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음을 알면 감사하다.

by 보름달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 <부당거래> 배우 류승범의 찰떡같은 대사 한마디가 마음에 울린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저 대사에 무릎을 쳤을 것이다. 한 사람이 베푸는 호의를 당연하게 받는 자는 누구일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그 상대보다 능력이 넘치고 권위가 있어서 베푸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반대로 호의를 받는 사람은 능력이 부족하거나 상황이 어려워서 받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고마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는가. 하나의 대사에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은 저 말이 비리검사로 나온 배우 류승범이 한 대사라 권위 있는 사람의 오만한 마음을 나타낸다고도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살다 보면 늘 있는 사람만이 베푸는 것은 아니다. 그냥 마음가짐의 문제인 거 같다. 누군가에 대한 연민으로 혹은 선한 마음으로 돕고자 하고 배려하고자 하면 그게 호의인 것이다.


호의 또는 배려란 다른 사람을 위해 조금 더하는 것이거나 원하는 바를 조금 덜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늘 베풀며 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언제나 손해를 보면서도 조금 더 했다. 그게 마음 편했고, 그렇게 함으로 상대는 조금은 편하리라 스스로 위안했다. 사실 대가를 바라거나 인사를 원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다지 억울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내가 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그 일을 열심히 하는 내게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새삼 억울해졌다. 무엇보다 나의 호의를 자신의 권리로 누리고 있는 그들에게 화가 났다. 지치거나 힘들어하면 '누가 하랬어?' 하면서 어이없어했다. 질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난 나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에게는 이미 베풀어진 호의를 걷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베풀지는 않기로 다짐하고 또 했다.


아이들도 그렇다. 소소한 배려를 하면서 학교에서 최대한 편하게 지내게 해 주려는 많은 노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녀석들이 있다. '선생님이라면 당연히'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아마 아직 아이라서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짚어주지 않으면 계속 모를 것 같았다. 어쩜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챙겨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고마움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런 아이는 뭐가 고마울까. 돈으로 뭔가 사주어야 고마울까. 아니면 어버이날, 스승의 날 같은 기념일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인사를 할까. 꼭 감사의 인사를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을 위해 상대가 사사로이 신경 쓰고 있고, 배려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마운 마음이 있으면 상대가 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보게 된다. 상대의 노력과 마음이 보이면 주변에 있는 소소한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음을 상대에게 전함으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 상대에게 끊임없이 배려하는 것은 결국 지친다. 누가 그러라고 했냐고 반문하면 할 말이 없지만 권리처럼 당당하게 받는 모습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의 느낌이다. 만약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는 아이를 그냥 둔다면 상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은 저버린 채 권리만 내세우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도 있다. 베풀기보다 주변 모두가 자기를 위해 애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생긴다. 공주병도 나르시시스트도 그런 심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디에서도 자신이 돋보여야 하는 마음, 자신만 사랑하되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 남을 좌지우지 하고자 하는 삐뚤어진 욕망으로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요구만 한다. 남들이 해주는 배려는 당연하게 받고 자신이 베푸는 호의는 크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도망가고 싶어진다.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은 없다. 상대방의 수고 없이, 마음 없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더욱이 없다. 친절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언제나 노력이 필요하다. 약간의 희생일지라도 베푸는 입장에서는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나를 도와주고 조금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상대가 작은 것이라도 감수하고 있음을 안다면 고마울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과 수고를 안다면 상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신뢰가 깊어지고 미안한 마음에 선을 넘지 못한다. 그리고 상대가 도움을 청했을 때 흔쾌히 도와주고자 한다. 우리는 아이에게 그 마음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저절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니기에 상대의 호의를 보는 눈을 길러주고 고마워하는 마음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감사한 마음을 갖고 표현할 때, 그 호의가 배가 되기도 하고 기회가 될 때 본인도 베풀어야 한다는 마음이 자리 잡게 된다. 어느 누구의 호의도 나의 권리가 될 수 없음을 알게 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나를 이해해 주는 주변 사람에게 고맙고, 웃어주는 아이들에게 고맙고, 주어진 기회가 고맙다. 고마운 마음에 더 열심을 내게 된다. 이게 바로 소소한 행복이지 않을까. 상대의 호의를 감사함으로 받았을 때 주어지는 행복으로 세상의 온도는 약간이라도 높아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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