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게임
주인이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부터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거대 기업은 일의 규모도 남달랐다. 그는 그 기업이 주최한 글쓰기 공모전의 수상 작가가 됐다. 여자가 부탁한 대로 글 한 편을 써서 보냈는데 그것이 당선된 것이었다. 예전에 그가 풍문으로 들은 말들이 떠올랐는데 당선은 천운이라고 하더니 정말 기적과 같은 일들이 그에게도 일어난 것이었다.
그때 이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공모전에 당선한 작품의 수상비를 선인세 명목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콘텐츠 기업의 소속 작가로 계약해서 향후 작품 활동을 돕겠다는 내용의 계약서도 첨부돼 있었다. 그는 거대 콘텐츠 기업 소속 작가가 된 사람들을 가끔 텔레비전이나 다른 매체에서 본 것이 떠올랐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작가들이 은둔해서 글을 쓰느라 출판 계약을 맺기 힘들었다는 출판사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서 출판사만이 작가와 계약해서 책을 출판하는 시대도 많이 저문 듯하다. 대형 소속사가 스타를 보유하는 것과 같이 거대 콘텐츠 기업이 작가를 거느리는 것도 새 트렌드로 자리잡히고 있다는 기사를 언뜻 접한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 주인은 거대 기업이 콘텐츠 기업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거대 게임 회사라는 것까지는 몰랐다. 그리고 우리 주인은 그 기업이 그의 책을 어떻게 출판해 줄지 그것만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가 주인에게 요구한 것은 아주 간단했다.
“요즘 학생들이 가독성이 많이 떨어져서 문제래요.”
“그런데요?”
“게임을 하면서 가독성과 창의성도 높이고.”
“네. 그리고요?”
“그리고 돈도 벌고요.”
“어떻게요?”
주인은 그녀의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그녀의 말은 그럴듯하기도 했고 뭔가 앞서 나가는 것 같기도 했고 모든 것이 알쏭달쏭했다.
“교육 목적으로요. 작가님 여기 텍스트만 좀 떼서요.”
“이야기의 일부 텍스트를요?”
“가독성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읽기 텍스트가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 프로그
램에 좀 삽입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일부만요? 전체 이야기가 아니라, 일부 텍스트를요?”
“네, 여기 도입부만요. 전자책 아시죠?”
“네.”
“전자책도 일부분 보기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아주 일부만 게임 도입부에 실을 겁니다.”
이것이 주인과 그녀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