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부끄러움을 알아야 성찰이 가능하고 나아갈 수 있다.

by 보름달

나는 언제 부끄러울까. 아이들은 언제 부끄러울까. 궁금했다. 많은 부모들이 자꾸 '부끄러움'으로 아이를 소개하기에 생각해 보게 된다. 인사를 하지 않고 부모 뒤에 숨거나 대답하지 않고 도망가는 아이 혹은 작은 목소리로 들릴까 말까 말하거나 당황스러운 일에 울어버리는 아이에 대해 민망해하며 말한다.


"우리 아이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요."


진짜 부끄러워서 그런 것일까. 어색해서 낯설어서 그런 것은 알겠지만 매번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되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부끄러움'의 뜻은 다음과 같다.


부끄러움 :
(1)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 떳떳하지 못한 마음
(2) 스스러움을 느끼어 수줍어하는 마음


아마 부모들이 말하는 '부끄러움'은 두 번째 의미인 스스러움 즉 친분이 없어서 조심스러움을 느끼고 수줍어하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성향일 수도 있다. 목소리가 작은 것도, 낯선 사람을 만날 때도 수줍어하는 것도 극히 내향적인 아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진짜 그렇다면 교실에서도 같은 모습이다. 조용하고 자기 할 일은 하지만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꽤 많은 아이가 부모 없는 교실에서 만나면 다른 모습을 보인다. 친해져서 익숙해져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아마 '부끄러움'을 말해주는 부모 뒤에 숨을 수 없어서 혹은 숨지 않아도 되기에 본인의 성격 그대로를 드러내는지 모른다. 큰 소리로 까불거나 조목조목 말도 참 잘한다. 이런 아이들과 익숙해지면 한 번씩 꼭 짚는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인사를 하지 않고 부모님 뒤에 숨는 것이랍니다."

"수줍다면 작게 인사하거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제대로 하면 됩니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자기 잘못을 알면서 인정하지 않거나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지요."


수줍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조심스러운 행동은 괜찮다. 이런 부끄러움은 괜찮다. 그럼에도 인사 같은 기본 예의는 지키라고는 한다. 내가 정말 화나는 것은 잘못을 하고서도 양심에 거리낌 없이 대충 넘어가는 것이다. 한번 실수는 괜찮지만 반복되는 실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네가 정치인이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래도 괜찮다. 알려주면 되고 짚어주면 나아지고 성장하기에 희망이 넘치고도 넘친다. 그렇지만 어른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정치까지 갈 것도 없다. 일상생활에서도 부끄러운 어른을 많이 볼 수 있다. 문제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로 덮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라는 말을 하게 되나 보다. 단체에 속해있을 때 단체장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부끄러움의 몫은 그 단체에 속해있는 깨어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이가 인식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행동을 한 사람이 느끼지 못한다면 그 단체는 나아갈 수 없다. 멈추기에 고이고, 결국 썩는다. 교실에서도 그렇다. 교사가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뻔뻔하게 구는데 아이들은 어찌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하는 법을 배우겠는가. 아찔하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무엇인가. 잘못을 하면 양심에 찔려야 하고 또 부끄러워야 한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을 자신으로부터 찾아봐야 한다. 다른 사람의 탓을 하기 전에 나의 부족함을 없었는지, 실수가 생긴 부분에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는지 차근차근 복기해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나아갈 수 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희망이 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인정하고 채우기 위해 애쓰게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아갈 능력과 힘을 얻는다.

아이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스스로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떤 것이 잘못이었는지 생각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잘못을 짚어주되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끄러워하게 놓아둔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 아이는 분명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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