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 Das Symposium
작가는 작은 방에 앉아 있었다. 그달은 신문 구독을 처음으로 취소했던 달이었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차곡차곡 쌓이는 신문을 둘 곳이 방에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구독을 더는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문학 계간지 구독도 끊었다. 언제까지 텍스트에 함몰되어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끝없이 솟아나는 플롯 곁가지를 끊어 내고 다듬으면서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계속했다. 그런 고민이 계속되면 결국 모든 의문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곤 했다. 왜 이런 모습으로 주조되었을까. 그는 그렇게 되묻고 또 되물었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결국 사랑을 직조해 나가는 것인데 왜 내 주인의 사랑 이야기는 재미가 없었을까.
그는 끊임없이 기억을 되짚어 어린 그 시절로 되돌아갔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그는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 책상 서랍을 열어 보곤 했다. 거기에는 크런치가 많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크런치 초콜릿을 주곤 했다. 매일 받아먹는 크런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날은 아버지 몰래 크런치를 먹을 요량이었다. 서랍을 열었는데 크런치가 있었다. 그 옆에 있던 원고 뭉치. 크런치를 둘러싼 금박 포장지를 벗겨 내면서 그는 아버지가 쓴 원고를 읽었다. 가끔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중졸이신 아버지는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친 후에 야간 대학을 졸업하셨다. 야간 대학은 주로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수업을 들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야간 대학 사람들과 무슨 책을 읽었을까. 그는 어렸지만 아버지의 속마음을 상상해 보곤 했다. 아버지 책상 위에 있던 어려워 보이던 여러 소설책들.
그가 텍스트를 추종한 것이 아버지의 영향이라는 것은 굳이 심리학서를 읽지 않아도 추론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추측, 추론, 망상과 같은 것들이 몰아칠 때마다 주인은 텍스트에 익사되어 갔다. 그는 죽지 않으려고 기원을 찾아 헤맸다. 종교단체, 심리치료, 철학서, 정신의학서 등 접하지 않은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주인은 총력을 기울였지만 나아진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일들이 쓸모없는 작업은 아니었다. 기원에 집착할수록 그는 이야기에 사랑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가져 본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사랑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나는 그렇게 매번 탄생했고 주인과 나 사이에는 연결과 분리로 무한한 성격을 지닌 관계로 발전해 나갔다. 그 과정 안에는 이야기의 사랑인 이야기가 있었다. 따라서 주인이 아버지로부터의 어떤 단서를 찾았나 하고 안심하면 또 그것이 틀린 추측이 되는 날도 있었다. 모든 기원의 단서가 어머니한테서 온 것일 수도 있다고 여겨지던 날도 있었다. 대학을 입학한 후에 아버지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날이 있었다. 그때까지는 그도 아버지와 연락도 자주 했던 것 같았다. 그는 취향 같은 것들이 주로 아버지한테서 온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아버지 또한 그 말에 기분 좋게 맞장구를 치면서 좋아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고 좋아했다. 그가 취미로 가끔 글을 쓴다고 하니까 아버지는 박장대소를 하면서 말했다.
“너희 엄마는 말이야. 그때 야간 대학을 다닐 때 내가 시나 읽으면서 딴짓을 하러 다니는 줄 알았나 봐.”
“왜요?”
“몇 년 후에 수첩을 봤는데. 야간 대학뿐만 아니라 내가 어디 밖에서 누구를 만나고 들어오면 그 사람들
이름을 하나씩 수첩에 적어 놨더라고. 소름 돋더라. 생전 말도 없던 사람이.”
텍스트에 둘러싸여 주인은 그것을 해체하고 조립하고 종국에는 그가 원하는 순서대로 기입하는 것을 좋아했다. 주인은 그런 자신에 대해서 근원 모르는 자부심을 가졌다.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그는 이러한 이상한 집착과 기호는 분명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버지한테서 온 기이한 유전적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수수께끼처럼 풀리는 듯한 근원 풀이가 생각지 않은 곳에서 깨졌다. 주인은 다시 근원에 집착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세계를 글로 완성해 나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인생살이가 논리적으로 귀결되지는 않았지만 인과관계로 굴러간다는 믿음이 확고했다. 그래야만 주인은 현재의 그를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사랑이라는 연결 고리가 모든 이야기의 기초라고 집착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주인은 틀렸다. 주인은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다. 아주 작은 인간적인 인정에 그만 옷고름이 풀리듯이 주저앉았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고 아주 작은 실수였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그가 제일 마음을 쏟아 버린 텍스트를 사창가 포주에 팔아넘기듯 그냥 싼 값에 넘기고 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