 하는 것은 자만하기 때문이라 여긴다. 자신을 낮추어야 하고 또 절제된 표현을 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가르친다.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은 칭찬받은 대상이 자기를 인정하는 말을 하는 것을 건방지게 보고 잘난 척하는 것으로 여긴다. 겸손하지 않다면서 인상을 찌푸린다. 자기 PR 시대라서 거리낌 없이 인정하는 대답을 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는데 이런 사람은 정말 겸손하지 않은 것인가. 반면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말로 자기를 낮추면 정말 겸손한 것인지 눈을 크게 뜨고 봐야 한다.


가르치다 보면 말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 겸손한 자세를 지니지 못한 것이 느껴지는 아이들이 있다. 이 녀석들은 다 안다는 표정으로 앉아있다. 지루함이 그득하거나 자신감을 넘어선 자만이 엿보인다. 선행학습의 부작용이겠지 하면서도 불편하다. 그들은 그런 태도로 인해 본인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도 이미 마음을 닫고 귀를 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교사의 어떤 말에도 의미 부여하지 않기에 아는 그대로, 만들어진 틀 그대로 유지가 될지언정 넓어지지 않는다. 눈을 반짝이기보다, 호기심을 보이기보다 다 알고 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돋보이게 발표하길 원한다. 아니면 다 아는데 또 배워야 하냐며 귀찮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시작하면 어려운 내용이 나온다고 달라질까. 가장 큰 문제는 다 안다고 생각하기에 자기의 능력과 한계를 파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인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른도 그렇다.


나 역시 결코 겸손한 사람은 아니었음을 요즘 깨닫는다. 골치 아픈 것을 싫어하기에 내 세계에 머물렀고 더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문학책과 소설책을 읽으면서 사람 사는 이야기와 숨 막힐 듯한 문장력에 감탄은 했지만 배경에 대해 역사에 대해 알고자 하지는 않았다. 지식의 한계를 느낄 기회가 없었다. 요즘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는가 느낀다. 큰 딸은 "총 균쇠"를 읽고 나서 읽기 전에 자기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으나 읽고 나니 한낱 미물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도끼가 내리찍듯이 아이도 나도 가진 그릇을 파훼되는 경험과 함께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었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인문학자, 경제학자, 철학자들을 만나면 정말이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공부를 멈출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데 있어 반박하지 않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부분도 생겼다. 물론 그것이 교육과 관련된 내용일 때는 조금의 망설임이 있다. 나만의 교육관이 있고 교육방법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상대의 방법도 틀리지 않음을 인정하게 된다. 의지로 갖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겸손함'이란 옷을 입게 된 것은 맞다.


가르치다 보면 똘똘한데 눈이 빛나는 녀석들이 있다. 알지만 다시 한번 새겨듣거나 생각해 보는 눈치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한번 더 노력한다. 경청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늘 감안하여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한다. 멋지다. 어린데 벌써 그런 겸손함을 갖추었다니 어찌 더 많이 성장하지 않으랴. 본인의 능력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냉정하게 판단하기에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그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반면 공부를 잘하고 말도 잘하지만 거기서 이미 닫아버린 아이들도 있다. 지금이 그들의 정점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주저앉기는 너무 이르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감 없이 말한다. 지금 아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세계는 넓고 배울 것은 너무 많아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어쩜 그 말은 아이들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수도 있다.


칭찬에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 내 노력이 들어있고, 진심이 있다면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외국사람들처럼 "Thank you." 나 "I was proud of that."으로 받는다고 건방진 것이 절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 칭찬을 하면 "그게 나예요!"라고 답한다고 한다. 쑥스러워할 필요도 없고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배움에 있어서는 '겸손함'을 갖추어야 한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정확하게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인식하고 내가 아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가져야 할 '겸손함'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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