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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운아 Nov 17. 2022

콘텐츠AI의 경고

당신 플롯의 흥행 예감 지수는 제로


‘세계관 아이템: 디스토피아’를 구매하셨습니다. 주인은 세계관을 구매했다.    

  

  주인에 의해 설정된 세계관은 디스토피아였다. 주인은 나를 찾기 위해서 생전 처음으로 세계관을 설정했다. 그는 그가 살고 있는 세계를 어떤 특별한 세계관으로 인식해 본 적이 없었다. 세계는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인에 의해서 디스토피아로 대변되는 현실을 살아가는 주인공으로 설정됐다.


 기계 문명이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현실에서 어떤 근원적인 물음조차 생각할 수 없는 자아 말살의 상태로 등장했다. 그러나 나의 주인은 이런 내가 ‘사랑’이라는 근원을 마주하게 되면서부터 자아를 인식하게 되는 설정을 해 나간다. 나도 주인이 지향하는 ‘인과’가 그리웠다. 인과 없이 유희만 선사하는 세계관에서 고깃덩어리처럼 끊어 낼 수 없는 맛을 선사하는 단초 역할만 하는 내가 혐오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주인은‘콘텐츠 아이템: 사랑’을 구매하고 난 뒤 캐릭터와 이야기를 좀 더 세밀하게 설정해 나갔다. 통상 그룹으로 콘텐츠를 작업하는 유저들과 달리 주인은 모든 것을 관장했다. 그는 이야기의 지배자였다. 그때 컴퓨터 앞에 팝업 메시지가 나타났다. 콘텐츠 AI가 보내 경고 알림음이었다.


  “지금 당신이 설정하려는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30년 전에 쓰인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흥행 예감 지수가 낮습니다. 기대 수익 지수가 낮습니다.”      


B^ DISCOVER AI 생성 이미지

  

  콘텐츠 프로그램은 주인이 이야기를 설정해 놓고 완료 버튼을 누르면 설정을 거부했다. 콘텐츠 AI가 내용 수락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주인의 이야기로는 수익을 예상할 수 없었다. 아울러 이 콘텐츠에서 파생될 아이템의 가능성도 낮았기 때문에 다른 유저들에게도 선택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작가는 AI의 경고를 무시했다. 콘텐츠 프로그램이 수락을 할 수 있는 범위로 이야기를 조금 수정해 나가면서 거의 마지막 단계까지 이르게 됐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인식하여 통제하려는 AI를 거부하고 싶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그는 모성애가 풍부가 어머니 대신에 모성애가 부족했던 어머니와 부성애가 강한 아버지 사이에서 형성된 불안정한 자아의 주인공이 인식하는 현실은 결국 디스토피아라는 대전제로 이야기를 끝마무리하려고 했다. 여기에는 유희도 즐거움도 없었다. 나머지는 그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이 어떻게 그 이후를 감상하고 그릴 것인가에 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었다. 주인은 힘겹게 완성 버튼을 클릭했다. 그러자 프로그램은 오류 메시지를 나타냈다.


  “이 콘텐츠는 게임으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십시오.” 


  주인은 프로그램의 경고를 읽었다.      


  유저1과 유저2가 오늘도 콘텐츠 카페에 입장했다. 그들은 이야기를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 유저1이 유저2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잊지 마. 우리는 유희를 극대화해야 해. 우리 콘텐츠에서는 어떤 울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유저들이 선택한 ‘가상 콘텐츠 아이템’에서 나는 부모를 선택한다. 유희만 끌고 올 수 있다면 무한대로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 오늘의 내가 느끼는 고통과 울분을 상쇄시킬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캐릭터의 난입은 가능했다. 그들이 제일 혐오하는 것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는 자각 캐릭터를 넣는 것이었다. 그런 캐릭터를 넣으면 콘텐츠 시리즈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긴 콘텐츠를 눈여겨볼 유저는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나를 사유 불능 캐릭터로 설정했다. 그리고 유희의 강도만을 느낄 수 있는 자아로 설정했다. 이번 아버지는 내가 느끼는 슬픔을 아주 조금만 상쇄시킬 수 있는 존재기에 별로 재미있는 콘텐츠 아이템이 아니었다. 유희를 증폭할 수 있는 아이템을 다른 유저가 채워 넣어야 했다. 따라서 유저3, 유저4, 유저5 등과 같은 누군지도 모를 주인들이 유저1과 유저2가 설계한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고 자극적인 유희를 첨가했다.


  많은 유저가 몰릴수록 처음 콘텐츠를 구성한 유저1과 유저2는 돈을 더욱 벌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거대 게임 회사는 힘들여 콘텐츠를 모두 기획하지 않아도 유저1과 유저2로부터 프로그램 이용료 목적의 수수료를 챙기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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