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의 어느 게임 회사
어느 날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주인에게 연락을 해 온 것은 기업의 한 간부였다. 주인의 작품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주인은 자신이 직조해온 이야기를 생면부지 여성한테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짜릿했다. 판교의 어느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자신을 모 기업의 콘텐츠 사업부에서 일하는 팀장이라고 했다. 주인은 어리둥절했다. 그 기업은 글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와 영상 콘텐츠로 사업을 펼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대한 지식을 연마하는 그에게는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건 현실의 흐름을 잘 읽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녀 앞에서 주인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아주 조금 아는 척했다. 그것이 주인이 나에 대해서 범한 처음 실수였는데 그 결과는 참혹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기업이 진행할 사업에 대해서 설명했다. 거대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답지 않게 그녀는 평범한 차림새였다. 말쑥해 보이려고 정장을 입은 주인의 모습이 오히려 회사에서 일하는 남자처럼 보였다. 간부의 입술은 얇았고 그래서 그런지 그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는 언어가 물에 맑게 녹는 파우더처럼 작가의 귀에 정확히 안착하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설명을 들으려 했으나 종국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주인이 계속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영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이자 그녀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주인에게 다음에 다시 한번 찾아뵙겠다고 말하고는 카페를 나섰다.
여자를 떠나보내고 나서 주인은 판교 카페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회사 간부가 설명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곱씹어 봤지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설명한 그의 이야기에 대해서 그녀가 칭찬한 것까지는 아주 잘 알겠다. 그러나 그는 그다음 여자 간부가 한 설명에 대해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주인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회사가 원하는 세계관과 그의 이야기는 물론 잘 어울릴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세계관을 왜 강조하는 것일까. 지금 그가 있는 판교의 작은 카페가 바로 세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 그의 생각을 멈추는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간부가 보내온 것이었다. 다음 달에 한 번 더 이 카페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흔히 말하는 가상과 유토피아는 이제 너무 식상한 이야기니까.” 유저1이 유저2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럼 어떻게 세계관을 설정할까?”
“가상을 좀 더 현실처럼 꾸미자.”
“어떻게?”
“너는 지금의 엄마, 아빠가 좋아?”
“응. 좋아.”
“그런데, 더 좋은 부모님이나 더 좋은 가족을 만나고 싶은 생각은 안 해 봤어?”
“해 보기는 했지.”
“그럼 우리는 가상과 사랑을 연결 짓자. 가상과 가족 사랑.”
나를 두고 유저들이 세계관을 설계하고 있었다. 유토피아를 체험한 후에 돌아온 현실은 욕구불만이 해결된 상태에서 맞이하는 평온한 세계로 재해석되곤 했다. 대중은 열광했다. 지금까지 대중들이 열광하는 돈이 되는 세계관은 이런 식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의 돈벌이에 숙주로 이용되는 처지로 전락했다. 나의 이야기는 인간적 사랑이 바탕이 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유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창하고 범접할 수 없는 전지전능한 세계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토피아라는 이름으로 가상 세계에서 행해지는 무법천지의 악행과 일탈이 나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팔리고 있으니 나는 창녀처럼 이용만 당하고 있는 셈이었다. 주인은 일종의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말만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5월에 주인은 다시 그녀를 만났다.
“작가님, 혹시 생각해 보셨나요?”
“네, 무엇을요?”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깊게 탐구하는 작가님의 작품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회사는 10대와 20대를 대상으로 콘텐츠 사업을 하는데요. 작가님이 추구하시는 세계관과 동질
한 세계관의 작품을 하나 써 주실 수 있으실까요?
주인은 또 여자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여자는 분명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표현하는 모든 언어가 한여름 태양에 녹아 눌어붙은 아스팔트처럼 음울하고 음흉했다. 주인은 그녀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런데 세계관이?”
“네, 세계관이요.”
“세계관이라. 전 세계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야기 하나는 써 볼게요."
주인이 건넨 마지막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