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산책을 빙자한 일탈

격리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

by 이랑삼


해외 유입자들을 태운 공항버스에서, '드디어 한국이다'





대륙 건너 대륙으로

격리 넘어 격리로


한국에서 6주간 휴가를 가기로 결정했다. - 글을 쓰는 지금은 다시 파나마에 있지만 - 해외 유입자의 경우 2주 격리 기간이 필요하니, 우리가 가진 자유의 시간은 4주였다. 주변에선 격리가 길어서 어떡하냐며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말했다. "괞찮아요, 프로 격리자예요!" 우린 파나마에서 6개월을 격리로 지냈다. 실로 2주의 시간은 아주 안락하게 흘렀다. 집 냉장고엔 음식이 가득했고, 배달앱에 온천지의 미식이 가득했고, 총알 배송과 신뢰가 보장되었다. 나는 14시간의 시차에 몸을 맡겼다. 굳이 시차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대낮 졸음이 쏟아지면 그대로 드러누웠고, 밤이면 격리가 끝나면 처리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곤 했다. 그 덕에 가족들과는 따로 또 같이 생활이 이루어졌다.



방문 밖 격리풍경, 강아지가 어릴 때 쓰던 울타리에 내가 들어갔다


아 나의 본가 가족 구성원은 엄마, 동생 그리고 강아지 바롬이다.

나의 남편 두두는 그의 본가에서, 나는 나의 부산집에서 휴가를 보냈다.










격리 해제일,

나는 자유의 몸이다!




똑딱 똑딱 그날이 왔다. 배터리를 빨아먹던 자가격리자 어플리케이션부터 삭제했다. 수 개월 전 파나마에서 집으로 배송해 놓은 트레이닝복 상의의 비닐포장을 벗기고 걸쳐입었다. 그리고 강아지 이름을 불렀다.

바로미야~, 산책갈까? 산책?

강아지 바롬은 산책이란 단어에 고개를 좌우로 까닥 까닥거리며 반응했다. 강아지 앞에서 어깨가 펴졌다. 속엣말로 나는,

누나는 이제 더 이상 골방에서 머무는 신세가 아니라구, 너를 산책시킬 수 있는 자유와 의지가 있는 몸이란 말이야. 너 그간 누나를 산책시켜줄 힘도 없는 무능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니?

강아지 몸에 하네스와 산책줄을 연결했다. 강아지는 낑낑 거렸다. 어서 나가자고 채근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어떻게 나가면 되지? 이렇게 나가면 되나?

목적없는 외출에 이질감이 들었다. 반년 동안 개인적 외출이 없는 삶을 살았고, 어떤 다른 존재와 함께 나간다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 남녀 동반 외출이 불가능했던 생활에 익숙해져서 있었다. 한동안 정지상태로 고민하고 섰다. 기다리다 못한 강아지가 내 허벅지를 벅벅 긁기 시작했다. 그러다 겨우 마스크가 떠올랐다. 아차, 마스크! 비닐 포장된 새 마스크를 뜯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유명한 KF94였다.





니가 원하는 곳 어디든!



막상 나섰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다. 이 동네에서 내가 지낸 기간은 통틀어도 3개월 정도 밖에 안 됐다. 본가가 이사를 하고 나는 바로 파나마로 출국했었다. 강아지가 갈만 한 장소는 더 몰랐다. 나보다 더 오래 이곳에 산 강아지가 더 잘 이곳 지리를 알 것이 확실했다. 엄마는 집을 나서는 내 등 뒤로, 갸가 잘 안다, 갸가 가자는 대로 가면 된다~ 라고 말했다. 그래 오늘은 니가 가고 싶은 어디든 가자!


무심한 척 고양이에게 접근해보는 개

엘레베이터를 나와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8월 말에 지나온 아파트 공동현관을 2주만에 나오고 니 계절은 초가을이 돼 있었다. 상쾌한 공기. 선선한 공기가 목이며 겨드랑이 사이로 스쳤다. 창으로 보던 바깥 풍경은 늘 네모 모양이었는데, 나와서 보니 어디로 둘러봐도 시야엔 모서리 진 데가 없었다. 그리고 길들이 있었다. 2차원에 살다가 3차원의 세상으로 나온 것 같았다.


강아지는 위풍당당하게 걸었다. 나를 확실한 좌표로 끌었다. 계획이 있는 강아지 같았다. 강아지를 믿고 처음 지나는 길을 따라갔다. 종종종 걸으면서도 부지런히 기둥이란 기둥, 수풀마다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선 한 바퀴를 뱅그르 돌더니 자세를 잡고 영역표시를 했다.


나는 집에서 떨어져 꽤 걸어서 금정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르고 말았다. 양갈래로 갈라진 산길 입구에서 부터는 이 아이만을 믿고 가면 안되겠다 싶었다. 늦여름 모기가 붕붕 떠다니고 있었다. 아직 여름을 못잊은 패션에 드러난 맨 발목이 위험했다. 하지만 내 우려는 모른 채 강아지는 세상 신나게 축축한 풀숲으로 껑충 뛰어들었다. 아 로미야, 제발 ~~





개 산책을 빙자한 일탈



결국 강아지는 내 품에 번쩍 들려져 숲 입구를 벗어났다. 인도 위에 내려 놓자 마자 다시 행진을 시작했다. 개와의 산책이 조금 익숙해지니 주변 풍경에도 눈에 들어왔다. 길가에 꽤 많은 손님이 오가는 빵집, 국밥집이 보였다. 인도에서 스치는 사람들은 마스크만 꼈다 뿐이지 1년 전과 별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어 보였다. 나를 이끄는 강아지도 이 바이러스 사태완 무관하게 행동하는 건 물론이었다. 그 산복도로의 산책길에 나만 위축되어 있었다. 1년이란 짧은 시간만에 각각의 다른 장소와 사회의 사람들이 얼마나 편차가 큰, 달라진 생활을 해왔는지 알 것 같았다.



고향에 있다는 안정감, 높은 의료 수준과 행정력에 따른 신뢰감 그리고 개개인의 행동과 인식 수준도 추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또 이 위기 상황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분석하면서 서로를 보호하려는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것도 큰 힘이 되었다.



강아지 바롬의 이끎 덕에 평생 가지 않았을 거리를 걸었다. 이웃 아파트 단지도 통과해 지나갔다. 이 아이에겐 성역도 통제 구역도 없었다. 냄새가 있고, 고양이가 있으면 어디든 돌파를 시도했다. 나로선 신경쓰이고, 피곤한 일이었지만 묘한 대리만족을 느꼈다. 강아지를 핑계로 삼아 나도 안하던 일을 해보는 거다.

격리 해제 후 첫 외출은 이렇게 바라던 대로 완수했다. 남은 4주 동안 한국에서의 일탈도 이렇게 마음 가는 대로 누리자, 매일 이 강아지 바롬과 산책을 가자 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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