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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운 May 14. 2021

90년생 이야기

제주도로 도망간 백수,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애  월

여러 번 제주도를 가봤지만 나는 꼭 이상하게 서쪽부터 도는 것 같다. 제주도 한 바퀴를 도는 여정 중에 동쪽부터 시작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이번 제주도 한 달 살기의 첫 번째 숙소도 애월에 있는 작은 호텔이었다. 애월 [涯月] 물가애, 달월 이름도 너무 멋있다.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애월은 바다 끝에 있는 조금 높은 땅을 부르는 말로 과거엔 月을 땅과 같은 뜻으로 썼다고 한다. 멋진 파도에 깎인 절벽이 많은 이곳과 딱 맞는 이름이다.


 아직 체크인 시간은 멀었고, 음... 호텔 위치만 파악한 후 북서쪽 해안도로를 쭉 달린다. 한담, 곽지, 협재, 금능, 판포포구까지 펼쳐지는 해안도로는 정말 장관이다.(제주도 바다는 동, 서, 남, 북 가지각색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북서쪽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 멋있다" 정도?)

 때 마침 나오는 노래까지 백예린의 지켜줄게라니 정말 말이 안 돼... 내가 진짜 제주도에 왔구나 실감이 난다. 미리 찾아보았던 맛집에 들려 맛있는 고기국수도 먹고 주위를 구경하다 다시 차에 탄다. 적당한 배부름, 따사로운 햇살, 시원한 바람 차 안에서 몇 번을 혼자 말했는지 모른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별이 빛나는 밤

 한참을 멍하니 바다 구경을 하다 근처 마트에 들려 장을 본 후 숙소에 짐을 풀고 이른 저녁을 먹을 준비를 한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저녁은 모둠회 한 접시, 컵라면, 그리고... 제주도에 왔으니까 다들 생각한 바로 그것! 진짜 완벽하다. 마치 공발업 질럿과 커세어의 조합처럼 든든해진다. 산과 바다의 만남... 좁은 호텔방에 바다 내음이 가득 찬 것 같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첫 번째는  음....앨런 머스크?  

      


                (솔직히 이건 사진을 안 올릴 수가 없다.)



 바깥 풍경을 보며 한 잔, 맛있는 회에 한 잔 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은 잔을 다 털어내니 밖은 이미 어둑어둑. 알딸딸하면서 들뜬 기분도 조금은 가라앉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밖을 바라본다.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오징어 잡이 배들의 불빛이 외롭게 반짝이고 있다. 가깝지 않은, 멀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그냥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불빛들을 한참을 바라만 본다. 그러다 뭐라도 적고 싶어 노트와 펜을 꺼낸다. 밤하늘만큼이나 아름다운 제주의 밤바다는 30대 초반의 남자도 감정의 바다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풍경... 의식의 흐름이 날 어디까지 데려가는지 모르겠다. 고흐의 작품이 생각난다.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기 전에 오징어 잡이 배를 본 게 아닌가 하는 킹리적 갓심이 든다. 고흐는 오징어 회를 먹어 봤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캐리어 끄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그리고 이어진 방문을 여는 소리, 발소리, 그리고 내팽개쳐진 캐리어의 3옥타브  비명 소리까지... 혼자 여행 왔지만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층의 소음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이봐 몽상가 양반 취했으면 잠이나 자라고"














(솔직히 마지막에 성대모사하신 분 구독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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