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그 시대 우리나라의 동물에 대한 인식은 애완의 개념이 강했다. 동물에 대한 이해보다는 즐거움을 주는 존재, 장난감과 비단 차이가 없었다. 동물보호법을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였고 동물의 권리는커녕 만연한 동물학대에 대해 문제의식조차 갖지 않던 시대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란 필자 역시 동물을 좋아할 뿐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어린 시절 키우던 자라는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호숫가에 방류되었다. 초등학교 앞에서 팔던 메추리는 어린 마음에 자연의 둥지처럼 만들어주겠다며 소쿠리에 담아 높은 곳에 올려두었다가 떨어져 죽었다. 친구에게 받은 토끼는 집을 비운 사이 배고플까 봐 잔뜩 주고 간 사과와 건초를 한 번에 먹고는 과식으로 인해 죽었다. 동물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동물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동물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동물생명공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에서 동물생명 및 동물산업 전반 및 생명 윤리와 동물 존중 의식을 익혔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동물 생식 및 발생을 전공하였다. 그즈음에 깜순이를 만나게 되었다. 깜순이와 함께한 12년간의 반려생활을 통해서 진정한 반려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민해 볼 수 있었다. 반려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반려동물, 반려문화에 대한 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고 무분별한 정보들이 올바른 반려동물의 이해를 저해시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물론 요즘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비용만 지불한다면 전문적인 반려동물 관련 교육이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덕분에 반려문화 역시 몇 년 사이에 점진적으로 성숙해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의 반려문화는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 필자의 미천한 지식과 경험을 나눔으로써 반려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반려인뿐 아니라 비반려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반려문화와 반려동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정착되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