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은 성실하다. 그것도 성격인 거 같다. 학창 시절 성실하지 않았던 나를 생각하고 비교해 보면 정말 성실하다. 책임감이 강하여 남들과 협업을 할 때 본인이 많은 부분을 맡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허투루 하는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발표하기 전에 연습을 여러 번 한다. 중학교 때까지는 수행평가로 글을 써야 할 때 집에서 써서 수정을 부탁했다. 수정된 글을 달달 외워서 수행평가를 치르고 왔다. 아이는 주제가 주어지면 치밀하게 조사하고 미리 글을 썼다. 타고난 똥손으로 인해 미술을 가장 어려워했지만 그 또한 집에서 여러 번 연습해서 갔다. 미술은 포기하라는 말에도 너무 못 그리면 창피하다고 연습했다. 오십 곡이 넘는 클래식을 앞부분만 듣고 제목과 작곡가, 배경을 쓰는 음악시험도 포기할만하건만 열심히 듣고 구분하는 모습에 기가 찼다. 음... 날 닮았다면 포기할 부분은 깔끔하게 포기했을 텐데 역시 날 닮지 않았다. 애달파하는 모습에 같이 애달파도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시키지 않아도 그냥 모든 열심히 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렇게 모든 열심히 성실하게 해 나가는 아이에게 차마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어른은 아이에게 성실해야 한다고 한다. 정말 중요한 덕목이라 한다. 하지만 나는 성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어른은 성실할까. 주어진 것을 매일 꾸준히 하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시작은 하지만 계속 이어질 수 있게 노력하고 있는가. 바쁘다는 핑계를 접지 않는지, 꾸준하게 하기 위해 마음을 쓰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어른도 갖기 힘든 성실함을 아이에게 요구하면서 성실함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해야 갖출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특히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스스로의 성장을 믿으면서 매일 같은 마음으로 꾸준히 하다 보면 그게 곧 실력이 되기에 강조하지만 쉽게 만들어줄 수 없다.
성실하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에 대한 도전일 수 있다. 편한 것을 추구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살다 보면 성실할 수 없다. 가끔은 정말 나에게 '반'하는 일을 하는 것이 성실함일 수 있다. 타고나길 게으른 나는 요즘 두 가지만은 꾸준히 하고자 한다. 매일 걷기와 매일 독서하기를 하고자 한다.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다. 날이 더우면 더워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몸이 늘어지면 늘어져서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루틴을 만들어서 한다 해도 매일 같이 유혹을 이겨내고 부지런을 떠는 것은 정말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계속하다 보니 걷는데 자신감이 생긴다. 벽돌책을 읽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성실함은 내가 가진 불안감을 이겨내게 하고 작은 성취를 쌓아 결국 자존감으로 만들어준다. 할 수 있다는 힘을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매일 하다 보면 익숙함을 곁들인 실력과 능력으로 자리 잡게 한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매일 걸어서 얻은 것은 근력이며 끈기이고 오래 많이 걸을 수 있는 힘이다. 무엇보다 매일 걸으면서 내 안에 쌓이는 찌꺼기들을 정리하고 털어내는 시간을 갖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비우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책 읽기도 그렇다. 타고난 그릇이 작다 보니 통찰력이 한없이 부족하지만 아주 쪼금씩이라도 나아간다. 그릇을 넓혀갈 수 있다. 상황에 한없이 흔들릴 때 성실함은 나를 잡아준다. 걷다 보면, 읽다 보면 단단해진다. 불안함과 초조함을 잊게 한다.
성실함이 누군가에게 능력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누구나 노력하면 갖출 수 있는 삶에 대한 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성실해 보여도 잘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이는데 치중하여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꽤 엉성한 사람도 많다. 처음 마음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매일 꾸준히 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걸림돌은 어떤 상황이나 사람이 아니라 아니라 본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따박따박 매일 조금씩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갈 때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급한 성격상 한 번에 빵 하고 터트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한번 터지고 그다음에는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길고 가늘게 가되 건강하고 행복하게 가고 싶다. 비범한 인생이지는 않지만 내실을 쌓아가는 시간으로 쌓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